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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Mar 04. 2024

[프롤로그] 아차! 잘못된 길로 들어서버렸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25살의 어느 날, 머릿속을 탁 스쳐 지나간 한 줄의 생각.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멈칫. 그리고 이때부터 저는 스스로 인생 난이도를 어렵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던 것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주의하세요. 제 글을 읽고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전처럼 평온한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간호사이고 마케터입니다. 작게나마 사업을 꾸려가고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적어도 제 앞길은 제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용기 있게 해 나갈 여건도 되는 것 같고요.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왔습니다.


살아오며 마주했던 수많은 갈림길들은 사실 어느 정도 이미 설계가 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조금 더 합리적인 쪽으로 골라왔다는 뜻입니다. 순리에 따르며 나름은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이건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 이런 글은 '어릴 적부터 어떤 분야에 특출났던' 혹은 '엄청나게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스토리가 정석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냥 어른들 말 잘 듣는 모범생1이었어요.


부유하진 않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나 생계에 큰 걱정 없이 자랐습니다. 학업성적 또한 늘 상위권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게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이 되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으니 더욱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 테지요.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나며 저는 눈앞에 놓인 선택지가 과연 최선이었는가에 대해 의심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다들 그게 맞다고 했으니까요. 생활기록부에 적었던 제 장래희망은 교사였다가 변호사였다가 의사로 바뀌었지만 그 모든 것들에 이유는 뚜렷한 없었습니다. 그냥 성적이 그랬고, 엄마의 바람이 그랬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러한 환경이 제 삶에 마냥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삐딱해질 거였다면 하루빨리 탈선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영화 '트루먼 쇼' 중


최악의 실패, 그다음은


으레 그렇듯 저 역시 인생 최악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필이면 그게 수능이었어요. 모두들 재수를 권했지만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터라 더 이상 도전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분명 제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임을 알았음에도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듯 가볍게 선택해 버린 것이 지금도 놀랍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감정에 취약한 동물인가요.


그렇게 4년의 학부 학업 과정 속에서 저는 분명 느꼈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놈의 매몰비용. 그것 때문에 꾸역꾸역 1000시간의 실습까지 마쳤습니다. 일단 면허라도 따놓으면 뭐라도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습니다. 원하던 대학병원에도 덜컥 붙었네요. 여기서 잠시 희망회로도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하지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아니 어쩌면 시작점 그 뒤쯤으로 밀려나왔습니다.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았거든요. 애초에 한 번뿐인 인생인데 '무작정 버티는 것'이 맞는 건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렇게 25살. 연봉 4800만 원의 첫 직장을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주변 사람들은 "경력 더 쌓이기 전에 빨리 나오기 잘했다."라고 하지만 그 당시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저를 대부분 이상하게 보고 또 나무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24살의 어린 나이에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과 직장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만나는 어른들마다 "처음엔 원래 다 그런 것인데 요즘 얘들이 끈기가 없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고 저는 작아지는 스스로를 홀로 도닥여야만 했습니다. 겉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속으로 '사실은 정말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의 목소리는 더 커졌으니까요.


뒤늦게 자아가 생겨버렸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던 시점. 그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노력이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었지만요. 아니, 효율로만 따진다면 대부분이 시간 낭비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의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은, 나라는 사람과 좀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꽤 오랜 기간을 서먹하게 지내왔더라고요.






처음 당연하지 않은 곳으로 발을 떼던 그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도, 애써 외면해 왔던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 보면서 느꼈던 외로움도 이제는 지나온 순간이지만 더 잊히기 전 글로 남겨봅니다. 이 글은 그때의 저와 지금의 방황하는 누군가를 위해 적습니다.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 한 발 앞서간 누구라도 제게 "모두에게 타협하며 사는 인생이 최선인 건 아니야. 내가 해보니까, 그 트랙에서 벗어나 조금은 헤매도 괜찮더라."라고 말해주길 바랐으니까요.


다행히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아니, 매년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그리며 잠들 수 있고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글자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요. 불안함보다 기대감이 더 커진 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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