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도전을 실패로 마무리 짓는 일이야.
여기 왔다 간 선생님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요?
간호과장님과의 면담에서 가장 처음 듣게 된 질문이다. 아니, 모종의 협박인가? 아니면 이대로 마음을 돌려도 다른 이들처럼 별 일 없이 지낼 수 있다는 회유일까.
역시 정글 같은 대학병원에서 방 한 칸을 배정받은 간호사. 그녀는 뭔가 달랐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눈동자와 시종일관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흉터가 남을 말들만 쏙쏙 골라했다. 그것도 극진한 존댓말로. 병원마다, 부서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바로는 연차가 높은 간호사가 연차가 낮은 간호사에게 반말 혹은 반존댓말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누군가 내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여 깍듯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누구라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선생님. 지금까지 4년 동안 공부하고 1000시간 실습하면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여기 병원 경쟁률은 또 얼마나 높았고요. 어찌 보면 선생님이 결정한, 인생에 첫 도전인데 그걸 고작 1년 만에 실패로 마무리 짓게 되는 거예요. 앞으로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첫 성공 경험이 없다면, 지금처럼 쉽게 그만두게 되겠죠?"
낯설고 날 선 의문문에 솔직히 말 문이 턱 막혔다. 한 순간에 중도 이탈자에서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버린 기분.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가장 떨쳐내고 싶었던 가장 깊은 무의식이 단 번에 꺼내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직전 차지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내려앉은 가슴을 주섬주섬 부여잡고 있는데 뒤에서 날아온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지난 1년 힘들었지만 그게 그만두는 이유는 아닙니다. 이대로는 어차피 정년까지 다니지 못한다면, 어쩌다 발령받은 이 수술실이 저와 맞지 않는 환경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신규 간호사였던 당시 나는 나름대로 당당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장님의 눈에는 나의 혼미해진 정신 한 가닥가닥 선명하게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감사히도 나의 당돌한 대답에 작은 끄덕임으로 응답하시곤 준비하셨던 서류 한 장을 내미셨다.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고비를 넘어 첫 번째 직장과 안녕을 고하는 종이에 이름을 적을 수 있었다.
퇴사 면담 후 약 3개월을 더 다니고 나서야 나는 기숙사의 짐을 쌀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병원뿐 아니라 임상에서는 대체자의 트레이닝 기간이 있기 때문에 퇴직 의사를 밝힌 후 3개월은 더 다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나는 어찌 되었건 내가 임했던 일에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또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곧,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1순위 깍두기가 된다는 것과 같음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3개월간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과에서 대체 인력처럼 식사 교대를 하는 일은 태반이었고 어떤 날은 수술실을 벗어나 통증 시술을 하는 외래에서 그날그날 인계를 받아 근무하기도 했다.
일반 직장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지만 특수한 환경에서는 그리 당황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그러한 윗년차 선생님들의 처사가 부당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 상황에서는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첫 퇴사를 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7년 차 직장인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암묵적인 위계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폐쇄적인 집단에서 내 윗년차 선생님들은 어떤 리딩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당시 25살의 나는 왜 이 집단의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말 한마디 따스울 수 없나 원망 섞인 탄식을 자주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곳은 엄연한 직장이었고 사회였다.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방향성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환경과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단지 후배가 겪는 어려움을 정서적으로 공감해주기만 하는 건 절대 좋은 대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24살의 패기 넘치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1년 3개월 만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백수가 되어버렸다. 퇴사와 이직이 많이 자연스러워진 근래와 달리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의 갑작스러운 퇴사에 쏟아진 주위의 관심과 시선들은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다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내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니즘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