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윤 Mar 11. 2024

퇴사 여행은 행복할 줄 알았지

퇴사를 알리면 하루에도 두어 번씩 듣게 되는 단골 질문이 있다.


퇴사하면 뭐 할 거야?


나 역시 퇴사를 통보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만큼 퇴사 여행에 대한 로망이 상당했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타지로 떠나는 것이야말로 살면서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다.


저 런던으로 여행 가요!


그러면 대부분 반쯤은 진심 어린 말투로 "정말 부럽다."라고 답해주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들이 정말 부러웠던 건 런던 여행이 아닌 나의 젊은 패기였던 것 같다.




나는 2019년 당시 떠돌던 이 짤의 주인공이었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유튜브의 경우 당시 직장인 브이로그를 하는 것이 직장에 알려져 좋을 것이 없었던 시대였기에 퇴사 후 본격적으로 무언가 시작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시작을 여행으로 잡았다. 런던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찍는 영상은 조금 더 쉽게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믿음. (이런 생각으로 만드는 콘텐츠는 웬만해선 잘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게 나는 2019년 9월 퇴사를 했고, 준비했던 여행을 떠났다.






사실 나는  2018년, 그러니까 퇴사 1년 전 봄과 여름 사이 런던을 이미 다녀왔다.


당시 영국 드라마 셜록에 푹 빠져 있기도 했고, 오랜 해리포터의 골수팬으로서 나에게는 가장 궁금했던 유럽 여행지 중 한 곳이었다. 18사번으로 대학병원에 합격해 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시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주 단위로 쉴 수 있겠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1년 만에 나는 또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 런던을 찾았다.



비장한 다짐을 하고 인생 마지막 영국일 것처럼 불타는 2주를 보내고 왔던 2018년의 기억이 채 사라지지 않아서 퇴사 후 다시 떠나는 그날까지 스스로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소 민망했지만 뭐 아무렴 어때. 살아가면서 언제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텐데 그 시점이 다소 빨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한 기회야.




가난한 졸업생 vs. 가난할 백수 (a.k.a. 프리랜서)


나름 1년 3개월 동안 착실히 돈을 모아두기도 했고, 당시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부수입이 꽤나 발생하던 시점이라 잠시 직업을 잃어도 경제적으로 불안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국적기는 아니었지만 경유보다 왕복 30만 원 정도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었을 때는 '이것이 자본의 맛이구나!' 내심 스스로 뿌듯해했다. (1년 전에는 바르샤바에서 6시간 경유를 했거든.) 그리고 통장에 돈도 분명 졸업생일 때에 비해 넉넉했다. 작년에 돈이 부족해 못 먹었던 음식들, 못 가봤던 곳들 다 가보면서 여유를 즐겨야겠다 다짐했다.


분명 퇴사 후 떠나는 여행은 정말 행복하겠지?


주위에는 없었지만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퇴사 선배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나에게도 다가올 황금 같은 시간에 밤잠을 못 이룬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을 안고 히드로 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그게 여행에서 내가 느낀 가슴 벅찬 행복의 전부였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가장 큰 원인으론 '불안감'을 꼽을 수 있겠다. 한국에선 퇴사 전, 후로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꾸준한 축하(?)와 간혹 부러움의 시선을 받아와서 그런지 내가 소속을 잃었다는 게, 앞으로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 연고도 없는 타지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하나의 감정으로 치부했다. 계획한 대로, 수많은 뮤지컬들을 보고 가져간 책도 읽고 때로는 공원에서 낮잠도 자며 시간 많은 여행객의 하루하루를 만끽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 그 에너지 역시 고갈되어 버렸다.


설상가상 악명 높은 런던 날씨가 그 이름값을 하고자 했는지 내가 여행을 떠나온 기간 21일 중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수시로 비가 내렸다. 날씨와 기분의 상관관계에 대해 절감했던 날들이었다. 한창 런던 중심가에서 불타오르던 브렉시트 반대 시위 때문에 시내의 지하철과 버스는 수시로 운행을 중단했고, 미리 구매해 간 유심이 문제를 일으켜 지도조차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꾸준히 찍고 편집하던 런던에서의 유튜브 영상은 현재 6개 모두 비공개되어 있는데, 내 표정의 변화가 확실하게 드러나 한동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 만에 25살의 나를 만났다.


분명 예상대로라면 고대했던 이 퇴사 여행이 너무도 행복해야 하는데. 언제 발령이 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빈털터리로 떠났던 1년 전의 여행보다는 안정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소망했던 것에 다다르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나는 정작 그다음,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의 무게를 너무 가벼이 여겼구나. 여행의 중반이 지나며 나는 낯선 곳에서 스스로와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했고, 그렇게 안전하게(?) 일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퇴사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그를 말리고 싶진 않다. 나 역시 이 기간이 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듯 프리랜서인척 하는 백수의 삶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연한 자유와 해방감 역시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더라.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다른 부수적인 것들이 뒷받침되어 준다고 한들 안정감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퇴사를 포함하여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과 함께 새로운 리스크를 지게 될 일이 있다면,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온전히 스스로와 마주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자칫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지언정, 그 또한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안고 가야 할 또 다른 나이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