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것
신기하게도 쌍둥이 중 한 명은 아빠를 꼭 닮았고 한 명은 나를 꼭 빼닮았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격, 기질 모든 것이 각각을 꼭 닮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둘만이 가지고 있는 너무나도 다른 기질과 성격 등을 보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쌍둥이 중 큰 아이는 넘어질 때 머리가 다치지 않게 고개를 들고 넘어졌다. 3살 정도였나? 그 조그만 아이가 넘어질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드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넘어져도 항상 머리부터 넘어졌다. 머리가 무거우니 넘어지면 땅바닥에 머리나 이마가 먼저 향하는데 큰아이 같으면 바닥에 얼른 손을 짚었을 텐데 작은 아이는 그런 운동신경이 없었다. 그래서 넘어지기만 하면 이마나 머리를 다쳤다.
큰아이는 잠을 자도 아빠를 닮아서 움직이지도 않고 잔다. 작은아이는 나를 닮아서 온 침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잔다. 큰아이는 모든 것을 빨리하는데 그렇다고 대강하는 게 아닌데도 모든 준비나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낸다. 작은아이는 일단 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엇이든 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이 외출할 때는 보통 남편이 항상 젤 먼저 준비를 끝내고 소파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큰아이와 같이 기다린다. 나랑 작은아이는 항상 늦지만 지금은 작은 아이가 젤 늦게 준비한다.
움직임을 떠나서 생각하는 뇌구조도 다르다. 큰아이는 영화나 책을 읽어도 미래 SF 공상과학, 판타지류를 좋아하는 반면 작은아이는 과거의 이야기,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작은아이는 맨날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과거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데 큰아이는 이런 이야기에 도통 관심이 없다. 신기하게도 내가 우리 아빠, 엄마한테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항상 묻고 과거의 우리 집안에 대해서 항상 궁금해 했던 것과 흡사했다. 나는 한 번도 큰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관심 있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그건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이 산수 문제를 가르쳐도 첫째는 수학 논리에 이해하는 능력이 빠르다. 반면에 작은아이는 수적인 논리에는 약하지만 책을 읽을 때 그 속의 숨겨진 의미를 잘 찾아낸다. 둘이 야단을 칠 때 똑같이 설명을 해도 한 명은 사실에 집중하고 한 명은 감정에 집중한다. 모든 것, 하나에서 열 끝까지 다르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두 아이. 남녀 쌍둥이가 아닌 쌍둥이 자매이다. 고작 1분 차이에 내 뱃속에서 나온 이 아이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아이 둘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똑같이 먹이고 키웠다. 분유도 동일 브랜드로 동일한 양을 먹였고 이유식도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 동일한 양을 주었다. 태어났을 때 단 0.3g정도밖에 차이가 안나는 두 아이였다. 둘이 차이나는 갭을 줄이려고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먹여도 신기하게도 그 갭은 메워지기는 커녕 점점 더 벌어졌다. 큰 아이는 전교 여학생 중에 젤 클 것이다. 그리나 작은 아이는 평균 키보다도 작다. 두말할 것도 없이 두 아이의 몸무게는 7-8kg 정도 차이가 난다. 한 아이가 아팠다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니다. 난 정말 둘이 같은 환경에서 같은 밥을 주고 똑같이 키웠다. 그리고 둘이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같은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달라지는 그 차이는 내가 줄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그 소리들, 너희 언니는 이런데 너는 왜 이러니? 네 동생은 저런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런 말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라는 소리이던가.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자매 둘도 이렇게 다른데 나이 차이가 나는 형제들이 다른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아이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점점 더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유전이라는 것이 이렇게 강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진 부분이 강하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할 후천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둘의 너무나 다름을 인정하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줘야 할 후천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각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더 키워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되었다. 거기에 잘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어떻게 보면 둘의 다름이 보이니 우리의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