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닉, 지난번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를 했던가요? 안 한 것 같아요. 나는 2256 년에서 왔습니다. 살고 있는 곳 또한 뉴욕이지요. 지금 맨해튼이라 부르는 지역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불러요. 비슷하게.”
“아까 노인 한 명을 만났는데, 자기 아들이 전쟁에 나갔더군요. 2차 세계 대전. 내 시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런대로 교육도 받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 250 여 년이 지나서 사람들은 또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이전의 전쟁과는 사뭇 달랐답니다.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고, 어떤 회사 비슷한 것이 있었어요. 그냥 회사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 나네요. 이 회사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뭉쳤대요.”
“닉, 혹시 원자 에너지라는 것에 대하여 들어보셨나요? 안 들어 보았겠지요? 이 시대에 이제 막 원자 에너지를 이용한 산물이 생겨나려고 하니까요. 아마 국가적 비밀일 겁니다. 대단한 폭탄이랍니다. 한 발의 폭탄이 한 도시 전체를 쓸어버릴 정도라니까요. 뉴욕이라면 두어 발 정도 떨어뜨리면 아마 지도에서 사라져 버릴 겁니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요? 닉, 당신 자신만 대단한 천재가 아니잖아요. 당신도 모르는 천재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무시무시한 폭탄을 만들었어요. 물론 나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들은 거지요.”
“우리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이고, 선생님은 그날 전투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거나 대기 중인 군인들 중에서 아무나 했습니다. 우리는 주로 지나버린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지요.”
줄리어스는 독방에서 조용히 벽을 상대로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고 나쁜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당연히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요. 안 그랬다면 인간들이 어떻게 이런 사회를 만들었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전쟁은 몇 발의 폭탄으로 끝나게 될 겁니다. 우리가 이기는 거지요.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이기는 해피 엔드 게임입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이 편을 가르더니, 서로 으르렁댔답니다. 아, 전쟁을 직접 한 것은 아니에요. 단지 계속 무기만 만들어서 쌓아두었답니다. 다른 편이 쳐들어오면 한 방에 끝내버릴 속셈이었지요. 그 쌓아둔 무기들이 아까 말한 바로 그 폭탄이었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너도 나도 그런 폭탄을 만들어서 가지고 싶어 했대요. 그래야 큰 소리를 칠 수가 있었거든요. 점점 폭탄은 커지고, 점점 개수가 많아지고, 점점 많은 나라들이 가지게 되었답니다.”
줄리어스는 바닥에 놓여 있던 컵에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옆방에서도 누군가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닉, 어디까지 했지요? 아, 폭탄 이야기를 했었지요. 온 세상에 폭탄이 점점 쌓이게 되면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폭탄이라는 것은 잘못 건들면 터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 폭탄을 지키는 사람들은 아주 조심을 했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사람들도 생겨나는 법이지요.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듯이 말입니다. 폭탄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이걸 훔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자연히 생기겠지요. 그랬답니다. 그런데 제 3의 세력이 생겨났대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 닉? 듣고 있어요?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라니까요.”
줄리어스는 다시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옆방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만들어진 폭탄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으니까,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자연스러운 거지요. 나도 우리 집 주변에 폭탄이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안 좋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회사를 만들었어요. 이 회사는 일종의 폭탄 제거반이라고나 할까요? 이 세상에 있는 폭탄들을 전부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답니다. 어떻게? 묻지 마세요. 그건 나도 모릅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니까요. 대략 들은 것들은 그래요. 과학자들이란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폭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었대요. 그리고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아 참, 나도 군인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요? 군인들은 폭탄을 직접 다루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회사를 만들었답니다. 이 사람들이 각자 폭탄을 하나씩 맡아서 해체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어찌어찌 틀어져 그만 폭탄들이 발사되고 말았답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인류는.......”
뉴욕 시경 월 스트리트 경찰 분서는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잡혀 들어온 주정뱅이들과 싸움꾼들의 소리로 시끄러웠다. 이런 소리들을 뒤로 하고, 줄리어스는 뉴욕에 도착한 후 두 번째의 잠을 자기 시작했다.
16.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는 기지개를 켰다. 옆에서 존 스튜어트 중위가 스티븐스 대령이 준 편람을 보고 있었다.
“존!”
“.......”
“존!”
애슬로우는 재차 불렀다.
“뭐?”
“존, 그 말이야....... 나, 로라는 손대지 않았다. 믿어 줘. 정말이야.”
스튜어트 중위는 애슬로우 중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쁜 녀석, 넌 로라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 대체 너 같은 놈을 왜 로라가 좋아한 거야? 참, 이해가 안 된다.”
애슬로우는 손가락으로 스튜어트를 쿡 찔렀다.
“너, 좋아하는구나?”
스튜어트는 말없이 땅만 보고 있었다.
“야, 미안하다. 이제 안 그럴 거야. 로라는 뭐랄까.......”
“장난이었다고?”
애슬로우는 벌떡 일어났다. 양 손을 허리춤에 짚었다.
저쪽에서 톰 클린스 중위가 다가왔다.
“존, 책 다 봤어?”
“그래. 별로 재미없는 걸. 아니, 상당히 재미없어. 너한테나 흥미로울까 몰라.”
스튜어트 중위는 책을 품에서 꺼내 클린스에게 내밀었다.
“톰, 수고했어. 이제 교대하자.”
클린스 중위는 책을 받았다.
“그럼, 수고!”
스튜어트는 일어서더니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
“그래.”
톰은 도서관 정문의 계단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줄리어스는 다시 누웠다.
“줄리어스, 이제 네 차례야.”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애슬로우 중위는 클린스 중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쉬고 있던 자리 옆에 자그마한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1856 년 7 월 10 일 오스트리아 제국(Austrian Empire)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