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찰칵’
침대에 누워 있던 줄리어스는 눈을 번쩍 떴다. 방 안이 캄캄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천천히 조금 열렸다. 호텔 복도의 전등 빛이 문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왔다. 열린 문 틈 사이로 총이 보였다. 줄리어스는 가만히 있었다. 문이 조금 더 열리더니 총과 함께 손이 보였다. 모자를 쓴 사람이 천천히 움직였다. 줄리어스는 누운 채로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전들이 잡혔다. 전부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던졌다.
'쉭'
"억!"
‘쿵’
‘털썩’
들어오던 사람이 쓰러졌다. 뒤에서 또 다른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질질 끌고 나갔다. 아무도 더 이상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아, 내 눈!”
울부짖는 소리. 질질 끌고 가는 소리. 쿵쿵 소리. 소리들은 멀어져 갔다. 줄리어스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슬쩍 침대 뒤편으로 내려갔다.
“안에 있는 것, 알고 있다. 혼자인 것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줄리어스는 침묵했다.
“보스가 만나고 싶어 한다. 같이 가주면 아무도 안 다친다.”
침대 위의 매트리스를 번쩍 든 줄리어스는 이것으로 등을 가렸다. 그러고 나서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끼이익’ 하는 창문 소리가 울렸다. 줄리어스는 창문 밖으로 나갔다. 화재 대피용 테라스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얼른 한 층을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창문으로 남자의 얼굴이 삐죽 나왔다. 줄리어스는 다시 한 층을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 그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면서 위로 올라왔다. 방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줄리어스는 창문을 통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복도로 나간 그는 계단 아래를 보았다. 쿵쿵거리며 남자가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조용히 뒤를 따랐다. 호텔 로비까지 내려간 줄리어스는 카운터에 1 달러 지폐를 던지며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카운터에 있던 남자는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지폐를 집더니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호텔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줄리어스는 도로를 건넜다.
34.
한 남자가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전당포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3 층에 도착한 그 사람은 문을 두드려댔다. 그러자 문 안쪽에서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당포 문이 ‘삐익’ 하고 열렸다. 잠옷을 입은 남자가 눈을 비비면서 쳐다보았다.
“당장 전화를 해야 해요.”
전당포 남자는 그를 계산대로 데려가더니 계산대 밑에서 전화기를 꺼내 내밀었다.
“예, 토비입니다. 일이 안 풀렸습니다. 케이지는 당했습니다. 지금쯤에는 병원에 가 있을 겁니다. ....... ....... ....... 예, 그래요. 놓쳤습니다. ....... ....... ....... 예, 뭐라고요? ....... ....... ....... 이런 제기랄, 바로 가겠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놓는 젊은이를 보더니 전당포 주인이 한 마디 했다.
“무슨 일이래?”
“린든이 죽었답니다. 그 녀석한테.”
35.
“그러니까 브라운 경관, 그 자가 밤에 오면 자네가 정보를 줄 거라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서장님.”
“그렇다면 그 자는 낸시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말인데....... 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 줄까?”
낸시 브라운은 눈을 내리깔고 서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이봐, 낸시 브라운 경관! 그 자는 스파이라네.”
“예? 뭐라고요?”
낸시는 깜짝 놀랐다.
“그 죽은 린든 말이야. 줄리어스란 녀석이 밤새 독방에서 혼자 지껄이던 소리를 그가 들었는데 말이야. 그 자가 폭탄, 음, 아니, 내용은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로이드 서장은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조지, 자네가 해줘야겠네.”
옆에 서 있던 연방수사국 요원이 앞으로 나섰다.
“브라운 경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극비 사항입니다. 이건 국가적 문제에요. 우리가 지금 전쟁 중인 것은 알지요?”
낸시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 여기 뉴욕뿐만 아니라 이 대륙 전체에 얼마나 많은 독일과 일본의 스파이들이 와 있는지도 알겠지요? 그 자, 줄리어스 애슬로우란 자는 이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비밀을 훔치러 온 자입니다. 물론 그 자가 왜 그 노인네한테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 정확히 파악이 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짐작이 가는 데가 있답니다.”
윌리엄스는 ‘휴’ 하고 한숨 돌렸다. 그리고 다시 낸시에게 천천히 말했다.
“브라운 경관, 당신은 예뻐요. 그렇지요? 스파이란 것들이 적국에 침투하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뭔지 압니까?”
낸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바로 자기편을 만드는 거예요. 당신처럼 순진한 여성이 주로 표적이지요.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면 더욱 좋을 것 아니에요? 그렇지요?”
찰리 요원의 말을 낸시는 넋을 놓고 듣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로이드 경위는 눈짓으로 잭슨을 불렀다.
“경사, 브라운을 집으로 보내서 그 자를 끌어들이시오. 거기서 잡는 거야.”
브라운 경관은 집으로 출발하고, 그 뒤를 세 명의 경찰관들이 경찰차를 타고 천천히 따라갔다. 로이드 서장은 경찰서 문 앞에서 네 명의 경관들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36.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한 낸시는 뒤를 돌아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모든 등을 끈 포드 경찰차 한 대가 저만치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차가 멈췄다.
2층 복도 오른쪽 세 번째 집으로 들어선 그녀는 거실의 전등을 켰다. 경찰차에서 세 명의 남자가 내렸다. 낸시는 외투와 모자를 벗어서 거실의 옷걸이에 걸었다. 그런 후 그녀는 전등을 껐다.
줄리어스는 어둠 속에서 앞을 응시했다. 주위는 조용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몇 대 서 있었다. 어깨를 쭉 편 다음, 그는 길을 뛰어서 건넜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그는 단숨에 계단을 올라갔다. 2 층으로 올라간 줄리어스는 낸시의 집 앞에 섰다. 살짝 두드렸다. 안에서 신발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줄리어스는 손으로 문을 밀었다. 문이 그대로 열렸다. 어두웠다. 거실 한 가운데 누군가 서 있었다. 줄리어스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이 빙글 돌았다. 거실 전등이 ‘팍’ 하면서 켜졌다. 줄리어스는 순간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퍽’
맨해튼 사단 스티븐스 연대 2소대장인 줄리어스 애슬로우 중위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