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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망개~떡" 에 놀란 일본인

by 윤경민


절약정신이 몸에 밴 필자의 부모님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어머니를 포함해 식구들 생일이면 늘 어머니 댁에 모여서 다 같이 집밥을 먹는다.

그래서 늘 며느리들이 불만이다.

한 번쯤 나가서 편하게 먹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밖에서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며 집밥을 고집하신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한 몇 번 안되는 외식 중 두 군데가 기억에 남는다.

한 곳은 동네의 오래된 중국음식점 '대성관'이었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집으로 화교가 주인장이다.

옛 건물 그대로, 그 맛 그대로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옛날에 인근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집에서 짜장면을 먹고는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났다가 어른이 되어 찾아와 몇 십배로 갚았다는 스토리가 담긴 빛바랜 신문기사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기도 하다.

초등학교 졸업날 이곳에 가서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어슴프레 난다.


또 한 곳은 경양식집이었다.

고3 시절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할 때였는데, 어머니가 오셔서 영양 보충이나 하자며 데리고 간 곳이 그 독서실 건물 지하에 있던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다.

당시 필자 수준에는 제법 고급이었던 경양식집. 거기서 돈가스를 먹은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돈가스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기억에 선명하다.



대학에 가서 미팅, 소개팅할 때는 돈가스집이 최고였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비후가스, 놓치기 싫을 정도로 퀸카면 함박 스택을 시켰다.


돈가스... 돼지 돈(豚) 자에 영어 cutlet(커틀릿)이 합쳐지고 줄어든 말이다.

커틀릿은 두툼한 고기 토막이란 뜻과 고기·생선·야채 따위를 다져 동글납작하게 만든 뒤 튀김옷을 입혀 익힌 것이란 뜻이다.

豚은 일본어 발음으로도 '돈'이고 커틀릿을 줄여서 カツ(가쓰)라고 한 것.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대로 돈가스가 된 것이다.


비후가스는 비프커틀릿 (beef cutlet).

돈가스는 돼지 돈자를 썼으면서 소고기 커틀릿은 牛カツ(규 가스)라 하지 않고 영어를 쓴 이유는 뭘까?

일관성이 없다.


히레가스는 필레 커틀릿. filet+cutlet ヒレカツ



함박 스택은 함바그스테이키(ハンバーグステーキ)라는 일본어를 줄인 한국어로 보인다.

원래 영어는 hamburg steak.

우리말로 햄버그스테이크가 바른 표기법이다.


비단 경양식집 요리뿐이 아니다.

요즘도 가끔 먹는 과자 '웨하스'도 일본식 발음이자 표기이다.



웨하스(ウェハース) 영어 웨이퍼(wafer)의 일본식 발음에서 왔다.

영어 wafer의 어원은 벌집을 뜻하는 독일어 'wâfel'다.

과자 모양이 벌집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사라다'는 어떠한가? 샐러드(salad)를 아직도 사라다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말로 사라다(サラダ)이다.

햄샐러드를 하무사라다(ハムサラダ)라고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다.


'빠다'

밥에 빠다와 간장 넣고 비벼 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다.

거기에 날달걀까지 풀어서 비비면 최고다.

버터를 빠다라고 했다. 어릴 적 한 친구는 버터와 빠다가 다른 거라고 우기기도 했다.

영어로는 butter.

일본어로는 バター. 발음은 바타인데 왜 우리는 빠다라고 했을까?

바지를 뜻하는 즈봉을 쓰봉이라고 하고

바보란 뜻의 바까를 빠가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인 듯 하다.


마가린. 버터와 비슷한 건데 영어로는 margarin (마저린)이다.

그런데 왜 마가린이라고 할까? 일본에서 マーガリン(마가린)이라고 하니까 그대로 따라한 거다.

철자 'ga'를 '자'가 아니라 '가'로 표기한 거다.

실제 어떻게 발음되는가는 무시한 채.


어릴 적 필자의 집에서는 어묵을 '뎀뿌라'라고 했다.

원래 뎀뿌라는 튀김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어묵은 일본어로 かまぼこ(가마보꼬)다.

필자의 친구 중에는 어묵을 가마보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맞는 일본말이었다.



참고로 뎀뿌라 天ぷら(てんぷら)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말이다.



다음은 모찌떡. 모찌는 찹살떡을 가리키는 일본어다.

그러므로 모찌떡은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

'역전앞'처럼.

그냥 좋은 우리말 찹쌀떡이라고 하면 될 것을 뭣 때문에 모찌떡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19금 이야기.

서울특파원이었던 도쿄신문 사사가세 기자로부터 들은 재미난 이야기다.

서울에 살고 있던 어느 겨울밤 조용한 동네에서 떡장사가 외치더란다.


"찹쌀~떡" "망개~떡" "찹쌀~떡" "망개~떡"

순간 깜짝 놀랐단다. 그리고는 배꼽을 잡고 웃었단다.

"망개~떡"을 듣는 순간.


망개는 여성의 음모(陰毛)를 뜻하는 일본어와 발음이 꼭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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