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이지메'는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지메'라는 용어가 그대로 쓰이는 모양이다.
이지메는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1대 1의 경우보다는 여럿이서 한 명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언어폭력, 신체폭력 등을 동원하는 아주 악질적인 행위로, 이러한 정신적 물리적 공격을 받은 이들은 큰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발생한 이지메가 50만 건을 넘는다.
초등학교가 42만여 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중학교로 10만 건에 가까웠다.
고등학교에서는 만7천여 건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 보면 '히야카시'(冷やかし/ 예전에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휘파람을 부는 등 희롱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잔재일본어 )나 욕설 이지메가 34만건.
가볍게 몸을 부딪히거나 장난하는 척하며 때리는 이지메가 12만 건.
폭력 행위가 7만3천 건. SNS 이지메가 만6천여 건이다.
이처럼 일본은 학교에서의 이지메가 심각한 지경이어서 2013년 아예 이지메방지대책추진법이란 걸 만들었다.
학생들 사이의 이지메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가해아동에 대해서는 징계처분을 내림과 동시에 출석정지 조치를 취하도록 할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지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지메'라는 일본말을 그대로 써오던 것을
'괴롭힘', '집단괴롭힙' 또는 '따돌림' 또는 '집단따돌림'으로 바꿔 써왔다.
어느때 부터인가 '왕따'라는 용어가 더 흔히 쓰이게 되었다.
'이지메' '집단괴롭힘' '왕따'는 학교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직장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요즘엔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직장내 괴롭힘 방지교육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특히 무서운 것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이지메' '따돌림'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넷이지메(ネットいじめ)라고 한다.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까지 다녔던 필자의 큰 아들(현재 대학 3학년생)은 당시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이지메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지메라고 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본인도 한두 번 가까운 친구들 몇 명이 자신을 따돌리고 뛰어가는 일이 있어 기분이 나빴다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장난친 것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당시 필자의 일본인 친구들은 필자의 아이가 학교에서 이지메 당할까봐 많이 걱정해 주었지만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의 사회현상 용어가 한국으로 건너온 사례는 이지메뿐이 아니다.
'원조교제'도 그러하다.
"교수가 원조교제 알선"···여대생 SNS 폭로 '일파만파' 2017.11.8 서울경제
대학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학과 교수가 원조 교제를 알선했다는 여대생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울산 모 대학 페이스북 계정에 ‘저희 과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여대생인 글쓴이는 방학 때 교수에게 연락이 왔고 취직에 도움될 만한 모 기업의 높으신 분과 같이 밥을 먹자고 했으며 식사자리에서 교수가 원조 교제를 알선했다고 주장했다.
기사에서도 등장하는 원조교제는 원래 19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용어다.
援助交際(えんじょこうさい)
돈 많은 성인 남성이 돈이 필요한 젊은 여성에게 용돈을 듬뿍 주며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 중에는 어린 10대 여중생 또는 여고생도 있어 사실상 범죄에 해당하는 미성년자 매춘이다.
원조교제 엔조코사이를 줄여서 '엔코'라고도 하는데 「円光」(일본화폐 단위인 엔에 '코'로 읽히는 빛광자) 또는 「サポ」(서포트 support를 줄인 '사포') 따위로도 쓰인다.
거꾸로 여성이 돈을 내는 교제의 경우에는 역원조교제(逆援助交際), 역원(逆援) 역사포(逆サポ) 따위로 불리었다.
일본이 원조인 원조교제는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enjo kosai
[Noun] The practice of "compensated dating", whereby girls and young women in Japan and Hong Kong provide companionship or sex to older men in exchange for money or luxuries.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원조해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원조남을 구하는 행위를 '파파활'パパ活(ぱぱかつ)이라고 한다.
파파는 아빠라는 뜻이고 활은 활동의 줄임말로, 구직활동, 취직활동의 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파파활이란 용돈 줄 아빠를 구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파파활을 하는 여성은 슈거베이비(sugarbaby シュガーベイビー)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아직 파파활이나 슈거베이비와 같은 용어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보니 필자가 1996년 처음 일본을 갔을 때 도쿄 시내 한복판에 선전문구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데 저게 무얼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일이 떠오른다.
'테레쿠라' テレクラ.
그 후 몇년이 지나고 한국에 전화방이 생겼다.
남자 손님들이 전화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대화하는 것인데,
은밀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 알고보니 도쿄에서 봤던 테레쿠라는 텔레폰클럽의 줄임말이었던 것이다.
이걸 취재하려고 종로의 한 전화방에 '커다란' '몰래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녹취를 따려다 주인장에게 들켜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소리를 들었던 웃지못할 기억도 난다.
일본의 사회현상, 특히 좋지 않은 사회현상과 성산업은 한국에 상륙하면서 일본말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