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김종수. 재일교포 3세다. 그와 처음 만난 건 2005년 도쿄에서다. 내가 특파원으로 있을 때였다. 재일 민단 청년회 부회장이었다. 나중에 청년회장도 지냈다. 가슴이 뜨거운 청년이었다. '자이니치'로 불리는 동포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늘 애썼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며 살았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었다.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점잖게 꾸짖었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못해서 되겠느냐"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자이니치 2세 3세들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을. 그들은 차별을 피해 일본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야 했고 때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을.
그를 다시 만난 건 10년 가까이 전 서울이었다. 경희대 한국어학당으로 유학을 온 거였다. 나의 꾸짖음이 가슴에 상처가 되었을까. 뒤늦게 모국어를 배우겠다며 온 것이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서.
그는 어학당에서 아름다운 중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잘생긴 룡과 귀엽고 예쁜 희를 낳았다. 지금 만으로 다섯 살, 네 살이다.
그는 아주 특이한 사업을 한다. 일본의 예비 신혼부부의 웨딩사진 촬영을 기획하고 한국 웨딩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는 비즈니스다. 일본은 결혼사진 앨범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비싼데 반해 한국에서는 싼 편이란다. 촬영기술과 포토샵기술은 한국이 월등히 뛰어나단다. 그래서 많은 일본 고객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아니, 날아왔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코로나가 그의 사업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내년 봄 일본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큰 아이 룡이 학교 들어갈 나이라서란다. 교육환경을 놓고 일본을 선택했다. 한국의 숨막히는 입시경쟁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그는 룡을 동경 한국학교에 보낼 생각이다. 룡과 희는 한국말을 잘 한다. 엄마랑은 광동어로 대화한다. 아빠와는 일본어로. 어린 아이들이 3개국어를 구사한다. 부럽다.
이들은 재일동포 4세로 살아갈 것이다. 한국인 아빠, 중국인 엄마를 둔 자이니치 4세.
이 아이들이 헤이트 스피치 없는, 차별 없는 일본 사회에서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종수는 나를 형님, 나는 종수를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내 조카 룡이와 희가 무럭무럭 성장해 동북아의 가교 역할을 해줄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