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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01. 2019

소설 2045년
14. 천황 무릎 꿇다

한일 전쟁 미래 소설

14. 천황, 무릎 꿇다


천황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마무라 총리의 배신을 참을 수 없었다. 동시에 언제 자객이 자신을 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함을 씻을 수 없었다. 밤에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 달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안 그래도 마른 체격이었는데 살이 빠지다 보니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다. 눈은 쾽해지고 주름도 자글자글 늘었다. 침대에 눕는 날이 늘었다.

이토 타로가 천황을 없애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천황은 외출하지 않았고 황거는 이중 삼중으로 철통같은 경계와 천황 침소 근접 경호가 이뤄졌다. 이지국 총독의 엄명에 따른 것이었다. 이지국 총독은 이마무라 다케오 총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마무라 총리, 천황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 같소이다. 언제까지 버틸지 모를 일이니 당신이 나서서 옥새를 찍도록 해야 하지 않겠소?"

"네, 총독 각하. 천황 주치의 말로는 천황이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데 본인이 거부하고 있어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군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말해보시오"

"한일보호조약을 합방조약으로 바꾸면 명실공히 일본은 한국과 동일한 통치 체제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많은 일본 국민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일본인이 차별 없이 대우받고 사는 좋은 시대가 열리는 것이니 말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제게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할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음... 일국의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쯧쯧... 그래도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니 내 어찌 그대를 버릴 수 있겠소? 적당한 자리를 내줄 테니 천황이나 잘 설득해보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총독 각하!"

이마무라는 서둘러 황거로 향했다.

"그놈의 늙은이, 이제 좀 포기할 때도 되었구먼"

혼잣말로 중얼거린 이마무라가 황거에 도착, 천황의 침소에 들어선다.

"폐하, 이마무라입니다. 기력을 잃으셨다 해서 심히 걱정이옵니다"

"총리, 내 걱정 해주는 것은 고맙소만 당신은 짐과 조국을 배신했소. 어찌 일본을 한국에 내어줄 수 있단 말이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나한테 다 뒤집어씌운 것도 모자라 어째 나를 암살하려는 모략까지 세울 수가 있단 말이오?"

"폐하, 그것은 오해이옵니다. 폐하를 암살하려 하다니오? 모두 저들이 꾸며낸 일이옵니다. 그리고 한일합방조약에 제가 서명한 것은 일본을 살리기 위해서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옵니다. 한국이 무력으로 일본을 점령해 일본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릴라식으로 저항한다고 해도 저들의 군홧발에 짓밟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총리로서의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입니다. 미국과 극비리에 협의를 하고 있으니 대책이 강구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한국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밖에 지금으로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 이제 옥새를 찍으시는 게 현명할 것으로 아뢰옵니다"

"총리, 총리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그리 한단 말이오"

이마무라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게슴츠레한 두 눈동자가 천황을 노려본다.

"일본의 미래는 더 이상 없단 말이오.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는 내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판이오 천황!"

이마무라가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어서 찍으란 말이오!"
"당신의 몸에는 한국 피가 흐르고 있지 않소? 그러니 한국의 지배에 협조하면 천황의 자리를 계속 누릴 터이니 제발 찍어주시오. 내가 이렇게 빌겠소"

천황은 이마무라가 가엾게 생각되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황 자리에 연연하는 것처럼 비칠까 수치심도 들었다.

"못 찍겠다면 황족 일가를 다 살해하겠소. 천황 당신만 살려두고 황태자를 비롯해 천황의 직계가족, 방계가족까지 모두 황족이란 황족은 씨를 말릴 것이오. 내가 못할 것 같소?"

이마무라가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이틀 뒤 천황의 막내딸 부부가 토메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긴급 뉴스로 푸시된다.

"이래도 버티겠소? 다음은 황태자요"

이마무라가 보낸 라인 메시지였다.

천황은 충격에 빠졌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금고 안에서 옥새를 꺼내들고는 한일합방조약서에 끝내 찍는다.

2032년 8월 29일 이로써 일본은 한국에 합방되고 정식 식민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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