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경민 Aug 31. 2019

소설 2045년
13. 천황 암살작전

한일 전쟁 미래 소설

13. 천황 암살작전


2032년 7월 22일 도쿄 이노카시라 공원
뜨거운 태양이 이노카시라 공원 호수를 내리쬐고 있었다. 청명한 호수에는 가지와 이파리를 늘어뜨린 초록빛 벚나무가 비쳐 있었다. 그 위를 청둥오리 몇 쌍과 함께 보트 몇 척이 떠다닌다.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이지국 총독이었다. 주변에는 경호원들이 흩어져 경계를 펼친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다부진 체격의 청년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검은색 진바지에 연청색 셔츠, 긴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차림이었다. 챙이 좁게 휘어진 야구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이지국 총독 앞에 선다.


"사쿠라 히데구치라고 합니다"


"자네로구먼. 반갑네. 얘기 많이 들었네. 천황 퇴위를 주장한다고?"


"네"


"일본인이 왜 천황을 반대하는 거지?"


"천황제 자체가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일본은 과거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로 전쟁을 일으키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수없이 저질러 주변국에 큰 피해를 줬습니다. 명분도 없고 무모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에 패하고도 천황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버젓이 천황이 국민의 존경을 받도록 모든 언론과 정치권이 분위기를 조성했지요.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천황제를 청산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묵인 아래 정치권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천황제를 유지했던 겁니다. 그것이 일본이 다시 패권을 향한 야욕을 갖게 된 근본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 전 독도 상공에서 있었던 한일 전투기 간 교전과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전쟁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도 천황은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천황제는 폐지되어야 하고 천황은 폐위돼야 마땅합니다. 그게 제 신념입니다"


"자네 신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또 있는가?"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은 드물지만 저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전역에 지역별로 '천폐모'가 흩어져 있고 리더들끼리 정기 모임도 갖고 있습니다"


"천폐모?"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는 모임입니다"


"그렇군. 그럼 자네 뜻을 관철할 기회를 주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일본이 죗값을 치르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천황제 주장을 양지로 끌어올려달란 말일세. 내 적극 도와줄 테니"


한일합방 조약서에 옥새 찍기를 거부하며 버티는 천황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천황제 폐지 운동이 꽤 쓸만한 카드라고 이지국 총독은 생각했다. 옥새를 내주지 않으면 천황제 폐지 운동으로 결국 자리에서 몰아내겠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7월 28일
일주일의 말미가 흘렀지만 천황은 옥새를 내주지 않았다. 천황은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일합방 체결에 자신이 도장을 찍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평가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석이 파에서는 천황 암살작전이 계획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지휘는 넘버 2 한영욱이 맡았다. 물론 배후에는 이감응이 있었다. 이감응이 누구의 지시를 받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감응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봐 이번엔 실수 없어야 돼"


"걱정 마십시오. 두 번 실수는 없습니다"


작전은 이랬다. 한영욱이 이끄는 나석이 파 똘마니들과 야마구치구미 이토가 이끄는 똘마니들로 구성된 작전팀이 영국 국왕 탄신일 기념식에 맞춰 주일 영국대사관저로 이동할 때를 노린다는 것이었다. 천황제 폐지주의자들이 천황이 탄 차를 앞뒤로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는 틈을 타 똘마니들이 천황을 해치운다는 작전이었다.
디데이가 되자 작전이 개시되었다. 황거를 출발한 천황의 승용차가 오오테마치(도쿄시내 최대중심가)로 들어서는 순간 3백여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했다. 사쿠라 히데구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반인륜 범죄자의 후손 천황은 즉각 물러나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천황제 폐지하라!" 


도로는 순식간에 천폐모 회원들로 가득 찼다.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회원들이었다. 천황을 태운 승용차는 시위대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똘마니 한 명이 시위대 틈을 비집고 들어섰다.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수류탄을 꺼내 천황의 승용차 아래로 굴려 넣고는 유유히 돌아서 빠져나온다. 


"꽝!" 


굉음이 오오테마치 빌딩 숲에 울려 퍼진다. 천황의 승용차가 1미터가량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거꾸로 내려앉는다. 놀란 시위대는 혼비백산, 자빠지고 구르며 흩어진다. 천황이 뒷문을 가까스로 열고 나오려 애를 쓴다. 또 다른 똘마니 차례다. 잭나이프를 든 똘마니다. 천황이 찌그러진 승용차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똘마니의 잭나이프가 천황의 목을 겨눈다. 바로 그때 똘마니의 앞을 청년이 가로막는다. 사쿠라 히데구치다. 똘마니의 잭나이프가 천황의 목 대신 사쿠라의 어깨에 꽂힌다. 사쿠라 히데구치는 고꾸라지듯 쓰러지며 고개만 간신히 내밀고 있던 천황을 다시 승용차 안으로 집어넣는다. 


"천황이 위험하다!" 


이 광경을 지켜본 천폐모 동경대 지부 리더 나가노 유키오가 외쳤다. 훗날 일본 독립운동을 이끌게 될 청년이었다. 나가노는 주변에 있던 천폐모 회원들을 천황 승용차 주변으로 끌어모았다. 천황제 폐지와 천황의 퇴위를 외치던 천폐모 회원들이 사쿠라와 천황의 승용차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천황이 테러 위험에 노출됐다는 걸 인식하자 보호에 나선 것이었다. 천황제를 없애자는 것이지 천황을 죽이자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똘마니는 뒤로 물러서고 안개처럼 사라진다.


두 번째 천황 암살작전도 실패로 끝났다. 한영욱은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올렸다. 두꺼운 유리로 된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재떨이였다. 갑자기 일어서더니 이토 옆에 서 있던 이토의 부하 머리통을 재떨이로 갈겼다. 


"억"


부하가 쓰러졌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해진다.


"내가 실수 없이 하라고 했지?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토! 정신 똑바로 차리란 말이야!"


이토가 벌떡 일어선다.


"하이!"


신뢰를 잃은 이토는 만회가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선 천황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야 했다. 두 번의 실패. 또다시 실패하면 인생은 끝이었다. 야마구치 히데오의 뒤를 이어 야쿠자 오야붕(보스)이 될 것이냐, 뒷골목 친삐라(양아치)로 전락하느냐의 갈림길이었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내가 다시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는 없지" 


천황 암살 기도 사건을 보고받은 이지국 총독이 불같이 화를 낸다. 


"천황 암살 기도 사건이라고? 도대체 누가 천황을 암살하려 한단 말이오? 천황이 만일 한국인의 손에 암살당한다면 일본인들의 민심이 돌아서고 한국에 대한 적대심이 커질 것이 뻔하잖소. 그러면 통치가 어려워질 것이 뻔한데 도대체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단 말이오?"


"한국과 일본의 조직폭력배들이 경찰의 사주를 받고 벌인 일로 파악됐습니다"


"뭣이오? 경찰의 사주? 그렇다면 경찰은 누구의 지시로 그따위 짓을?"


"그게..."


"어서 말을 하시오?"


이지국 총독이 다그치자 관방장관 출신의 총독부 고문 코지마가 주저하다 답한다.


"이마무라 총리가 배후 조종자입니다"


"뭣이라고?"


한국과의 전쟁을 결정했던 일본의 총리가 천황 암살을 배후 조종했다고? 이지국 총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왜?
이마무라는 한일 전쟁에서 패한 후 천황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독도 상공에서의 교전이나 그 후 총공격에 나선 것도 천황의 결정이었다고 해왔다. 진실을 덮기 위해 천황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재기를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던 터였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천황마저 배신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했던 이마무라 총리. 이지국은 한심하다는 얼굴이었다. 이지국 총독은 한일합동 공안조사부의 이 같은 조사 결과를 즉시 천황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배신감을 느낀 천황이 한일합방조약서에 옥새를 찍을 것을 기대하면서.



이전 12화 소설 2045년 12. 실패한 미관파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