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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29. 2019

소설 2045년
12. 실패한 미관파천

                                                                                            

12. 실패한 미관파천




일본 황후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던 그 순간 천황은 암살 작전을 예감이라도 한 듯 급히 황거를 빠져나가 몸을 피하고 있었다. 황후가 자신 대신 칼을 맞아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비서관과 함께 전용차 편으로 오다이바(도쿄시내 지명, 후지TV 본사가 있는 곳)로 연결되는 레인보우브릿지를 건너는 도중이었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비서관이 전화를 받더니 뒷좌석에 앉아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황에게 보고했다.


"무슨 일이오?"


"... 놀라지 마십시오. 조금 전 황후 폐하께서 서거하셨다고 합니다. 괴한에게 시해됐다는 보고입니다"


"뭣이오?" 충격에 빠진 천황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폐하, 괴한들이 천황 폐하를 노렸다가 황후 폐하께서 당하신 듯하다 합니다. 지금 곧바로 미국 대사관으로 모시라는 궁내청 장관의 지시입니다. 곧바로 모시겠습니다"


천황의 전용차는 다시 레인보우브릿지를 건너 수도고속도로로 향했다. 토라노몬(도쿄시내 지명) 인근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도착한 건 새벽 4시 반. 제이든 해리스 주일 미국 대사가 천황을 맞았다.


"황후 서거 소식에 얼마나 충격이 크시겠습니까? 저도 놀랐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안을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조사단을 구성해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천황께서는 안전을 위해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 바랍니다"


"고맙소, 대사"



어느새 동이 트고 도쿄 경시청은 발칵 뒤집혔다. 황후 시해 사건은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모든 신문이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고 TV마다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 황후 서거 소식을 알리는 특보가 진행됐다. 황거 내 황후 침소에서는 경찰의 조사가 시작됐다. 


그날 낮 12시 아카사카의 한 음식점 특실에 나석이 파 넘버 2 한영욱과 야마구치구미 넘버 2 이토 타로가 마주 앉았다.


"형님, 면목 없습니다. 하필 그 시간에 천황이 없어서"


"그러게 말이야. 그럴 줄 누가 알았나? 어차피 벌어진 일, 일단 수습부터 해야지. 우리 소행으로 알려지면 너나 나나 인생 끝이야. 그리고 우리 나석이 파나 야마구치구미나 우리 형제 조직원들 모두 매장될 테니. 손을 써야 돼"


"네? 어떻게 말입니까"


"희생양을 만드는 수밖에. 네 부하 두 놈만 몇 년 빵에 보내야겠다. 그놈들 천황제에 반대해서 협박만 하려 들어갔다가 우발적으로 죽이게 됐다고 자백하게 해"


"... 3년 내에 빼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날 저녁 롯뽄기의 한 음식점


"평소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던 일본인 2명이 술에 취한 채 황거 담을 넘었고 이를 제지하던 경비원과 시비가 붙어 경비원을 죽이고는 천황 침소까지 침입, 잠자던 황후에게 일본은 더 이상 천황제를 유지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다가 황후가 자신들을 무시하며 내쫓으려 하자 격분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이렇게 자백시키기로 한 거 맞지?"


이감응이 한영욱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3년 내에 빼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렇게 자백시키기로 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일주일 후 경시청은 황후 시해범은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본인 2명이었고 우발적 살해 사건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미국 대사관에 몸을 숨긴 천황은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황후를 시해한 것은 한일합방조약에 옥새를 찍지 않은 데 대한 보복임이 분명했지만 진실은 숨겨져 있었다. 


"일본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100년 전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일본이 이제 거꾸로 한국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는 꼴이 되다니..."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지만 천황은 자신의 목숨이 언제 달아날지 몰라 항상 불안해했다. 총독이 무슨 구실로 자신을 대사관에서 쫓아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언제까지 자신을 보호해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는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지국 총독이 제이든 해리스 대사를 관저로 불렀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배상을 받는 대신 일본 군부와 천황의 압정으로부터 일본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일보호협정을 체결했는데, 이제 하나의 통치제에 아래 두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소. 많은 일본 국민들도 대한민국으로의 합병을 원하고 있으니 그리해야 하지 않겠소? 헌데 천황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니 걸림돌이오. 귀국에서 천황을 붙들어놓고 내주지 않으면 한미동맹에도 큰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 대통령님의 걱정이오. 석 달간 보호했으면 체면은 차린 것이니 이제 넘기시오"


한때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로 군림했던 미국이었지만 이제 중국과 독일, 러시아에 밀려 점차 쇠퇴하는 국가로 전락하는 미국이었다. 연방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이미 세계 6위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가 됐으니 미국이 한국 눈치를 볼 만도 했다.


"명분이 필요합니다. 명색이 한 나라의 천황이 아닙니까? 본인이 안전을 위해 우리 대사관을 찾아왔는데 어떤 명분으로 우리가 신병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해리스 미국 대사는 명분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지난번 한국에 대한 군사공격을 천황이 승인했다는 사실이 우리 조사에서 밝혀졌소.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천황을 조사하고 응당의 책임을 묻기 위해 우리에게 신병을 넘기라는 것이오. 그보다 더 충분한 명분이 어디 있겠소?"


천황이 전쟁 개시 명령을 내렸다는 건 날조였다. 해리스 대사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 정도면 내어줄 명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일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는 본국에 보고하고 공식 훈령을 받아 천황의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답한다.



2032년 7월 20일


천황은 황거로 환궁한다. 미관파천 백일 만이었다.

이지국 총독이 그에게 한일합방 조약서를 내민다. 


"어서 옥새를 찍으시오"  


"내게 일주일의 말미를 주시오"


"석 달도 기다렸는데 일주일을 못 드릴 수는 없지. 딱 일주일이오"


천황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일합방 조약서에 시선을 떨군다. 일주일 후 자신을 노린 자객이 올 것이란 불안감에 몸을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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