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까지 퍼 나르며 막은 산불

울진 삼척 산불이 주는 교훈

by 윤경민

똥물까지 퍼 나르며 온몸으로 막은 산불

강원 경북 대형 산불이 주는 교훈


“울진에서 난 산불이 삼척으로 넘어가고 있답니다” 금요일 오후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집에 막 도착한 시각, 회사서 걸려온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였다. 심상치 않았던 경북 울진 산불이 결국 강풍을 타고 강원도 삼척으로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곧바로 강릉 주재 기자의 현장 투입과 특보 준비를 지시하고 회사로 차를 몰았다. 동시에 현장에서의 생중계 준비는 물론 피해 지역 주민이나 이장과의 생방송 전화인터뷰, 소방방재 전문가와 기상전문가 섭외를 주문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야 했다.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LG헬로비전 강원, 영동, 영서 등 3개 SO 지역채널에는 산불확산을 알리고 신속한 대피를 촉구하는 ‘속보 자막’이 즉시 송출되기 시작했다.


취재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산림청과 소방청에서 제공받은 화면을 보니 ‘불바다’였다. 낙타 등처럼 생긴 야트막한 동산 두 개가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채 훨훨 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베트콩이 숨어든 밀림을 태우기 위해 화염방사기 수십 대로 불을 지르는 장면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2019년 고성과 속초 일대를 덮쳤던 ‘강원 산불’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 산불임을 직감하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강릉에서 출발한 취재팀이 삼척에 도착한 직후인 밤 8시 50분 첫 특보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 시뻘건 불 줄기를 배경으로 중계하는 박건상 기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뻘건 화마가 산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중계 현장에서도 뜨거운 불길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위험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가장 두려웠던 건 액화 천연가스 저장 탱크였다. 삼척 LNG 기지 코앞까지 산불이 번져 일촉즉발의 위기가 엄습한 순간이었다.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LNG 저장탱크 주변에 긴장감이 흘렀다. 여기를 막지 못하면 대형 폭발은 불가피한 상황. 순식간에 일대가 참혹한 불바다로 변할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엄청난 재앙을 막기 위해 저녁 7시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됐다. 필사의 저지선이 구축됐다. 화마는 다행히 비켜갔다.


대신 일대 산림을 삽시간에 태우며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갔다. 겨우 내 거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으면서 바싹 메마른 숲에 초속 25미터의 태풍급 강풍이 불을 춤추게 했다. 수억 개의 불티가 반딧불 떼처럼 이 산 저 산으로 불씨를 날랐다.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들도 위협했다. 송진을 머금은 솔잎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밤이 되자 진화헬기는 무력화됐다. 속수무책이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만 바라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산불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흘째 저녁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여의도의 60배 가까이 되는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서울의 무려 4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튿날인 산불 닷새째 아침에는 여의도의 75배, 서울의 3분의 1면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집계) 지난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22년 만에 최대 피해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화마는 민가도 삼켰다. 주택과 창고 등 시설물 5백여 채를 시커먼 숯덩이로 만들었다.


폭격을 맞은 듯 맥없이 쓰러져버린 주택, 앙상한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긴 채 폭삭 주저앉은 창고가 여기저기 즐비했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의 한 주택은 벽돌이 모두 떨어져 나갔고 유리병과 부탄가스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덩그러니 널브러진 유리컵과 그릇, 조리 기구들만이 그곳이 주방이었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삼척시 원덕읍 월천 2리 이장은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큰 나무들만 앙상하게 서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복구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7천여 명이 불을 피해 각자의 집을 빠져나왔다. 맨몸으로 도망치듯 피해야 했다. 마을회관 등 대피소마다 허둥지둥 빠져나온 주민들로 가득했다. 옥계면의 한 주민은 헬로TV와의 인터뷰에서 집에 붙은 불을 꺼달라며 소방차를 인도하며 차를 끌고 불길을 뚫고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집은 다 타버리고 말았다.


가족처럼 키우던 반려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칠 뻔했던 까맣게 타버린 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그동안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들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찌나 새까맣게 탔던지, 처음엔 못 알아봤어요. 서로 엉킨 채 타버려 재가 됐더라고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워낙 광범위하게 산불이 번지다 보니 소방 인력이 감당해내지 못했다. 스스로 화마에 맞서 싸운 주민도 적지 않았다. 강릉의 한 아파트에서는 용감한 시민들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몇 명만 남아 달려드는 불을 끄느라 사투를 벌였다. 소화전이 톡톡히 한몫을 해냈다.



희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는 나흘이 되도록 가시지 않았다. 재가 날아다녀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상태가 계속됐다. 포털 사이트에는 호소가 넘쳐났다. “연기가 가득 차서 숨도 못 쉬고 머리가 아프다” “양양에도 연기가 자욱하고 타는 냄새가 나서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울진읍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연락이 안 돼요. 거기 상황이 어떤가요” 연락 두절로 애태우는 손자의 글은 필자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울진 삼척 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는 소식에 동해시도 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는 애원도 끊이지 않았다. 진화 헬기를 보내달라는 요청도 쇄도했다. 충실한 재난방송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수도권에서 이런 산불이 나도 방송이 외면했겠느냐” "국가재난방송 주관사인 KBS는 실시간 재난방송해주길 부탁드린다. 수신료의 가치를 알려달라" 는 질타가 이어졌다.


울진에서 처음 발생한 산불의 원인으로 담배꽁초가 지목되고 있다. 누군가 달리던 차창 밖으로 휙 던진 담배꽁초가 낙엽 위에 떨어졌고 불이 붙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게 산림청의 추정이다. 영월 김삿갓면에서 시작된 별도의 산불은 화목난로가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이 화목난로의 재를 치우면서 불씨가 번진 것이다. 강릉시 옥계면에서 시작된 산불 원인은 방화였다. 정신질환 이력을 가진 60대 남성이 토치로 노모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대형 산불로 이어진 것이다.


산림청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 간 발생한 산불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은 사소한 부주의인 것으로 나타났다. 76%가 담배꽁초를 버렸다가, 밭두렁을 태우다가, 쓰레기를 소각하다가 재앙으로 번졌다는 설명이다.


울진 삼척 강릉 영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이번 대형 산불은 만 7천 헥타르의 숲을 불살랐다. 서울의 무려 4분의 1 크기나 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번 산불 역시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일깨워줬다. 누군가의 사소한 실수로, 생명 같은 우리 국토의 숲이 타 들어가고 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숲은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 무려 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말한다. “비라도 서 내렸으면” “굳건히 일어나서 이겨내기를” “현장 중계만 보면 울컥… 도움 못 드려 죄송”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 힘내세요” 이런 응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반 세기 전 표어가 여전히 유용함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온몸으로 안 막으면 뒤에 다른 집들까지 다 초토화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막은 거죠” 수돗물이 끊긴 상태에서 불길이 집을 향해 번지자 정화조의 똥물까지 퍼 날라 진화에 나섰다는 동해시 주민 박봉대 씨의 인터뷰가 귓전에 맴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피해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며 나흘 연속 산불과 사투를 벌여온 모든 분들과 나흘 간 15차례에 걸친 특보 등 재난방송에 애써준 취재진 제작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LG헬로비전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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