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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29. 2019

소설 2045년
6. 부도칸 격투

                                                                                                                                                                                                                                                                                                                                                                                                                                                                                                                         

6. 공나석과 야마구치 히데오의 부도칸 격투

한국 조폭 보스와 일본 야쿠자 오야붕간의 옥타곤 결투 



해가 바뀌어 2032년 1월 3일 신사마다 하쓰데모우데를 하러 온 인파로 넘쳐났다. 도쿄 시내의 메이지진구 역시 그랬다. 국방권과 외교권을 박탈당한 일본 국민들은 비교적 차분했다. 일본이 곧 한국에 넘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별 저항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년을 맞아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가족단위행렬이 예년처럼 길게 이어졌지만 국가의 재건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인파 가운데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낀 깡마른 체격의 청년이 본전 앞에 섰다. 13년 후인 2045년 일본 독립군을 이끄는 지도가가 될 나가노 유키오였다. 나가노 유키오는 줄을 흔들어 종을 울렸다. 양손을 모아 두 번 손뼉을 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신사에서 종을 울리는 것은 신사에서 모시는 신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이다. 대개 3~4초 가볍게 묵례하며 소원을 비는 것으로 의식을 끝내는데 청년은 달랐다. 30초가 흐르고 1분이 흘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손은 합장한 채 꼼짝하지 않았다. 순서를 기다리던 이들 가운데서 몇 명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청년은 메이지진구가 모시는 메이지 천황의 혼을 불러내려고 하는 듯했다. 메이지진구는 바로 메이지 천황을 모시는 신사였다. 1분 20여 초가 흘렀을까. 줄 서서 기다리던 다른 참배객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다른 청년이 다가왔다. 


"오이 나가노! 귀신이라도 불러내려는 건가? 뒤 사람들 기다리잖아?" 


나가노의 동경대 친구 이철훈이었다. 


"아! 시쯔레~(실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나가노 유키오는 급히 목례를 한차례 한 후 비켜섰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오래 한 거야?" 


"아~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내일 오후 부도칸에서 아주 재미난 격투기 경기가 열린다는데, 들었나?"


"부도칸에서 격투기?"


부도칸에서 격투기 경기가 열린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래, 그것도 한일전이라네"


"한일전?"


"심지어 더 재밌는 건 한국에서 원정 온 조폭 두목과 야마구치구미 오야붕 간의 1 대 1 대결이라고 하더군. 같이 가보지 않겠나?"


"..."


"왜 품격 떨어질까 봐?"


"그게 과연 공정한 게임이 될까?"


"불공정할 건 또 뭔가? 양국 폭력 조직 간의 살육 대신 보스끼리의 대결로 승부를 가르기로 했다더군. 야마구치가 자기 특기인 격투기를 제안했는데 상대인 공나석이 110kg의 거구인데다 태권도 유단자여서 아주 흥미진진한 시합이 될 것 같아. 숙희하고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가자"


이철훈은 한일 축구전을 보러 가자고 하듯 나가노 유키오에게 이야기했다.


나가노 유키오는 "이건 자존심이 걸린 시합이군"이라며 선뜻 같이 가기로 한다.




2032년 1월 4일


부도칸 주변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한일 자존심 대결, 양국 폭력단 보스 간의 결투, 110kg vs 75kg, 태권도 vs 가라테' 마이니치신문의 사회면 톱기사 헤드라인이었다. 도쿄경시청을 장악한 한국 서울지방경찰청 도쿄지청 이감응 경감은 미소를 머금은 채 신문을 응시했다. 


"미친놈들이군" 


이감응은 일본 경찰 정보과 출신인 다나카 요시오에게 신문 기사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하이! 시합을 중단시키고 모두 체포할까요?"


"아니, 놔둬. 대신 게임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쪽빨이 경관을 부심판으로 배치하고 혹시 모를 소요에 대비해서 주변에 병력 배치하고 잘 감시해"


부도칸에는 세기의 격투기를 보러 오는 한일 양국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야마구치구미 소속 야쿠자들을 비롯해 일본 전역의 야쿠자 파벌 소속 행동대원들도 대거 몰렸다. 얼굴에 칼자국 아니면 손가락이 하나 없거나 이빨이 한두 개 빠졌거나 흉악한 표정의 야쿠자들이 먼저 부도칸 입구에 도열해 있었다. 나석이 파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가 좀 안돼서였다. 


"야 이 쪽빨이 야쿠자 새끼들아! 지금 시위하냐? 그 긴 칼 뭐냐? 선량한 시민들 겁나게시리. 다 안 치울래?" 


나석이 파 넘버 4 이한식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럼 너네들도 무기는 다 치워" 야쿠자 중간 보스쯤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양쪽에서 일본도와 회칼, 도끼들이 쏟아져 나왔다. 몸수색이 시작됐고 양쪽 행동대원들이 입장한다.


178cm 75kg의 다부지면서도 날씬한 체격을 가진 야마구치 히데오가 웃통을 벗은 채 팔굽혀펴기를 한다. 일어서서는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몸을 푼다.


"고노야로! (이 새끼) 내가 격투기만 10년을 했어. 일본 가라테의 쓴맛을 보여주고 말겠어!"


속으로 자기 최면을 걸듯 읊조린 야마구치 히데오가 욱일기로 몸을 감싼다. 


187cm 110kg의 거구이면서 근육질 몸을 가진 공나석이 샌드백을 두드린다. 반달차기에 이어 돌려차기. "우두둑 우두둑" 목을 한 바퀴 돌리며 씩 웃는다. 


"쪽발이 새끼, 넌 오늘 뒈졌어!"


11시 58분


각자 대기실에서 있던 두 사람이 동문과 서문을 통해 부도칸 안에 설치된 옥타곤을 향하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마구치 오야붕 감바레! 닛뽄 감바레!"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조폭 보스 공나석 파이팅!"


양국을 대표하는 조직폭력배를 응원하는 함성이 메아리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본 부도칸에서 연출됐다.


"아주 흥미진진한걸~. 야마구치가 이기면 나석이 파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고, 공나석이 이기면 일본 야쿠자들이 한국 나석이 파의 꼬붕이 되는 거겠지"


VIP석에 앉아있던 이감응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하이! 소우데스네.(네, 그렇죠) 누가 지든 깨끗이 승복해야 할 텐데요"


옆에 서 있던 다나카 요시오 형사가 받았다.


객석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미국인 심판이자 사회자가 옥타곤 위에 올랐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오늘 동아시아 최대 경기가 펼쳐집니다.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될 것 같은데요. 양쪽 선수를 소개합니다. 먼저 한국 대표입니다. 신장 187센티미터, 체중 110킬로그램. 태권도 7단, 유도 2단 공나석!"


나석이 파가 일제히 함포사격하듯 함성을 울렸다. "우와~ 형님 파이팅!"


"일본 대표입니다. 신장 178센티미터 체중 75킬로그램. 가라테 6단, 주짓수 1단. 야마구치 히데오!"


순간 부도칸이 들썩였다. "닛뽄 감바레! 야마구치 오야붕 감바레!"


진한 초록빛과 붉은빛의 용 한 마리가 승천을 준비하듯 똬리를 튼 문신이 발목부터 목 아래 가슴까지 새겨져 있다. 훈도시 차림의 야마구치가 옥타곤에서 몸을 푼다.


호랑이가 앞발을 든 채 포효하며 흰 이빨을 드러낸다. 건너편 펜타곤에서 어깨를 푸는 공나석의 등에 그려진 문신이다.


"댕~"


묵직한 종소리와 함께 호랑이와 용의 격투가 시작된다.


먼저 호랑이가 치켜올린 앞발로 용을 내리찍는다. 용은 몸을 틀고는 호랑이의 다리를 감아올린다. 그리고는 하강하듯 눕힌다. 


"얍빠리 네와자다죠" (역시 테이크다운이지)


야마구치를 응원하는 일본인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야마구치는 격투기를 하면서 테이크 다운 기술을 연마했다. 상대를 쓰러트리고 위에 올라타 파운딩을 하거나 팔을 꺾는 게 그의 특기다. 


널브러진 호랑이가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미 용은 호랑이 몸뚱아리를 칭칭 감은 채 올라와 있다. 용의 공격이 시작된다. 파운딩.


공나석은 어이없는 테이크다운 공격에 당황, 야마구치의 주먹이 매섭게 자신의 왼쪽 눈언저리를 가격하는 걸 지켜본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10여 차례 주먹세례를 받은 공나석이 몸을 비틀며 허리를 곧추세운다. 출렁이며 균형을 잃은 야마구치의 아랫도리를 향해 발길질. 야마구치가 나가떨어진다. 낭심을 부위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자 심판이 제지. 10초간 타임 후 호랑이와 용은 다시 옥타곤에 선다.


탐색전이다. 


"어라 이 새끼, 드러 눕히는 게 특기인가 보네. 쪼잔하게... 정정당당하게 한 방으로 할 것이지" 


호랑이가 짜증을 낸다. 


용의 테이크다운 시도가 계속된다. 덩치 큰 상대와 정면 대결하는 것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 넘어뜨리고 마운트 상태에서 파운딩을 하거나 암바 기술로 상태 팔을 꺾어 항복을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양손으로 호랑이 다리를 잡아 자빠뜨리려는 궁리만 하는 사이, 클린치 상태에서 공나석의 니킥이 야마구치의 턱을 날린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공나석의 축구공만 한 무릎 공격에 야마구치의 각진 턱이 부서지는 듯했다. 자빠져 버린 야마구치를 호랑이가 놓칠 리 없다. 110kg 체중을 실어 공중으로 점프, 양발로 녀석의 배를 짓밟는다. 충격이 크다. 턱이 부서진 용은 복부를 하중 5백 킬로그램은 될법한 충격을 받고는 나뒹군다. 


"땡~" 순간 1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야마구치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종소리였다.


1분 휴식 후 이어진 2라운드.


의기양양해진 공나석이 오른팔을 휘휘 휘둘렀다. 정신을 차린 야마구치는 오른손으로 덤비라는 손짓을 한다. 공나석이 달려들었다. 왼손으로 잽을 두어 번 날리더니 뒤돌려 차기로 놈의 턱을 노린다. 야마구치는 순식간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버티고 있던 공나석의 왼 다리를 낚아챈다. 공나석이 넘어진다. 야마구치가 마운트에 오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파운딩 공격에 옥타곤이 뱅뱅 돈다. 이대로 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 테이크다운에서 클린치. 놈의 팔을 붙들어맨다. 10여 초가 지났을까. 체중을 실어 뒤집기를 시도한다. 드디어 스윕에 성공. 호랑이가 용을 올라탔다. 엉덩이로 녀석의 배를 완전히 깔고 앉았다. 이제 내리치기만 하면 된다. 웃음기 띤 표정으로 야마구치의 눈을 쳐다본다. 겁먹은 눈빛이다. 그런데 살기가 있다. 야비한 표정이다. 공나석의 오른 주먹이 야마구치의 반쯤 찢어진 오른쪽 눈을 내리친다. 핏방울이 튄다. 이어 공나석의 왼 주먹이 야마구치의 코에 내리꽂힌다. 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구의 호랑이가 날렵한 용의 허리춤에 눌러앉은 채 포효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운 채.


순간 이번엔 야마구치의 스윕이 성공한다. 다시 공수가 뒤바뀌고 이번엔 야마구치의 엘보 공격이 공나석의 턱에 꽂힌다. 스윕이 두세 차례 이어지고 두 사람 모두 기진맥진. 2회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에 둘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마지막 라운드.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공나석은 한방의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야마구치는 초크나 암바의 기회를 노렸다. 야마구치가 먼저 테이크다운에 성공했다. 완전히 마운트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한쪽 다리를 제압한 채 클린치를 피해 가며 공나석의 팔을 공략했다. 드디어 암바의 기회가 왔다. 공나석의 왼팔이 걸려들었다. 왼쪽 다리로 공나석의 목을 누르고 오른 다리로 공나석의 배를 누였다. 양손으로 공나석의 오른팔을 붙들고 꺾는다. 공나석의 팔뼈가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공나석은 지옥 문 앞까지 가는 고통에 뼈가 부러질 듯한 심한 통증에 왼손으로 옥타곤 바닥을 두드릴 뻔했다. 그러나 이대로 야쿠자에게 패배할 순 없었다. 온갖 생각이 공나석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국 조폭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공나석의 왼손 주먹이 야마구치의 낭심을 향해 날았다. 야마구치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암바는 풀렸다. 다시 스탠딩. 반칙이었지만 위기를 모면한 공나석이 야마구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올렸다, 반칙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파이트!" 


미국인 심판의 경기 독촉에 싸움이 재개된다. 남은 시간은 30초. 야마구치가 잽싸게 달려든다. 공나석의 다리를 향한다. 공나석이 몸을 왼쪽으로 비튼다. 오른쪽 다리로 야마구치의 목을 겨누며 옆차기를 날린다. 정확이 야마구치의 목에 내리꽂힌다. 야마구치가 휘청인다. 팔이 축 늘어진다. 공나석이 몸을 왼쪽으로 돌린다. 이번엔 왼발 돌려차기. 야마구치의 왼쪽 광대뼈가 부서진다. 


"철퍼덕"


그대로 피범벅 바닥에 엎어진 야마구치가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부도칸에 정적이 흐르고 한편에서 함성이 쏟아진다. 


"대한민국 조폭이 일본 야쿠자를 쓰러뜨렸다!"


"이제 한국 조폭이 야쿠자를 먹겠구먼. 다나카, 앞으로 바빠지겠어" 


이감응 경감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다나카를 응시했다.


일본 야쿠자 조직과 한국 조폭 간의 형제 선언식은 1월 25일 저녁 제국호텔서 개최하는 것으로 예고됐다. 말이 형제 선언식이지, 야쿠자들이 한국 공석이 파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가 될 것이었다. 




*격투기 용어 설명


파운딩: 마운트포지션 상태에서 상대방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는 것


스윕: 그라운드 상태의 가드포지션 선수가 상대를뒤집고 상위포지션을 차지하는 것


초크(조르기) : 상대방의 목을 조르는 기술. 경동맥을 압박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암바: 팔꿈치를 꺾는 기술


클린치: 양 선수가 서로 껴안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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