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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29. 2019

소설 2045년
7. 형제선언식

                                                                                                                                                                            7. 형제 선언식


2032년 1월 25일 드물게 도쿄에 눈이 내렸다. 밤사이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히비야공원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과 뉴오타니 호텔에 나뉘어 머물고 있는 나석이 파 일당이 검은색 승용차 행렬로 속속 제국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야마구치구미 일행이 일행을 맞는다.


 "오스!(야쿠자들의 인삿말. 오하요우고자이마스의 줄임말) 어서 오십시오" 


야마구치 히데오가 공손하게 공나석에게 고개를 숙인다. 코 뼈가 부러진 야마구치 히데오의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였다. 시퍼렇게 멍든 양쪽 눈은 잠자리형 선글라스로 감췄다. 턱에는 붕대를 감은 채였다. 


"3주가 지났는데 아직인가? 하긴 내 주먹 맞고 성한 놈이 없었으니까. 어이 야마구치, 며칠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한국에서 기력 회복에 좋은 한약 공수해왔거든" 


공나석이 청색 각진 손상자 하나를 야마구치 히데오에게 건넨다.


"거르지 말고 먹어"


"아니끼, 아리가또고자이마스"(형님, 감사합니다)


야마구치는 공나석을 형님이라 부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국호텔 2층 그랜드볼룸엔 야마구치구미 간부들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올라온 각 지역 야쿠자 구미쵸(각 야쿠자 조직 두목)들이 모여 있었다. 공나석 일행이 들어서자 모두들 일어나 예를 갖췄다. 


"한국에서 오신 공나석 회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사회를 맡은 재일동포 출신 일본인 귀화 예능인 이타바 마사오의 목소리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한국 최대 대부 업체인 나석그룹과 일본 최대 부동산임대업 그룹인 야마구치구미 간의 형제 선언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공나석 회장님과 야마구치 히데오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연단 앞에 놓인 방석을 향해 걸어간다. 먼저 공나석이 양반다리로 앉자 야마구치 히데오가 그를 바라보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타바 마사오가 두 사람 앞에 놓인 오초코(사케용 술잔)에 돗쿠리(뜨거운 사케를 담는 병)에 든 사케를 따른다. 


"두 회장님께서는 이 술잔을 높이 들고 두 그룹이 형제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고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일제히 감빠이(건배)를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건배와 여러분의 건배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이 순간 이후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준비되셨으면 회장님들 건배하시죠"


야마구치 히데오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 야마구치구미를 비롯한 일본 야쿠자들은 일본 전역을 제각각 나누어 관리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공나석 아니끼(형님)의 지도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됐습니다. 공나석 아니끼의 한국과 일본 열도 지역 통일을 축하드리면서 건배를 제의합니다"


입이 벌어진 공나석이 받았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우리 한국을 우습게 보고 식민 지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우리 주먹은 일본 야쿠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졌었어요. 종로 김또깡(김두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제 시대가 바뀌어 일본이 한국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어요. 하지만 우리네 주먹 쓰는 사람들은 다 한 가족이에요. 앞으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며 두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자 모두 잔을 높이 치켜들고 건배를 외칩시다, 건배!"


"건배!"


제국 호텔 전체에 건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운 5백여 명의 함성이었다. 


"형제 선언식의 하이라이트, 충성 맹세가 있겠습니다"


이타바 마사오가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야쿠자 하나가 쟁반을 갖고 등장한다. 쟁반 위에는 7cm짜리 단도와 도마가 올려져 있다. 야마구치 히데오가 쟁반을 받아들고는 이마 위로 올렸다 자신의 무릎에 내려놓는다. 무대 뒤에선 머리에 하치마키(머리띠)를 두르고 훈도시(기저귀같이 생긴 남자들의 팬티)만 찬 사내가 대북, 타이코를 울려댄다. 


"둥!" "둥!"


긴장감이 고조되고 야마구치 히데오가 도마 위에 자신의 왼손을 옆으로 가지런히 놓고 오른손으로 단도를 쥔다.


그리고는 왼쪽 새끼손가락 두 마디째 바깥에 단도의 끝을 대고 45도 각도로 올린다.


"둥!"


"아니끼,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제 손가락을 바칩니다"


의연한 표정으로 야마구치 히데오가 외친다.


"쓱"


0.1초 만에 그의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간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새끼손가락을 베이지색 보자기에 잘 쌓고 자신의 손에도 같은 보자기를 두른 후 손가락 두 마디가 든 보자기를 두 손으로 치켜들고 이마를 조아리며 공나석에게 바친다.


이를 보고 있던 야쿠자 일당 전원이 기립하더니 공나석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야마구치, 너의 충성 맹세를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는 형제다. 배신하는 자에겐 죽음이 뒤따를 것이오, 충성하는 자에겐 영광이 따를 것이다. 자 오늘 축배를 들자"


"감빠이"


무대에는 밴드가 입장해 연주를 하고 기모노 차림의 게이샤들이 뒤따라 들어와 조폭과 야쿠자들에게 술을 따른다.


"새끼들 지랄들 하네"


제국호텔 보안실에서 CCTV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서울시경 도쿄지청 이감응 경감이었다.


"세력이 너무 커지면 다루기 힘들어질 테니 뭔가 수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옆에 있던 다나카 요시오 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저것들 까부는 거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저놈들 중에 몇 명 쓸만한 놈들을 먼저 내 놈으로 만들어놔야 해. 다나카, 궁리해봐"


"하이!"


이감응은 폭력단을 이용해 뭔가를 꾸밀 요량이었다. 그냥 나랏일에 쓸모 있는 일을 시켜야겠다 하는 생각이었지만 이것이 훗날 황거 습격사건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story 7 형제 선언식 / 한일 전쟁 미래소설 '2045년' : 네이버 블로그                                                                                                                                                                                                                                                                                                                                                                                                                                                                                                                          

7 형제 선언식




2032년 1월 25일 드물게 도쿄에 눈이 내렸다. 밤사이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히비야공원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과 뉴오타니 호텔에 나뉘어 머물고 있는 나석이 파 일당이 검은색 승용차 행렬로 속속 제국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야마구치구미 일행이 일행을 맞는다.


 "오스! 어서 오십시오" 


야마구치 히데오가 공손하게 공나석에게 고개를 숙인다. 코 뼈가 부러진 야마구치 히데오의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였다. 시퍼렇게 멍든 양쪽 눈은 잠자리형 선글라스로 감췄다. 턱에는 붕대를 감은 채였다. 


"3주가 지났는데 아직인가? 하긴 내 주먹 맞고 성한 놈이 없었으니까. 어이 야마구치, 며칠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한국에서 기력 회복에 좋은 한약 공수해왔거든" 


공나석이 청색 각진 손상자 하나를 야마구치 히데오에게 건넨다.


"거르지 말고 먹어"


"아니끼,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야마구치는 공나석을 형님이라 부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국호텔 2층 그랜드볼룸엔 야마구치구미 간부들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올라온 각 지역 야쿠자 구미쵸들이 모여 있었다. 공나석 일행이 들어서자 모두들 일어나 예를 갖췄다. 


"한국에서 오신 공나석 회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사회를 맡은 재일동포 출신 일본인 귀화 예능인 이타바 마사오의 목소리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한국 최대 대부 업체인 나석그룹과 일본 최대 부동산임대업 그룹인 야마구치구미 간의 형제 선언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공나석 회장님과 야마구치 히데오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연단 앞에 놓인 방석을 향해 걸어간다. 먼저 공나석이 양반다리로 앉자 야마구치 히데오가 그를 바라보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타바 마사오가 두 사람 앞에 놓인 오초코에 돗쿠리에 든 사케를 따른다. 


"두 회장님께서는 이 술잔을 높이 들고 두 그룹이 형제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고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일제히 감빠이를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건배와 여러분의 건배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이 순간 이후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준비되셨으면 회장님들 건배하시죠"




야마구치 히데오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 야마구치구미를 비롯한 일본 야쿠자들은 일본 전역을 제각각 나누어 관리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공나석 아니끼의 지도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됐습니다. 공나석 아니끼의 한국과 일본 열도 지역 통일을 축하드리면서 건배를 제의합니다"




입이 벌어진 공나석이 받았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우리 한국을 우습게 보고 식민 지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우리 주먹은 일본 야쿠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졌었어요. 종로 김또깡,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제 시대가 바뀌어 일본이 한국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어요. 하지만 우리네 주먹 쓰는 사람들은 다 한 가족이에요. 앞으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며 두 그룹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자 모두 잔을 높이 치켜들고 건배를 외칩시다, 건배!"


"건배!"




제국 호텔 전체에 건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운 5백여 명의 함성이었다. 




"형제 선언식의 하이라이트, 충성 맹세가 있겠습니다"


이타바 마사오가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야쿠자 하나가 쟁반을 갖고 등장한다. 쟁반 위에는 7cm짜리 단도와 도마가 올려져 있다. 야마구치 히데오가 쟁반을 받아들고는 이마 위로 올렸다 자신의 무릎에 내려놓는다. 무대 뒤에선 머리에 하치마키를 두르고 훈도시만 찬 사내가 대북, 타이코를 울려댄다. 


"둥!" "둥!"


긴장감이 고조되고 야마구치 히데오가 도마 위에 자신의 왼손을 옆으로 가지런히 놓고 오른손으로 단도를 쥔다.


그리고는 왼쪽 새끼손가락 두 마디째 바깥에 단도의 끝을 대고 45도 각도로 올린다.


"둥!"


"아니끼,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제 손가락을 바칩니다"


의연한 표정으로 야마구치 히데오가 외친다.


"쓱"


0.1초 만에 그의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간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새끼손가락을 베이지색 보자기에 잘 쌓고 자신의 손에도 같은 보자기를 두른 후 손가락 두 마디가 든 보자기를 두 손으로 치켜들고 이마를 조아리며 공나석에게 바친다.


이를 보고 있던 야쿠자 일당 전원이 기립하더니 공나석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야마구치, 너의 충성 맹세를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는 형제다. 배신하는 자에겐 죽음이 뒤따를 것이오, 충성하는 자에겐 영광이 따를 것이다. 자 오늘 축배를 들자"


"감빠이"


무대에는 밴드가 입장해 연주를 하고 기모노 차림의 게이샤들이 뒤따라 들어와 조폭과 야쿠자들에게 술을 따른다.




"새끼들 지랄들 하네"


제국호텔 보안실에서 CCTV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서울시경 도쿄지청 이감응 경감이었다.


"세력이 너무 커지면 다루기 힘들어질 테니 뭔가 수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옆에 있던 다나카 요시오 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저것들 까부는 거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저놈들 중에 몇 명 쓸만한 놈들을 먼저 내 놈으로 만들어놔야 해. 다나카, 궁리해봐"


"하이!"


이감응은 폭력단을 이용해 뭔가를 꾸밀 요량이었다. 그냥 나랏일에 쓸모 있는 일을 시켜야겠다 하는 생각이었지만 이것이 훗날 황거 습격사건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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