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사랑한 여인, 올레를 품다

제주 올레 탐방객 천백만 돌파 눈앞... 27개 코스 437km 완주자

by 윤경민

산티아고를 사랑한 여인, 올레를 품다... 정부보다 강한 개인

제주 올레 탐방객 천백만 돌파 눈앞... 27개 코스 437km 완주자 2만 명 육박


여든을 바라보는 모친은 올레꾼이다. 제주 한 달 살기(실제로는 40일) 중에 올레길 걷기를 택했다. 작년에 이어 2년째다. 총 27개 코스 중 지난해 23개를 완주했다. 올해는 나머지 코스를 완주하고 한 바퀴 더 돌고 계신다.


"걷는 것도 중독되더라" 왜 힘들게 걸으시냐는 물음에 모친은 이런 답을 내놓으셨다. 무념무상, 세상의 걱정거리를 다 잊게 해 준다는 설명과 함께.


20230217_111422.jpg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올레길, 필자의 모친


제주의 특성상 화산 폭발과 용암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광, 바닷가 기암괴석, 주상절리가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그뿐이랴, 아기자기한 돌담길이 마음의 찌꺼기들을 걷어내 준다. 보잘것없는 시골 풍경, 걸어도 걸어도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외로운 길이어도 고독하지 않다. 노랗게 물든 유채꽃밭이 반겨주고, 한가로이 풀 뜯는 말들이 맞아주고, 저 멀리 오렌지색 테왁이 해녀의 물질을 알려준다.


모친이 지어주신 한가득 '머슴밥'을 먹고 해가 뜨기 전에 할망네 민박집을 나선다. 허기진 배는 지천에 깔린 귤로 채우면 된다. 참으로 인심 좋은 제주다. 오름에 오르면 저 멀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눈 덮인 한라산도 손에 잡힐 듯하다.


"짜장면 시키신 분!" 유명한 광고 덕에 더 유명해진 마라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배를 갈아타고 찾은 가파도. 주민 백여 명이 농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며 사는 이 작은 섬에도 올레길이 잘 꾸며져 있다.


성산에서 배를 타고 15분쯤 항해하면 닿는 우도는 젊은 바이크족들의 천국이다. 전기 자전거, 전기 오토바이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섬 주민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되는데, 젊은 '폭주족'(?)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20230217_142745.jpg 제주 우도 올레길 유채꽃밭, 필자와 필자의 모친


천 95만 2천166명.

2007년 올레길이 생긴 이래 작년 말까지 16년 간 올레길을 다녀간 탐방객 수다. 곧 천백만을 돌파한다. 코스는 모두 27개, 총 437km나 된다. 이 코스를 모두 완주한 사람은 만 8천 명이 넘는다. (단체 팀도 있으므로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는 완주자들의 늠름한 사진과 이름, 완주 날짜, 그리고 소감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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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안식처"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걸음이었습니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올레길을 걷는다" "정년퇴임 후 제2의 인생 출발점에서 집사람과 함께 제주도 올레길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20대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새로운 출발".... 저마다의 사연과 성취감의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올레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서명숙이라는 여성의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올레꾼 천백만 돌파 기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서명숙은 언론인이다.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며 바쁜 일상에 시달리다 어느 날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제주 올레길 만들기에 나섰다고 한다. 같은 언론인으로서 2백 퍼센트 공감 가는 이야기다.


산티아고사진.jpg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서명숙 이사장


"원고 마감과 특종 경쟁에 시달리느라 제 명에 못 죽을 것처럼 위태로웠던 삶이었지만, 길을 내고 걸으며 몸과 마음이 훨씬 건강해졌어요" 그녀의 이 말에서 절박했던 심정과 행복감이 동시에 묻어난다.


개인이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결코 순탄지 않았을 거란 직감이 든다. 혹시 주민이나 공무원들과의 마찰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제공_사단법인 제주올레)서명숙 이사장_09.jpg


"초기에 길을 내는 과정에서는 주민과의 마찰보다는 공무원들의 인식 공감을 얻는 과정이 더 쉽지는 않았습니다. 관련 법도 없고 사례도 없고 예산도 없는,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길을 내는 것이었기에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특이한 민간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행히 몇몇 눈 밝은 공무원들이 제주올레의 가치를 알아보고 하나둘씩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동생들과 언론사 동료의 덕분이었다며 공을 돌린다.


"1기 탐사대장과 2기 탐사대장을 차례로 맡아준 제 남동생 서동철과 서동성이 없었다면 길을 내는 일조차 불가능했을 것이고, 제주올레 초창기에 시사인 기자를 그만두고 제주올레에 합류한 안은주(현재 제주올레 대표이사)가 없었다면 제주올레 사무국의 기틀을 잡아 지금까지 길을 운영관리할 수 있는 틀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외에 수많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눈 밝은 공무원 등 누구를 콕 집어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지금의 제주올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쉬웠으랴, 어느 날 '올레길 살인사건'이란 기사가 뉴스를 장식하면서 부정적 인식이 생겼던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제주올레 길의 문제가 아닌데도 길 주변에서 벌어진 일, 길 주변 해안에서 벌어진 일이 모두 제주올레 사건 사고처럼 보도되고 제주올레길의 문제인양 비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올레는 제주의 골목골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올레꾼들이 쓰고 가는 돈으로 지역 경제에 생기가 돈다. 올레길을 중심으로 민박집, 게스트하우스도 줄줄이 생겨났고, 작은 선물가게, 음식점, 시장에도 활기가 돈다. 이미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외국인까지 올레길을 찾을 정도다. 그뿐이랴, 일본에 규슈 올레, 미야기 올레를 만드는 등 수출까지 했다. 올레길 경제, 올레길 문화란 말이 그래서 탄생한다. 제주 한 달 살기 유행과 어우러지는 시너지 효과도 적지 않다.


미야기올레트레킹.JPG 일본 미야기올레길을 걷는 서명숙 이사장


서명숙 이사장에게 올레길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행복한 종합병원"


정부 부처나 지자체도 하기 힘든 일을 끈질긴 의지로 해내고 만 서명숙 이사장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의 혜안을 알아보고 적극 도움의 손길을 내준 주민들과 공무원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필자의 모친처럼 올레길 수첩에 코스별 스탬프를 찍으며 완주할 날을 고대한다. 나의 은퇴 후 첫 버킷리스트는 올레길 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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