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입국 첫날 지하철에서 생긴 일
도쿄 특파원 1095일 시리즈
일본 입국 첫날 지하철에서 생긴 일
설렘 속에 집사람과 아이를 동반한 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무거운 여행용 가방 2개와 배낭 3개를 택배를 통해 도쿄 '오기쿠보' 집으로 부치고 비교적 가벼운 몸으로 전철에 올랐다.
하네다 공항에서 오기쿠보 역까지는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첫 번째 갈아타는 곳은 '시나가와'역.
승객이 많아 다음 열차를 탈까 하다가 "자리가 나겠지" 하며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 지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꾸역꾸역 올라타고 열차 내 방송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흘러나왔다.
아마 무슨 점검을 하느라 열차 출발이 지연돼 죄송하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전철은 초만원이 됐다.
좁은 곳에 한동안 서있다 보니 임신 7개월인 아내와 만 6살인 아들 녀석이 금세 지친 듯 힘들어했다. 전차 한쪽 끝쪽에 탔는데 거기는 좌석이 없는 곳이어서 서있어야 했던 것이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열차가 출발했다.
가벼운 짐이었지만 오랫동안 매고 있어서 그런 지 노트북이 무겁게 느껴졌다.
발 밑에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2~3개 역을 지날 때였다.
열차가 급출발을 하면서 차량이 흔들렸다.
내 옆에 서 있던 30대 남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며 휘청댔다. 그리고는 내 노트북 가방에 발이 걸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딪쳤다.
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나를 발로 차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사실상 무릎으로 거의 나를 차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내 가방에 발이 걸렸으니까 내 책임이란 말인가?
처음엔 같이 욕을 해줄까 했는데
전에 서울에서 알게 된 한 재일교포로부터 들은 얘기가 퍼뜩 뇌리를 스쳤다.
"일본에는 정신이상자가 많아서 다툼이 생기더라도 소리 지르면 안 돼요.
나이프로 찌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 얘기를 기억에 떠올린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뱉은 한마디, "스미마생"
일본인은 대부분 친절하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그런데, "이런 '돌아이'같은 일본 놈도 있구나." 나는 깨달았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걸.
그런데 사실 그런 일은 서울에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놈은 정말 정신이 이상한 '돌아이'였을까?
청바지, 운동화 차림에 캐주얼 점퍼를 입은 30대 중후반 정도의 남자.
불량스러운 '야쿠자'나 '친삐라(동네 양아치)'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인상.
추론해 보건대 아마 내 노트북 가방에 발이 걸려 주변 사람들에게 부딪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되자 그 책임을 내게 돌리려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가 뱉어낸 한마디,
"정말 일본 오는 첫날부터 정나미가 떨어지네"
그날 오후 집 임대계약을 담당했던 부동산 회사 직원을 만나
이 얘기를 했더니 아주 가끔씩 그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 있다며
자신이 대신 사과한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나의 일본 입국 첫날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