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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Jun 08. 2023

일본 유황도에 투발루 국민을 이주시키자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바닷물 속으로 점차 가라앉는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다. 투발루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투발루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5미터에 불과하다. 평균 고도는 2미터, 해마다 0.5cm씩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발을 딛고 지낼 수 있는 국토면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나라 전체가 수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투발루 정부는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1만 2천여 명 국민을 안전한 외국으로 이주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투발루뿐이 아니다.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몰디브,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베네치아도 점차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처럼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육지 면적이 좁아지는 곳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외려 해수면 위로 솟아오르며 면적이 넓어진 곳이 있다. 일본의 이오지마가 그곳이다. 이오지마는 한자로 硫黄島(유황도)다. 화산섬으로 지열이 높고 섬 곳곳에 분출하는 화산성가스, 이산화유황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섬 이름이 유황도, 이오지마다.


행정구역은 도쿄도에 속한다. 도쿄에서 남쪽으로 1250km 떨어진 곳에 떠 있다. 동서로 8km, 남북으로 4km 크기인 작은 화산섬이다. 일본 국토지리원이 최근 공개한 이오지마의 지도를 보면 8년 전인 2015년에 공개한 지도보다 면적이 약 1.3배로 늘어났다. 약 6평방 킬로미터가 증가한 것이다.


일본 국토지리원이 공개한 이오지마의 새 지도

왼쪽 사진은 종래의 지도에서 계측한 면적: 23.73㎢

오른쪽 사진은 전면 갱신한 지도에서 계측한 면적: 29.86㎢

빨간 선: 종래 지도의 해안선



새로운 지도는 지난해 1월 촬영한 항공사진과 현지 측량결과를 기초로 제작했다. 섬이 이처럼 커진 것은 화산활동에 따른 융기(隆起)때문이다. 지각 변동에 따른 융기로, 9년 동안 섬의 서부는 약 8.3m, 중앙부는 6.8m, 남단의 스리바치산(摺鉢山)은 1.3m가 높아졌다.  


이오지마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과 일본군 간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오지마는 미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로, 사수해야 하는, 기필코 빼앗아야 하는 중요한 섬이었다. 미군 입장에서는 이 섬이 B29 폭격기 기지였던 마리아나제도와 일본 본토의 딱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오지마를 점령할 경우 도쿄를 비롯한 일본 본토 공습이 한결 수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를 잘 아는 일본군은 필사적으로 이오지마를 지켜내야 했다. 


당시 일본은 쿠리야마 다다미치(栗林忠道) 일본 육군 중장이 이끄는 2만 명의 일본군수비대가 결사항전 태세를 갖췄다. 미국은 해병대 3개 사단 7만 명이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쿠리야마 중장은 섬 지하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거점마다 터널을 뚫어 연결했다. 일본군은 땅굴에 숨어 있다가 상륙한 미군을 공격하는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미군은 당초 상륙작전 개시 후 닷새 만에 섬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쳐 격전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결국 일본군은 천 명의 포로를 제외하고 전멸했다. 미군 사상자는 2만 9천 명 (전사자 6,800명)에 달했다. 태평양 전쟁 기간 미군 사상자가 일본군 사상자보다 많은 전투는 이오지마 상륙작전이 유일했다.


본격 상륙 전 미군은 스리바치산에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스리바치산은 이오지마의 남서쪽에 있는 화산으로, 해발 168미터의 비교적 낮은 산이었으나 산 정상은 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전략적 요새였던 것이다. 이때 얼마나 집중 폭격을 받았는지 산의 형태가 바뀔 정도였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침략의 발톱을 치켜세웠던 군국주의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미군에 결사항전을 벌이다 최후를 맞이했던 일본군 수비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피로 물들었던 그 죽음의 땅 이오지마. 유황 내음이 여전히 섬 구석구석 퍼져 흐르는 지금, 전쟁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닷속에선 지각이 변동하며 융기를 일으켜 물 밖으로 몸을 드러내고 있다. 점점 커지는 그 섬에 투발루 국민을 이주시키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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