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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29. 2019

소설 2045년
17. 총독부를 향한 분노의 물결

17. 총독부를 향한 분노의 물결                                                                                                                                                                                                                                                                                                                                                                                                                  

시즈오카 대지진과 니가타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두 달 동안 규모 6.0 이상의 강력한 여진만 2백여 차례 발생하며  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규모 2.0 이상의 여진은 이미 3천 차례 넘게 발생한 것으로 관측됐다. 두 지역 일대 주민들은 하루에도 생사를 넘나드는 수십 회의 지진과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 원전 폭발에 따른 대규모 방사능 누출 사고는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대피지역뿐 아니라 반경 200km까지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면서 주민들은 케이오스에 빠졌다. 간사이로, 규슈로, 홋카이도로 피난 행렬이 줄을 잇는다. 시즈오카 동쪽에 위치한 도쿄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돗물이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소문, 내리는 비는 세슘비라서 맞으면 그대로 피폭된다는 소문, 방사능 때문에 애완견도 다리가 6개 달리고 고양이 얼굴을 한 새끼를 낳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심지어 시즈오카에 살던 임신부가 원전 사고 후 두 달 만에 출산했는데, 외눈박이에다 코와 입이 붙은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다녔다. 


이런 요상한 소문은 TV와 신문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총독부가 사전 검열을 통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인지 뜬소문인지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떠도는 사이 피폭자들이 죽어갔고 사망자 시신들을 총독부 산하 비밀조직에서 수거해 군마현 어딘가에서 집단 화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즈음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희생자들은 모두 일본인들이야. 한국인 마을 거주자들은 멀쩡하다잖아"


도쿄 가와사키 시내 한 야키토리 집에서 사케를 마시던 샐러리맨들의 웅성거림에 나가노 유키오(훗날 일본 독립군 지도자가 될 도쿄대 출신의 천황제 폐지주의자) 와 이철훈(나가노 유키오와 함께 도쿄대를 나온 친구이자 일본 독립군 조력자)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게 말이야, 방사능 오염 사태가 여기 도쿄도 심각한 상황인데, 신주쿠와 메구로 한국인 마을만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이건 분명 뭔가 있어"


샐러리맨들의 이야기는 점점 총독부에 의한 일본인 차별, 한국인 우대 쪽으로 좁혀졌다.


"한국인들만 방사능 피해가 없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잖아. 총독부에서 일하는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인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슨 알약 같은 걸 먹는다더군. 그 후배 말로는 방사능 해독제 같다는 거야. 물량이 얼마 안 돼서 한국인들에게만 지급한 것 같다는 거지"


순간 나가노 유키오와 이철훈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저 얘기가 사실이라면 우리가 가만있을 수는 없어"


나가노 유키오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분명 일본인 차별이야.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한국 출신 사람들만 살리려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잖나"


"그래 유키오. 네 말이 맞아. 이게 사실인지 내가 알아볼게"


이철훈은 여자친구 오숙희에게 전화를 건다.


"숙희야. 나야"


"오빠, 괜찮아?"


"어, 미안해 연구가 바빠서 연락 못 했네"


"도쿄 한복판까지 방사능에 다 오염돼 난린데,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안 되고"


"그래, 넌 괜찮아?"


"오빠 빨리 집으로 가. 한국인 거주 지역 외에는 다 위험해"


"그게 무슨 말이야?"


"수돗물이 방사능에 다 오염돼서 마시는 것도 샤워하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위험해. 근데 총독부가 한국인 거주 지역에 공급되는 수돗물에는 해독제를 풀어서 괜찮대"


"그걸 왜 한국인 거주 지역에만?"


"그게 한 달 전에 개발된 건데, 양이 극히 모자라서 우선 한국인들에게만 준다는 거야. 한국인 거주 지역 수도관에 약물을 주입하고 알약으로 된 해독제는 총독부 한국인 직원들에게 별도로 지급하고 있어. 일본인들이 알면 난리 날 거야"


도쿄대 박사과정에 있던 이철훈은 논문에 집중하느라 2주일째 연구실에 처박혀 있었던 탓에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걸 한국인들에게만?" 


이철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튿날 나가노 유키오와 이철훈은 도쿄대 아카몽에 대자보를 붙인다.


대한민국 일본 총독부에게 고함


시즈오카 대지진과 원전 폭발에 따른 대규모 방사능 누출이라는 대재앙으로 열도 전체가 시름하고 있는 요즘 방사능 해독제가 한국인에게만 지급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일본인 차별이다. 일본열도 출신도 한반도 출신과 다름없이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어찌 총독부는 한국인 거주 지역에만 방사능 해독제를 사용한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는가? 또한 총독부 직원 가운데 한국인들에게만 해독제를 지급하고 있는가? 일본열도 출신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총독부는 반드시 이에 답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차별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열도 출신 지식인들이 총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


의기투합한 나가노 유키오와 이철훈은 곧바로 도쿄대 내에 한일 차별 철폐 위원회를 조직한다. 뜻을 함께 한 학생 백여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곧바로 행동을 계획한다. 


도쿄대 대자보 내용은 순식간에 도쿄 도내는 물론 열도 전체에 퍼져나갔다. 일본 열도는 분노로 들끓었다. 총독부 홈페이지에는 항의하는 글이 쇄도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일본 청년들이 도쿄대 한일 차별 철폐 위원회에 적극 지지 입장을 천명하면서 총독부를 상대로 한 시위의 물결이 곧 다가올 터였다. 군중의 분노는 이미 총독부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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