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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나가노의 비극적 선택

한일 전쟁 미래 소설 2045년

by 윤경민

56. 나가노의 비극적 선택


나가노로부터 남편 이철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오숙희는 흐느껴 운다. 주룩 주룩 눈물이 양쪽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울음소리를 참으려 하지만 감정을 제어할 수는 없다.


반제국주의자였고 인류 평화주의자였던 남편과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오숙희는 남편의 죽음 앞에 나가노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오숙희는 나가노를 원망하지 않았다.


"철훈 씨는 한국과 일본의 우호관계 복원을 위해 당신을 도왔어요. 철훈 씨는 백여 년 전 일본이 한국에 저질렀던 짓을 한국이 똑같이 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일본의 독립을 이루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이제 모두 헛된 꿈이 되었군요"


오숙희는 남편의 사망에 충격을 받고 비탄에 잠기면서도 나가노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슬퍼했다.


"다 내 탓입니다. 철훈은 나를 구하려고 목숨을 버렸어요. 숙희 씨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가노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군사력으로 나라를 빼앗고, 토지를 빼앗고, 식량을 수탈하고,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고, 황후를 살해하고, 황국신민으로 만들고, 꽃다운 나이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어가고, 전쟁의 미치광이가 돼 많은 이들을 끌고 가 탄광에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고, 독립운동가들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총칼로 죽이고... 백여 년 전 일본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혹독하고 모진 짓을 조선에 저질렀습니다. 그러고도 수많은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반성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역사를 날조하고 전쟁을 미화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상황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반에 반도 되지 않겠지요. 조선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말이죠. 과거 조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본의 얼을, 일본의 혼을 지키려 애써왔습니다. 독립을 다시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싸워왔죠. 비록 지금 일본인들은 당시 조선인들이 가졌던 독립에 대한 위대한 열망을 갖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어요"


"결심이라니, 무슨 결심을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오숙희가 물었다.


"내가 죽음으로써 한국에 항거하고, 그것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합니다"


오숙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가노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왼손 엄지로 안전장치를 풀고는 레버를 잡아당겨 장전한다.


"일본 독립 만세!"


나가노가 두 손을 번쩍 들며 비장하게 외친다.


그리고는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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