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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by 윤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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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에 책임 물을 수 있어” vs 중국 ”새빨간 거짓말



지구촌을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사태의 책임론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세계화가 힘을 잃고 민족주의가 판을 칠 것이라는 분석을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중국 정부가 초기부터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됐다며 중국 책임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은 트럼프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중국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고 맹비난을 퍼붓는다. 쓸데없이 남 탓하지 말고 방역이나 제대로 하라는 거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역공을 했다는 한 신문기사의 제목은 말한다.


‘새빨간 거짓말’...

음...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나?

거짓말을 강조하기 위해 색깔을 넣은 표현인 것 같긴 한데, 왜 하필 새빨간 거짓말인가?

새파란 거짓말, 새까만 거짓말, 샛노란 거짓말도 아니고 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란 알다시피 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말한다.

요 앙큼한 것, 날 보러 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구나”

국어사전에 나오는 예문이다.


새빨간 거짓말.jpg



중국이 미국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는데 중국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을까?

아니다. 중국어에는 없다.

그렇다면 영어는? Red lie?

역시 영어에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표현은 없다.

That's an absolute lie.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일본어는 우리말과 똑같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있다.

真っ赤な嘘 (まっかなうそ 발음: 막까나우소) 직역 그대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뜻풀이도 완전한 거짓말, 조금도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다. 원래 일본어를 우리 식으로 직역해 사용하다가 관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어의 새빨간 거짓말의 새빨간은 빨갛다를 강조한 말,

빨갛다는 한자로 붉은 적(赤)를 쓰는데 분명하다는 뜻의 明らか(발음:아끼라까)와 같은 어원에서 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끼라까’와 ‘아까’ 발음도 비슷하다.

赤の他人(발음: 아까노타닝) ‘빨간 타인’ 하면생판 모르는 남을 가리킨다. ‘아까’(赤)는

빨갛다라는 뜻 외에 완전히, 전혀의 뜻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새빨간 거짓말은 완전한 거짓말, 전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일컫는 일본어다.

그 일본어를 우리 식으로 그대로 번역해 쓴 것인데, 이게 우리말처럼 굳어져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하 강요당했던 일본어가 한국어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해방 후에도 번역가들에 의해 이런 일본식 관용어를 그대로 직역해 쓰다 보니 우리말처럼 굳어졌고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대화에, 드라마 대사에, 언론 기사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알고 사용하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이런 표현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한국어 속 일본어. 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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