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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May 21. 2020

처음부터 우당탕탕

잠깐만, 이거 몇 년 전 자료잖아?

친구 S를 만났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끝내주는 주당으로 함께 저녁부터 아침까지 달릴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던 S는 술도 잘 마셨지만 집안 사정까지 나와 비슷해 자주 어울리던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호주를 간단다. 답답한 한국 사정은 뒤로 하고 훌쩍 떠나서 영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한단다. 물론 솔깃한 호주 시급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에, 시급이 만원이 넘는다고?

 

당시 나는 두 번째 수능 후 원서 접수를 잘못해 낙방을 하고, 그 김에 기울어진 가세를 돕고 있었다. 과외 2~3개와 배스킨라빈스 알바를 병행하면서 저녁 5시부터 아침까지 엄마 가게에서 무료 봉사를 했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 지쳐가던 참에 친구가 짐짓 진지하게 들려주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달콤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호주라는 씨앗을 심은 뒤, 약간의 인터넷 조사를 통해 접한 수많은 감언이설에 '속아' 나는 호주행을 결정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엄마는 못내 아쉬운 태도로 내 통보를 받아들였고 유학이나 이민에 언제나 호의적인 아빠는 지금 한국 생활보다 그게 훨씬 낫다며 잘해보고 한 번 나간 이상 돌아올 생각 말아라 하셨다.


이미 호주에 간 S에게는 이메일로 이 소식을 전한 뒤 정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듯했다. 비자, 신체검사, 비행기 티켓, 심지어 호주에서 기거할 셰어 하우스까지 S의 도움으로 구하고 나니 마음을 놓았던 듯하다. 아마도 이게 내가 배운 첫 번째 교훈이지 싶다. 방심하지 말 것.


사실 인천으로 가는 공항 리무진은 출국하기 몇 주 전부터 미리 알아봐 놓은 상태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당시 살던 지방 도시에서 인천 공항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부모님껜 안 도와주셔도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잊어먹고 있었는데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국 하루 전 다시 찬찬히 자료를 보다, 정확히는 약 20시간 전, 확인했던 자료가 오래전 운행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뒷목에서 느꼈던 섬뜩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득바득 모은 비행기 티켓값도 아까웠지만 무엇보다 한사코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린 부모님께 이 소식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조마조마했다. 또 시드니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S에게 못 가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는 것도 끔찍했다.


물론 결국엔 부모님께 쭈뼛쭈뼛 사실을 고했는데 어쩐지 불행 중 다행으로 큰 꾸지람은 받지 않았다. 그때는 정신없이 당장 출국할 길을 알아봐야 해서 그냥 안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출국할 딸내미가 가여워서 차마 크게 혼내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분간 엄마와 아빠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시더니 부랴부랴 인천에 사는 친척에게 연락해 차초 지총 설명 후 혹시 공항까지 데려다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셨다. 근 몇 년간 얼굴도 안 본 사이였지만 단지 친척이라는 이유로 흔쾌히 해주셨고 나는 '무사히' 인천 공항에 때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공항 가는 길에 평소보다 30% 약한 잔소리는 덤이었지만.


사진 출처: Pixabay

유학이나 이민길에 서 본 사람은 알 거다. 미워 죽겠는 사람도 이상하게 출국장에 서서 보면 아득해 보인다는 것을. 이상하게 발길이 무거워지고 목이 매인다는 것을. 출국 게이트로 나가면서 괜히 뒤돌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일부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가버렸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엄마는 내가 너무 매정하게 가버려서 서운하셨단다.


 



렇게 출국을 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호주에 있다. 딱 6개월 바짝 벌어서 집에 가려고 했던 21살짜리 소녀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시드니가 집이 되었다. 여기서 두 번째 교훈, 역시 사람은 말조심해야 한다.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 못 돌아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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