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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21. 2022

역마살의 의사결정 (하)

행복은 다음 마디에

부동산을 하는  친구 J야말로 역마살  사람들을 제일 많이, 가까이서 보는 직업이라고   있다.  친구에게  ‘이사 자주 다니는 사람들있잖아. 이최몇(이사 최대  )까지 만나봤어?  사람들은 대체  그런거래?’ 하니까  손님은 2년동안 8번을 갔다면서 (VVIP) 이유가  다르다고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역이랑 멀어서, 동네가 별로라서... “뭐가 맘에  든다  든다 하는데, 내가 봤을   이유 없어. 진짜 ‘그냥나가는  같애.”


지난번 <역마살의 의사결정 (상)>을 쓰며 ‘역마’ 뜻을 찾아봤다. 역마살 역마살 말만 했지, 자유롭게 달리는 말이 어쩌다 ‘살’이 되어서 사람의 운명을 묶어버리는 상징이 됐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조선 시대에 각 역참에 갖추어 둔 말. 관용의 교통 및 통신 수단이었다’

‘예전에는 이 역마를 이용하여 주요 정보를 전달하고 또 거리를 이동하였다. 말하자면 역마가 통신 매체이자 교통수단이었다. 걷고 뛰는 데 이골이 난 역마라 하더라도 온종일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마도 쉬고 말을 타고 온 관원도 쉬는 역이 주요 도로 사이사이마다 있었던 것이다. 관원이 숙식을 제공받는 곳을 특별히 역참이라 하였다.

‘역참에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역마는 뒤따라오는 관원을 태우고 또 다음 역으로 이동한다. 다음 역에서 좀 쉬다가 또 다른 관원을 태우고 다음 역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역마는 역에서 역으로 고단한 행진을 계속한다. 이런 행진을 반복하며 떠도는 것이 역마의 신세다. 고달프고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34140)



왜 역마살은 늘 떠나기로 결정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역마는 오로지 이동을 위한 존재였던 것이다. 머릿속에는 ‘이다음엔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뿐, 왜 가야 하는지는 말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내가 항상 뭘 새로 하면 더 나아질 것 같고, 이 회사에 가면 저 학교에 가면 더 나아질 것 같아서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머릿속엔 ‘저길 가야 한다’ 일념뿐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아침 일찍 춘천에 간 적이 있는데, 이른 아침 휴게소에서 덤프트럭들이 밤새 달리고 지친 엔진을 쉬고 있었다. 창문을 연 채로 때꾼한 눈에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기사님을 보고 ‘아, 저게 바로 현대의 역마다!’ 싶었다. 말은 덤프트럭, 운전기사는 관원.

그렇지만 기사님도 일 끝나면 집 가서 쉴 것 아닌가? 역마도 일 안 할 때는 주인 태우고 유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운명은 운명이지 내가 아니다. 내 자리가 말 위라면 난 고삐를 잡으면 된다. 그 말을 타고 어디로 갈지는 내가 정한다. 나는 내 운명의 운전대를 잡고 싶다.



내가 이사 일기를 쓰겠다고 하니까 내 친구가 독자에게 네 이름이 왜 윤마디인지도 알려주라고 한다. 내 오랜 친구들이 가끔 나를 마디라고 불러줄 때 기분이 묘하다. 정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윤마디는 내 필명이다. 2017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신문사에서 내 글이 독자 에세이 가작으로 뽑힌 적이 있다. <100>이라는 소재로 <아빠의 사이즈>라는 글을 지었는데, 본인 소개를 해달라길래 필명 ‘윤마디’를 풀이해서 보냈다.

한 번은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를 보고는, ‘그래! 행복이 지금 없을 수도 있지! 이상한 게 아냐! 찾으면 되는 거야!’ 깨닫고 그때부터 행복 찾아 삼만리 삶을 살았더랬다. 대학에 가면, 그림을 전공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20대 초반에 수능도 망하고, 재수도 망하고, 대학은 휴학하다 자퇴하고, 편입학원도 2년이나 다녔는데 끝내 예비번호가 안 빠지는 걸 보고 난 경쟁이 바늘구멍 같은 입학시험엔 영 젬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치만 내가 튼튼한 역마로서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 ‘다음’ 마디엔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기도 없으면 다음다음 마디에… 실패하면 충분히 좌절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나서 이젠 또 뭘 해볼까 드릉드릉 기운을 차린다. 난 진짜 지구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확실한 실패를 거쳐 이제는 ‘난 그저 꾸준히 해서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해야지’ 다짐하며 산다.


그래서 ‘행복은 정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 마디마디에 있다’는 좌우명에서 ‘마디’를, 이번엔 엄마처럼 살아볼까 해서 엄마 성 ‘윤’을 따와서 윤마디라고 지었다. 내 손으로 내 이름을 짓고 나니까 삶의 방향이 한 개는 정해졌다. 동쪽, 동남쪽, 동경백 삼십위 북위 삼십칠 처럼 목적지는 차츰 정교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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