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다음 마디에
부동산을 하는 내 친구 J야말로 역마살 낀 사람들을 제일 많이, 가까이서 보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친구에게 ‘이사 자주 다니는 사람들있잖아. 이최몇(이사 최대 몇 번)까지 만나봤어? 그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거래?’ 하니까 한 손님은 2년동안 8번을 갔다면서 (VVIP) 이유가 다 다르다고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역이랑 멀어서, 동네가 별로라서... “뭐가 맘에 안 든다 안 든다 하는데, 내가 봤을 땐 별 이유 없어. 진짜 ‘그냥’ 나가는 것 같애.”
지난번 <역마살의 의사결정 (상)>을 쓰며 ‘역마’ 뜻을 찾아봤다. 역마살 역마살 말만 했지, 자유롭게 달리는 말이 어쩌다 ‘살’이 되어서 사람의 운명을 묶어버리는 상징이 됐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조선 시대에 각 역참에 갖추어 둔 말. 관용의 교통 및 통신 수단이었다’
‘예전에는 이 역마를 이용하여 주요 정보를 전달하고 또 거리를 이동하였다. 말하자면 역마가 통신 매체이자 교통수단이었다. 걷고 뛰는 데 이골이 난 역마라 하더라도 온종일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마도 쉬고 말을 타고 온 관원도 쉬는 역이 주요 도로 사이사이마다 있었던 것이다. 관원이 숙식을 제공받는 곳을 특별히 역참이라 하였다.
‘역참에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역마는 뒤따라오는 관원을 태우고 또 다음 역으로 이동한다. 다음 역에서 좀 쉬다가 또 다른 관원을 태우고 다음 역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역마는 역에서 역으로 고단한 행진을 계속한다. 이런 행진을 반복하며 떠도는 것이 역마의 신세다. 고달프고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34140)
왜 역마살은 늘 떠나기로 결정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역마는 오로지 이동을 위한 존재였던 것이다. 머릿속에는 ‘이다음엔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뿐, 왜 가야 하는지는 말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내가 항상 뭘 새로 하면 더 나아질 것 같고, 이 회사에 가면 저 학교에 가면 더 나아질 것 같아서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머릿속엔 ‘저길 가야 한다’ 일념뿐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아침 일찍 춘천에 간 적이 있는데, 이른 아침 휴게소에서 덤프트럭들이 밤새 달리고 지친 엔진을 쉬고 있었다. 창문을 연 채로 때꾼한 눈에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기사님을 보고 ‘아, 저게 바로 현대의 역마다!’ 싶었다. 말은 덤프트럭, 운전기사는 관원.
그렇지만 기사님도 일 끝나면 집 가서 쉴 것 아닌가? 역마도 일 안 할 때는 주인 태우고 유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운명은 운명이지 내가 아니다. 내 자리가 말 위라면 난 고삐를 잡으면 된다. 그 말을 타고 어디로 갈지는 내가 정한다. 나는 내 운명의 운전대를 잡고 싶다.
내가 이사 일기를 쓰겠다고 하니까 내 친구가 독자에게 네 이름이 왜 윤마디인지도 알려주라고 한다. 내 오랜 친구들이 가끔 나를 마디라고 불러줄 때 기분이 묘하다. 정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윤마디는 내 필명이다. 2017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신문사에서 내 글이 독자 에세이 가작으로 뽑힌 적이 있다. <100>이라는 소재로 <아빠의 사이즈>라는 글을 지었는데, 본인 소개를 해달라길래 필명 ‘윤마디’를 풀이해서 보냈다.
한 번은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를 보고는, ‘그래! 행복이 지금 없을 수도 있지! 이상한 게 아냐! 찾으면 되는 거야!’ 깨닫고 그때부터 행복 찾아 삼만리 삶을 살았더랬다. 대학에 가면, 그림을 전공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20대 초반에 수능도 망하고, 재수도 망하고, 대학은 휴학하다 자퇴하고, 편입학원도 2년이나 다녔는데 끝내 예비번호가 안 빠지는 걸 보고 난 경쟁이 바늘구멍 같은 입학시험엔 영 젬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치만 내가 튼튼한 역마로서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 ‘다음’ 마디엔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기도 없으면 다음다음 마디에… 실패하면 충분히 좌절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나서 이젠 또 뭘 해볼까 드릉드릉 기운을 차린다. 난 진짜 지구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확실한 실패를 거쳐 이제는 ‘난 그저 꾸준히 해서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해야지’ 다짐하며 산다.
그래서 ‘행복은 정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 마디마디에 있다’는 좌우명에서 ‘마디’를, 이번엔 엄마처럼 살아볼까 해서 엄마 성 ‘윤’을 따와서 윤마디라고 지었다. 내 손으로 내 이름을 짓고 나니까 삶의 방향이 한 개는 정해졌다. 동쪽, 동남쪽, 동경백 삼십위 북위 삼십칠 처럼 목적지는 차츰 정교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