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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15. 2022

10. 황금알교회 동네, 6000, 투룸

믿음 소망 사랑, 그 동네 제일은 황금알교회라

이번 집은 그냥 작고 단순한 집이었다. 봐도 아무 감흥이 없어서 이 집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아 선택하지 않았다. 동네 자체도 특별한 건 없었다. 역과 거리가 좀 멀어서 술집 밥집 거리는 없고, 오래된 3-4층짜리 상가주택이 많고, 중간중간 새 집을 올리느라 쿵쿵 소음과 공사 먼지가 날리는 조용한 동네랄까. 대신 그 동네의 터줏대감의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1. 대감집

다른 동네에도 집 보러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큰길 끝에 딱 보이는 웅장한 건물! 이 동네를 꽉 잡고 있는 터줏대감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시청-광화문에서 일할 때 봤던 특이한 건물들이 생각났다. 특이한 건물이란 사람이 살려고 지은 건물이 아니라 신이 깃들기를 바라는, 우주의 기운, 영적인 에너지를 묶어두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건물을 말한다. 종교기관이나 미술관이 그런 목적을 가진 건물인데 예술은 종교의식의 도구로 시작되었고 교회나 사찰이 옛날 말로는 신전이니 그 둘은 크게 보면 다른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대감집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집이다. 어떻게 한 자리 얻을 수 있을까 벼슬아치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나라가 미쳐 돌아갈 때는 뜻있는 정치인들이 존경받는 대감집에 모여 임금께 간언 해달라고도 한다. 이럴 때 뜻은 형체가 있어서 모이면 커진다. 그러므로 그 동네 대감집은 뜻을 크게 모으는 곳이다.



2. 정치란 바람을 모으는 것

2018-2019년에 세종대로에서 일했었는데, 그때는 대규모 집회의 전성기로 주말이면 시청 광화문 일대가 몸살을 앓았다. 주중에 일하던 회사원들이 금요일 밤을 기점으로 광화문에서 도망쳐 빠져나가면 토요일 아침 일찍 전국에서 전세버스가 몰려와 각종 깃발로 광장을 가득 채웠다. 지금 생각하면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던 것 같다. 현직 왕이 폐위되어(탄핵과 수감)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고 새로운 왕이 민심수습을 못 하니까 이전 정권에서 녹을 먹던 장수들이 난세의 틈을 타 세력을 키우려고 궁궐 앞으로 모인 것이다. (이번 추석에 손자병법을 읽었더니...)


내가 일하던 관광안내소는 세종대로 사거리 정중앙에서 주말엔 꼭 문을 열었다. 원래는 그 자리에서 종일 바쁘게 외국인 관광객을 맞았는데, 시위가 시작된 후로는 주말만 되면 시위대가 길을 꽉 메워서 안내소에 갇혀 종일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했다. 머리를 터뜨릴 듯한 데시벨로 하루 종일 욕설과 저주를 들으며 귀마개도 해보고 경찰 신고에 본사 사무실에 읍소도 자주 했는데, 어느 날은 저녁에 시위가 다 끝나고 시위대 할줌마 두 분이 안내소에 들어왔다.


"물 좀 마실게요~"

물은 무슨 얼씬도 하지 마시라고 문전박대하고 싶었지만 시민의 세금이니 어쩔 수 없지. 두 분은 편하게 자리 잡고 앉더니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얘! 너도 주말에 집에만 틀어박혀있지 말고 여기 좀 나와~ 여기 진짜 나이트 같다니까~ 하루 종일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그냥 스트레스가 싹! 풀려!"


뭐?... 왓 더....


주말이면 광장 곳곳에 뚝딱뚝딱 단상을 세워서 북 치고 장구치고 그야말로 굿판을 만들던 교회 목사들과 정치인들이 정말 치가 떨리게 싫었는데 그 능력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전국 각지에서 저 많은 인원을 동원할 재력과 지도력을 갖췄다는 점. 또 여기 오는 개개인의 뜻은 다 다를 수 있는데, 그 가지각색의 바람을 이뤄줘서 신도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준다는 점.


광화문은 경복궁의 대문으로서 종묘와(조상신) 사직(농사 신) 사이에 궁궐을 지어 왕이 양쪽의 신들을 받들어 모시는 지역이기때문에 대대로 신성하고 정치적인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앞에 텅 빈 광장을 몇 만 명의 인원으로 인간 돔을 만들기 때문에 더욱 신성하고 정치적인 곳이되었다. 좁은 곳에 꽉 찬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치면 그 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가서 청와대는 물론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다. 현생 너머의 가치를 쫓는 공간에 사람이 꽉 모여들면 엄청난 정치세력이 되는 것을 2년 내내 보았다.



3. 창문

몇 년 전 새문안로에 새로 지은 교회가 특이한 건축으로 뉴스에 났다.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출한 헌금액으로도 뉴스에 났다.) 그 교회는 높은 곡선의 벽에 작은 창문 몇 개가 전부여서 멀리서 보면 오로라 형상같다. 내가 집 보러 다닐 때 창문이 너무 중요해서 그런가, 여기 황금알 교회도 이렇게 거대한 건물에 창문이 몇 개 없다는 게 눈에 띈다. 사람 사는 집이라면 안과 밖을 연결하는 문이 제일 중요한데, 교회는 하늘에서 하느님 눈에 띄는 게 목적이 기 때문에 하느님의 시점으로 건물을 짓는다. 건물 자체가 신에게 봉헌하는 예술작품이다. 예를 들어 고딕 성당은 하늘에서 볼 때 십자가 모양이고, 지구상의 모든 이슬람 회당은 기도하는 벽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있다.


저렇게 큰 공간에 창문이 없으면 내부는 어떨까? 찾아보니 황금알 교회는 출석교인 4만 명으로 세계 최대 감리교 교회라고 한다. 세계 감리교 대회 개최 장소이기도 한데 대회를 열면 전 세계에서 10만 명이 오기도 한단다. 예배 사진을 보니까 둥근 지붕 그대로 내부는 거대한 돔 회당이고, 돔은 적당히 어두워서 둥그런 벽에 붙은 작은 창문에서 저마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10만 명 대인원을 한 가족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크고 둥글고 어두운 동굴 같은 예배당. 동굴에서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릴 텐데 10만 명이 동시에 드리는 기도는 하늘까지 가서 닿을까? 그 많은 인원의 간절한 뜻은 어디에 가 닿긴 닿을 것 같았다. 나 혼자 살 집으로 밖과 통하는 창문 큰 집을 찾고 있지만, 창문 없는 동굴 같은 공간은 여러 사람을 끌어모아 기도하게 한다는 게 신기했다.



4. 모임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고 절이고 산속의 암자 같은 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뭘까? 그곳은 사람을 모으는 곳이다. 그러면 왜 사람은 모이는 걸까? 물론 나의 뜻을 이뤄줄 곳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위에서 봤던 스트레스 싹! 풀리는 집회를 여는 인플루언서들을 따라가기도 하고 각종 단체에서도 교육이나 취미 클래스를 열어서 사람들을 모은다. '소모임'이나 '당근 마켓'에서도 모임 글이 엄청 많다.


아무래도 나와 동일시하고 싶은, 나를 대표할 수 있는 단체의 이미지를 골라서 가나보다. 그다음엔 이웃을 골라서.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이웃으로 삼고 싶어서. 표방하고 싶은 이미지가 같으니까 삶에서 지향하는 가치도 비슷할 테고 모임을 통해 그렇게 삶을 의논할 수 있는 이웃이 생긴다.


이렇게 알았으니 굳이 대형 모임이나 이름난 단체에 적을 걸려고 연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난 지금 정치하거나 세력을 키울 게 아니니까. 그저 새로 갈 동네에서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다. 요즘은 비대면 모임도 많으니 꼭 그 동네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그쪽 세계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이웃을 만나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말 '느슨한 연대'를 가진, 나와 짝짝꿍이 잘 되는 이웃을.


(어, 근데, 팔로워 엄청 많은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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