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히는 현대인들의 단상
아주 오랫동안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영어 선생님이 나를 보면, 인사이드 아웃의 joy가 생각난다고, 조이 볼펜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해가 지날수록 볼펜 뚜껑에 매달려 있던 조이가 떨어져 나갔다. 형체가 없어진 그 볼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영화[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빙봉이와 슬픔이가 제일 좋았다. 어딘지 모르게 나의 감정 회로에서 늘 춤추고 있는 애틋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감상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성도 좋아지고, 자주 웃으면서 지내지만, 슬픔이는 여전히 작동한다. 그럴 때마다 카페 가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걷는다. 슬픔에 빠져든다...눈물이 나올 것 같은 날에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운다... 수영을 하면서 울면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집 오는 길에 거짓말처럼 다시 밝아진다. 비온 후 제일 맑고, 폭풍 후에 쾌청해지는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사라져서 기쁨이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기쁘고 유쾌하게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은,나의 슬픔을 잘 이해하고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슬픔과 동시에 딸려오는 기쁨, 찌질하지만 유쾌함, 괴랄하지만 통쾌함, 양극단으로 오가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다. 읽는 사람들이 자신을 추스를 수 있도록 양극단의 감정으로 내몰고 싶다. 마치 초콜릿이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이치와 같다고 할까? 그렇게 약을 팔고 싶다.
여하튼 마침, 유독 '슬픔'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이 끌렸다. 그래서 요즘은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있는 중이다. 출근길이 몹시 재밌다. 역시 [슬픔]은 곧 [기쁨]이다. 카타르시스.
이 책은 smell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회사까지 와줘서 선물해 준 책이다. 갓.. 자비로운 나의 친구. 선물 센스도 좋고, 이름처럼 냄새마저 좋은 우리 smell 은 매력적인 나의 친구. 묵혀두다가, 얼마 전에 채용 합격 발표 나서, 입사일에 맞춰서 읽었다. smell 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직장인의 [ptsd :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도서라고 했다.
책의 뒷편에 정이현 소설가의 서평을 실렸다. 10대부터 쿨한 연애를 꿈꾼다고, 정이현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내가 마주한 서른 살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책은 열심히 읽는다. 여하튼, 약팔던 글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소설이 진보적이었던 건, 현재 내 친구들 다 그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산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남자친구는 사귀면서 번뇌한다. 역시 노답이 답인 게 인생인 걸까?
#1
청첩장 문화... 사실, 이렇게 얄미운 캐릭터는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여적여라고 했던가? "나는 혜택받아야 해"라는 느낌이 드는 상사를 천연덕스럽게 말로 조지고 퇴사한 적은 있다. 나도 그때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나 보다. 당시에는, 악의는 없이 한 말이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나도 표독스러운 인간이었구나, 회상에 잠긴다. 여하튼, 빛나를 보면 그때, 그 회사가 떠오른다.
#2
이 파트가 제일 슴슴하면서, 현실을 꼬집는 게, 내 취향에 맞았다. 작가와 출판사도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 이 단편선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되었다. 나도 작년에 재정적으로 너무 빈곤해서 집에 있던 물건을 열심히 당근 마켓에 내다가 팔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모든 물건은 사면서부터 감가상각이 일어나는 법이구나, 유사시에 헐값에 내다 팔면서 내 생계유지비와 맞바꾸는구나, 극빈곤층으로 가기 전에 ... SNS를 끊으리... 스타일이 좋은 친구는 엿 달에 한 번 만나리... 다음 달의 나에게 빚을 지지 않으리... 백화점이나 번화가는 앞만 보고 통과하리... 쇼핑어플은 다운받지 않으리...
내 기준에 운동과 책에 쓰는 돈은 시간이 지나도 아깝지 않다.
#3
젊은 날에 자신이 오만했고 자만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겸손이라는 미덕을 가르쳐주는 귀인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지훈 씨의 인생에서 지유 씨를 만나고, 갱생의 기회를 얻은 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지유씨는 앞으로도 잘 살 것 같은데, 지훈 씨가 걱정이다. 자아성찰을 할까, 아니면 일베를 접속하고 있을까,
지유(じゆう)는 일본어로 [자유]를 뜻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여자 신생아 이름중에 ‘지유'라는 이름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부모님들은 딸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유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창씨개명과 흡사한 추측을 해본다.
#4
있는 그대로 나의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싶은 건, 모든 인간이 품고 있는 욕망이다. 병신처럼 살아도 자신을 존중해 주는 고급스러운 프랑스견을 위해, 자신의 생계유지비, 여자친구, 모든 것과 맞바꾼 장우 씨의 선택에 공감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사람들은 사람을 안 만나고 개를 키우겠지.
한편, 나는 애를 키우고 싶다. 지구에 희망의 씨앗을 남기고 싶다.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자식에게 주고 싶다. 내 자식은 장우 씨처럼 빌빌대면서 살지 않도록, 사랑으로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많이 고민해야지.
#5
이 파트를 읽을 때, 죄송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아기 있는지, 딩크족인지 물어보는 것도, 누군가를 곤욕스럽게 하는 질문이 된 것 같다. 또, 불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삼가야 할 질문 중 하나이다.
#6
엄마 집에 얹혀살면서 존버타는 나로서는 슈바베 지수가 높지 않다. 앞으로도 엄마 집에서 존버타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는 4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 마실 것이다. 얼음까지 씹어먹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게 나의 기호이다. 대신, 밥은 도시락 싸가서 먹을까 생각 중이다. 소화가 안된다. 죽 먹고 싶다.
#7
둔감해서 그런가, 혼자 심야영화 보고 새벽 두시에 집에 돌아오고, 위험한 국가에서 혼자 여행도 잘 다녔다. 안전불감증의 길을 걸었는데, 그런 나도 공포스러웠던 기억은 일본에서 자취할 때, 어떤 변태아저씨가 “집에 있는거 안다고” 집요하게 문 두드릴 때였다. 그래서, 오피스텔에서 사는 여성들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리 성매매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서 세금이나 걷었으면 좋겠다.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애꿎은 일반인 여성들이 괴롭지 않도록...
#8
눈이 시큰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연대감을 목격하거나 겪어본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도, 해외에서도, 친절한 것도 감사하지만, 인류애를 느낀 적이 있다.
이 도서는 단편선이라서 아주 술술 읽힌다.
얼마 전에 입사를 했다. 입사와 동시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확신한다. 퇴근과 동시에, 코드 뽑고, 나 또한 나의 여가를 즐길 것이다. 소설속 거북이알처럼 거북이를 관찰하는 건 나의 기호가 아니다. 아는 분은 유튜브보면서 불멍을 때리거나 느리고 원시적인 영상을 본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쓰면서 극강의 즐거움과 희로애락을 맛보고 싶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