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퇴원 시기가 아닌데 퇴원했다. 통원 치료를 받으러 간 날,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세 번 내쉬고는 재입원을 권유했다. 옆에 애인을 둔 채 나는 말이 없었다. 그냥 헤헤 웃으며 들리지 않은 척했다. 긴장도와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말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거 단 하나라도 되지 않으면 다시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전부 안 되고 있는데 하나라도 대답하면 다시 입원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남들은 요양이나 다름없다는 입원이 나는 뭐가 그리 싫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한 번 입원한 거 두 번 하나 한 번 하나 사실상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싫었다. 기록을 잠시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은 돌봐줄 가족이 단 한 명도 없는데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새삼스럽게.
제정신으로 있기 힘든 날에는 게임을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어느새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담배를 껐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정말로 결심을 지키기 위해 삶의 의미를 전부 놓아버리니 내 옆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제가 왜 굳이 살아야 하죠? 자살을 보류로 돌리니 뭘 위해 살아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다시 의미를 가지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그저 관성처럼 삶을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친구를 만나는 날에는 또 그런 소리를 들었다. 굳이 죽을 이유가 있냐고. 다들 이유 없이 살고 있지 않냐고. 그치, 네 말이 맞지. 그런데 나는 이제 그만 살고 싶어. 죽을 이유도 없지만, 굳이 내가 살 이유도 없잖아. 즐거움도 기쁨도 이제는 싫은걸. 굳이. 그런 날이면 애인이 또 울었다. 우는 애인이 불쌍하고 애처로워서 나는 또 말했다. 안 죽을 거야. 그렇게 정했으니 이제는 진짜로 살려고 할 거야. 결심한 건 지켜야 했다. 해야 하는 건해야 했다. 이 와중에도 나는 내 감정보다는 의무를 생각했지만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았다.
사실상 내 자살사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 아마 애인밖에 없을 것이다. 자살을 결심한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았고, 충동적이지 않았고, 웃음을 아예 잃지도 않았다.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네. 아마 다행이란 소리를 한 것을 안다. 그러면 나는 또 생각한다. 내가 죽겠다는 사실과 지금 웃고 있는 게 무슨 상관일까. 맞아, 그렇게 막 힘들지는 않았다. 웃으라면 웃을 수는 있었다. 즐기라면 즐길 수도 있었고. 다만, 그것조차 의미가 없어서 내가 왜 살아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심은 좀 다르다. 나는 여태껏 결심으로 살아왔다. 절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결심, 남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겠다는 결심, 내 자존감과 자존심을 누구도 꺾지 못하게 하겠다는 결심. 나는 결심한 것들은 지켰고, 결심한 것이라면 훗날 내 의사와 상관없이라도 지키려고 애썼다. 결심은 결심이니까. 지키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꺾이고 마는 게 마음이니까. 사실상 강박 증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서인지 애인은 내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죽으려고 했단 결심이 얼마나 심한 강박이었는지를 아는 건 애인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꺾었다. 네가 얼마나 내 결심이 중요한지 알고 있으니 그냥 꺾어버렸다. 내가 결심을 꺾었을 땐 늘 네가 있었다. 헤어질 결심, 죽을 결심. 너한테도 이젠 보상이 필요하단 것을 안다. 내가 너의 보상이 되어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되지. 여전히 나는 생각해.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내일이 오지 않고, 나의 하루가 이대로 끝이 났으면 해. 동시에 너를 생각해. 내가 죽은 뒤의 너를 떠올리면 괜스레 막막해져. 이 연애가 슬픔으로 끝이 나길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러니 이제 생각은 그만하자. 어차피 죽지 못할 거면, 하루라도 잘 보내야지.
관성처럼 사는 건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매일 그렇게 있으니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오토바이로 2시간 걸리는 시골 한옥으로 떠났다. 2시간 걸리는 거리는 지루했고, 오토바이 뒤에서 멍 때리는 것도 한계가 왔다. 무슨 생각을 주로 했더라. 왜 죽으면 안 될까, 에 대해 생각하다 나중에는 왜 죽으려고 할까로 넘어갔다. 나는 왜 죽으려고 할까? 그전에 왜 지금도 자꾸만 자살이란 선택지로 도망가려고 할까.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없었기에 죽고 싶었다. 그러니까 왜? 왜라고 묻는다면 목표가 없어서. 상실에 대한 충격으로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족은 내 목표였다. 매일 아파가면서 일했던 것도, 손 벌리고 싶지 않아서도 있지만 돈을 벌어서 얼른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이유가 강했다.
엄마와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이제는 정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 7일을 내리 일하는 엄마를 볼 때면 늘 숨이 막혔다. 제발 좀 쉬라고. 지금 당장 굶어 뒤지는 것도 아닌데 잠시 빚은 잊고 쉬는 날 좀 가지자고 말을 했다. 이제야 좀 엄마가 쉬는 거에 관심 좀 가지는 것 같았다는데 내가 또 못 참아서 엄마와 연을 끊었다. 내가 내 목표를 날려버렸다. 엄마와 함께 엄마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 다신 못하게 되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할까. 그걸로 버텨온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애인만 보고 살기엔 너무나 멀었다. 20년간 가져온 목표와 7년의 사랑을 어떻게 비교해. 미안하게도 나는 당장의 상실이 너무나 아팠다.
하지만 엄마 나는 이제 못하겠어요. 정말로 하지 못하겠어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켜야 하는 거죠.
이리도 아픈데. 아픈데 왜 지켜야 하죠. 그게 내 죄책감이자 의무였으니까요.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미워한 거 같기도 하고, 엄마를 그저 내 책임으로 여긴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나는 엄마랑 있고 싶었어요. 그전까지는요.
갑작스러운 내 변화에 엄마는 당황했겠지. 예상치 못했던 내 속마음에 엄마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
사실 동생의 SNS를 봤다. 엄마랑 부산 여행에 간 사진들이 잔뜩 있었다. 원래는 나와 애인과 이렇게 4명이 갈 제주도 여행이었으나 둘로 찢어지게 되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나와 애인은 제주도로, 동생과 엄마는 부산으로. 그래도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동생이랑 여행을 떠났구나. 내가 그렇게 엄마랑 여행을 가고 싶어 했는데도.
맞네, 그냥 가족을 찾아 찢어지게 되었네. 나는 애인이랑, 엄마는 동생이랑.
내 걱정을 하긴 했을까?
엄마가 떠났구나. 진짜로 떠났구나.
이젠 없네.
오토바이 위에서 내리자 잠시 어질어질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2시간 안에 내리 이어져서일까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한옥에 짐을 풀고 나와 우리는 한참 집을 둘러보았다. ㄷ모양으로 지어진 한옥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 앉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자 뭔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워진다 싶으면 겉옷을 가져왔고, 목이 마른다 싶으면 물통을 가져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엄마랑 있고 싶었어. 근데 이제 엄마랑 안 있으려고. 애인은 별말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하자며 그냥 공시도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이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살지 말자고. 나는 잠시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동자를 굴리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때려치우자. 정말로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게 좀 더 취업 가능성이 높아서 하려고 했던 거지만.
애인이 물었다. 그럼 너는 뭘 좋아해?
좋아하는 게 없었다. 사실상 다 그냥 그랬다. 뭐 하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없었다. 그러자 애인은 뭐는 어때,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카페를 차려 볼까? 그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창업. 어릴 때부터 늘 창업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으나 이제는 정말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베이킹한 지도 꽤 되었고, 어차피 죽으려고 했던 거 카페 망했다가 죽나, 지금 죽나 차이도 없다. 그럴 거면 도전이라도 해야지. 베이킹을 하는 건 사실 그냥 그랬지만 나는 내 공간이 갖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의 공간. 내 취향대로 꾸민 공간과 그 사이에 있는 나. 그게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