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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륜정 Sep 01. 2022

EP03 풍선은 열기구가 될 거야

 사막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막의 낮이 날카롭게 내리쬐는 햇빛이라면 사막의 밤은 손발이 얼어붙는 차가움이라고. 내 삶은 사막 위의 삶과 같았다. 낮과 밤이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나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외로웠고, 혼자가 당연했으며, 입을 열어도 누군가에게 닿는 날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게 내 운명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게 당연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냥 이대로 죽으면 되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너는 아니라고 말했다. 내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며 허황된 말을 지껄이곤 했다. 처음엔 네 말을 믿지 않았다. 네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고. 그래 봤자 스쳐 지나갈 사람 중 하나라고, 내가 너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 동안 너는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았으나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실망하면 나만 상처받을 게 분명하니까. 애써 믿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네가 내 옆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가족을 버렸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이전의 가족들이 나의 사막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면, 이번엔 같이 머물러줄 사람을 찾았다. 사막의 낮과 밤. 나는 나의 사막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필명을 지었다. 윤사막. 윤은  이름  가장 마음에 드는 글자였다. 어쩐지 윤기가 나는 느낌에, 빛을 잃지 않는 사람과 같았다. 그러니까 사막은 사막이지만 윤사막. 사막에 있어도 빛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낮에는  가운을 뒤집어쓰고, 밤에는 횃불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사막의 낮은  없이 쏟아지는 햇볕과 같겠지, 사막의 밤은 살벌하게 지나가는 칼날과 같겠지. 그럼에도 내가 해야  일은  하나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 간단하지 않은가. 생각보다 사는  간단했다. 무너지지 않은  해야  일을 하는 . 물론 그게 제일 힘들지만 내가 알아둬야   그거  가지였다. 나는 이제 나의 극단을 즐겨야지. 나의 극단을 모두에게 보여줘야지. 불특정 다수에 속한 당신이  극단을 보아도 나는  당당할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지.


 공무원 시험을 아예 때려치웠다. 여태까지 망설이기만 하면서 수험서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정말로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싹 묶어서 버렸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공부하는 건 또 좋아해서 나름 잘 맞았는데 이 직업을 갖고 싶냐고 하면 아니었다. 나는 삶의 목표를 바꿀 필요성이 있었다. 더 이상 가족을, 타인을 내 목표로 삼아서는 안됐다.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다. 그러다 입시에 실패하고 관둬버린 글이 생각이 났다. 막상 글을 쓰려니 무서웠다. 밑천이 드러나는 게 싫었다. 미련 밖에 안 남은 나의 실패를 돌아보는 게 그렇게 두려웠다. 그때의 실패가 너무나 아팠고, 그렇게 미련이었다. 다시 노력하는 게 무서워 나는 피하고만 있었다.


 애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씨잼의 노래를 들었다. 앨범 ‘킁’과 ‘걘’을 들으며 한참을 멍 때리다 말했다. 이거 되게 조울증 같다. 앨범 ‘킁’ 자체가 코카인을 킁 하고 들이키는 순간부터 약빨이 떨어지기까지를 다루는 구성이었는데 어쩐지 그 흐름이 조울증처럼 느껴졌다. 내 통제에서 벗어나버린 기분과 정말로 나를 잊어버릴 것 같은 느낌에 반복해서 노래를 들었다. 나는 이런 심정이었어. 오락가락하고 뭐가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잔잔하게 깔린 감정을 마주하기엔 무섭고, 늘 도망치고 싶었던 기분. 내 기분이 그랬다. 다음 앨범인 ‘걘’은 마약 사건 이후의 이중적 개인사를 다뤘는데 장난기 어린 목소리의 멜로디가 어쩐지 비명처럼 들렸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두 앨범을 주구장창 들었다.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쓴다면 내 오락가락한 느낌과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을 잔뜩 욱여넣고 싶어. 산만하고 들끓고 분노만 남아버린 마음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다.


 그날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소설이었고, 한 페이지 분량의 엽편이었고, 응, 역시나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멍멍한 느낌에 눈을 감았다. 늘 미래를 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면 글을 썼다. 어릴 땐 어차피 살 생각 없으니 글이나 쓰자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거 글이나 쓰자가 되었다. 그러면 해야지. 하고 싶으면 제대로 해야지.


 소설을 아무리 써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나는 같은 얘기를 같은 방식으로 풀어냈을 뿐,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다. 왜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글을 쓸 때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 나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 커리큘럼을 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가. 가족한테서 도망친 지 오래라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정확히는 가정 얘기는 청소년 때 많이 썼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마가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웠고, 아빠를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썩어가는 분노만 가득했다. 끝나지 않았다. 끝났다고 착각만 했을 뿐.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길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간단했다. 그냥 아팠다고. 내가 아파서 그랬다고. 모두가 내 아픔에 대해 알지 못한 게 못내 속상했다. 나는 늘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에 한 번쯤 부정을 던져 보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라 버티기 힘들었다고. 아무리 단단한 벽이라고 해도 그렇게 발로 차면 무너지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이 양극단을 오가는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증과 우울증 사이의 간극.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생, 그냥 나는 태어나길 방랑자인가 보다. 이제는 정말 나를 닮은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것이다. 의무나 책임감이 아닌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찾아 떠날 것이다. 여전히 사막의 낮밤은 무섭고 끔찍한 것으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인이 내 옆에 있어줄 테니까. 이제는 약도 규칙적으로 먹고, 비대면으로라도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오기로 했다. 맞아, 단약 때문에 꽤나 고생 좀 했지. 괜찮아지면 가정폭력 PTSD 치료를 받아볼 생각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학대당해 왔고, 입을 다문 채로 자라 버려서 말하는 법을, 감정을 떠올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괜찮을 거야. 나는 여전히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변할 거야. 네가 한 말을 그대로 믿는 날이 올 수 있겠지. 나의 사막이 더 이상 사막이 아닌 초원이 될 날도 올 수 있겠지. 그 끝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너무 고생했으니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나를 통해 기쁨과 즐거움만 받았으면 좋겠다. 나,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해지고 있는데. 많이 느리고 과정이 거칠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어. 같이 사막을 걷자. 방량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 사막이 아닌 다른 곳도 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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