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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27. 2022

EP03 혼자가 되어 가는 중이야


 내가 엄마한테 느껴야 할 감정은 딱 하나였다. 안쓰러움. 그런데 어떡하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한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언제나 착하고 상냥한 우리 엄마. 동시에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선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엄마는 결코 내 편이 될 수 없었다. 내겐 확신이 필요했다. 내게 절대 상처 주지 않을 것이라고,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줄 것이라고. 그랬기에 엄마가 내게 있어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곳이 되어주길 바랐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고, 이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절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엄마는 싸움 자체가 무서우니까.


 만약 우리가 다른 가정이었으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빠한테 맞고 자라지 않았으면 어쩌면 엄마와의 관계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괜스레 환경 탓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싸움이 많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서 엄마가 원망스러운 거라고.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은 결국 쓸데없다. 이미 지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잖아. 포기해. 늘 그렇게 중얼거렸다. 체념은 늘 익숙한 감정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체념해야 했고, 또 많은 환경 속에서 버텨야 했다. 입버릇처럼 난 버티는 걸 제일 잘한다고 말해왔지만 역시 힘들었다. 버텨서 되는 상황이 있잖아? 엄마와 나는 그런 게 아니었다. 버틴다고 될 문제가 아님에도 나는 계속 버티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동생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속상해 보이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저 아직도 사과 못 받은 거 아시죠? 사과받아야 했으나 사과받지 못했다. 워킹홀리데이 이후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동생과 일시적으로 연을 끊었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엄마의 설득으로 다시 만나게 된 동생이었다. 동생이 사과를 어려워하기에, 내가 좀 더 참아줄 수 있기에. 그렇게 미뤄진 사과도 받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엄마는 안다고 했지만 결국 결국 동생 혼내지 않았다. 그저 또 지켜볼 뿐이다. 엄마는 늘 타인에게 선역으로 있어야 하니 나를 위해 화내 주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엄마가 내가 아닌 자신의 안전을 위해 회피하는 것조차 엄마의 선택이니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근데 왜 이 당연한 사실이 싫지?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계속 이 기대를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엄마가 없는 게 나을 텐데. 충동적으로 내뱉은 그 말은 진심이었다.

 

  “엄마, 나는 가족이 싫어요. 우리가 가족이란 생각도 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가족이에요.”


 억지로 말을 이어갔다. 든든하고 착한 딸로 남고 싶었으나 끝은 결국 이거였다. 버티고 버틴 결과는 쓰렸다. 그때를 잊지 못한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귀국했을 시점, 워킹홀리데이는 돈과 시간, 그리고 감정에 대한 낭비로 남아버렸다. 내 모든 노력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평일 알바와 성적 장학금을 받는데 소진되어 버렸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억울한 감정에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드는 책값은 전부 애인이 도와줬고, 대학을 다니기 전 아르바이트가 끊기면서 엄마 돈을 과하게 썼다는 죄책감에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엄마한테 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애인의 눈치를 봤다. 애인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대학도 다니지 못했을 텐데, 내 애정은 엄마를 향해 가고 있었다.


 죄책감과 억울함이 엉켜 내가 내 감정도 알아채지 못했다.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말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만 쉬고 싶었다. 그때 나는 본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힘들게 꺼낸 말에 돌아온 답변은 환대가 아닌 곤란함이었다. 새롭게 오는 식구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차라리 보증금을 도와줄 테니 집을 새로 구하란 말을 할 정도로 나를 받아줄 여력이 없었다. 이미 상처받았지만 정말로 갈 곳이 남지 않은 나는 끝내 서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잘못이었다. 스무 살에 집을 나와 6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거기서 나는 뭐 하나 편히 만질 수가 없었다. 내 방이 없어 거실에서 잠을 잤고, 일어나면 바로 독서실로 가야 했고, 어쩌다 늦게 일어나는 날에는 내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에 자기 일정이 꼬였다며 동생이 악을 쓰며 방에서 울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와 달리 깔끔했던 동생은 내가 건드린 곳이면 항상 눈앞에서 에탄올로 빡빡 소독했다. 물론 동생은 성격 나쁜 나 때문에 상처받아왔고, 그 상처는 영원할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동생에게 불편함이고 곧 상처일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그렇게 자길 괴롭혔던 언니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사이에서 느낀 것은 하나였다. 다들 내가 상처받을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구나. 나를 사람 새끼로도 보지 않네. 어쩐지 늘 날 보고 세뇌하듯이 강하고 굳센 큰딸이라고 하는 엄마의 말이 겹쳐 들렸다. 강한 아이는 무슨 취급을 당해도 상처받지 않으니까. 그대로 잘 울지 않은 큰딸의 덕이 컸다. 울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꽤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날 나는 집을 나와 애인의 고향인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왜 나는 또다시 서울로 와서, 하필 엄마를 만나서 이 꼴이 났을까. 배운 게 없는 인간은 나였다. 엄마의 사과를 듣는 내내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말하는지 이해가 갔고, 그랬기에 엄마를 미워할 수 없었다. 미워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엄마와의 단절이 간절했다. 이만하고 싶었다. 수많은 거절과 방치를 당하면서까지 엄마의 옆에 있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니었는데 가족은 늘 나를 약하게 하고 쉽게 무너지게 만든다. 나는 약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데, 가족이 나한테 그렇게까지 가치 있을까 싶었다.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를 사랑하냐고. 하지만 묻지 않았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혹여나 사랑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과거가 그랬고, 지금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사랑한단 대답이 들려올까 봐 이제 묻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데, 가족들이 나를 사랑하면 나만 나쁜 애가 되어 버리지 않는가. 나 홀로 나쁜 아이로 남는 것은 지난 과거로 족했다.


 엄마, 엄마는 나를 사랑했나요.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는 아직도 나를 놓지 못했죠.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엄마를 차단한 그날 엄마는 딱 한 번 제 애인한테 전화했죠. 애인이 말하더라고요.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이었으면 자기가 중재라도 해보았을 거라고.


 그 정도였죠. 그러니까 그냥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미움을 받으면 나는 초연해질 수 있겠죠. 그러니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래요. 내 감정이 내게 짐이 된다면 버려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엄마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래요. 가뜩이나 사는 것도 힘든데 슬픔이나 원망 하나하나 느끼다 보면 내가 지쳐서 어떻게 살겠어요? 나는 이제 엄마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래요. 나는 역시 착한 사람이 싫어요. 착한 사람은 내 편이 되어주질 못하잖아요. 영원히 그렇게 나약하고 싸우는 게 무서워 모두를 위하는 척 살라고 해요. 그럼 이제 상처받을 일은 없겠죠. 더 이상의 상실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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