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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22. 2022

EP01 혼자가 되어 가는 중이야

 아빠.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내 기억 속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요? 그랬나요? 나는 이제 모르겠다.


 아빠는 나를 좋아했다. 나를 싫어했다. 내가 집안을 이끌 것이라 여겼다. 내가 울지 않는 날에는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때렸다. 맞고 있던 나는 뭘 했던가.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면서 커튼 뒤로 감춰지길 그렇게 원했다.


 나는 무엇을 바라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날 때가 많다. 그저 교실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게 정상이냐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평범도 못 했다. 검붉게 물든 허벅지를 보며 아이들은 수군거렸고, 나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아빠의 말이 담긴 다이어리를 읽은 선생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님끼리 금술은 좋았던 점이다. 그래서 더욱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화목해. 아빠가 처벌이 좀 강했을 뿐이지, 이 정도면 화목한 거 맞지. 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뻔히 드러난 사실인데.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 아빠를 만났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내 말에 아빠는 건조하게 대답했고,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아빠의 차를 타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지속되는 돈 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빠가 계속 뱉어대는 천박하고 더러운 이야기들 때문일까. 아빠는 그랬다.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딸 앞에서 못 할 말들을 쉽게 내뱉곤 했다. 제가 왜 아빠의 노래방 얘기까지 들어야 하죠. 거기에 있던 여자애들은 내 또래거나 나보다 살짝 많겠죠. 혹여나 어리다면,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듣지 못한 척했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한 척 외면했다.


 그러니 나는 괜찮아야 했다. 아빠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웃어야 했다. 아빠는 커피를 홀짝거리는 내 앞에서 반복적으로 말했다. 너는 가난하니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더 노력해야 해. 어쩌겠어. 그렇게 태어났는 걸.


 가난하니까.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사라질 말일까. 나의 노력은 당연한 것들이 된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묻어진다.


 아빠는 알까.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가 가난이 아닌 훈육을 빙자한 학대였다는 것을.


 더럽다. 더럽다. 더러워서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더러운 감정 앞에서도 나는 멀쩡하게 있어야 했다. 나는 시선을 피해서는 안 됐다.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나는 딸로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아빠는 내 아빠로 있지 않았을까요.


 아빠가 돌려서 말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빌붙지 말아라. 혹여나 내가 돈 얘기라도 꺼낼까 봐. 아빠는 그게 무서웠나 보다.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었다. 아빠와의 관계는 이미 여기가 마지막인 것 같았고, 엄마와 동생과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 이상 내가 본가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짐을 싸서 애인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으나 그곳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하나둘 나를 떠나는 느낌이 끔찍하게만 느껴져서 내가 먼저 애인을 떠났다. 애인과의 관계를 끝내자 다른 사람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EP04 구멍 난 풍선은 아래로, 결국 새로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현 애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모든 관계가 전부 가볍고 의미 없게만 느껴졌다.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 애는 간혹 내게 말하곤 했다. 아빠한테 연락을 해봐. 장례식장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장례식이란 말에 잔뜩 얼어붙은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아빠한테 연락했다. 아빠는 당황했고, 곧바로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나름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괜찮아졌을 것이라 믿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관계를 회복하다 보면 화목한 관계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응,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말은 주술과 같았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사는 거 아닐까. 사람을 믿으면 안 돼. 집안의 얘기를 밖으로 꺼내면 안 돼. 너 같은 애를 누가 사랑하겠어. 아빠는 종종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엔 의미도 주술적 효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입을 열려고 하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을 믿으려고 해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신에 눈을 감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는 평생 가까워지지 못할 거야. 아빠 말대로 되었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가까워지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사랑을 할까.


 스무 살을 넘기자 이상하게 어딜 가던 호의를 샀다. 사람들은 금방 나를 좋아해 줬고,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게 표정에 드러나곤 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는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마지막에만 찬란하게 빛날 뿐, 금세 없어지곤 했다. 그래서 아빠는 만족스럽나요? 나는 일부러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말을 해봤자 아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망상증 환자로 취급할 게 뻔히 보이니까. 아빠한테 뭘 원했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내가 뭘 하면 조금이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부모와의 연은 절대 끊을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면 조금이라도 좋아지게끔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빠의 얼굴을 마주 보며 조금이라도 우리의 관계가 나아지길 원했다. 인연이 끊긴다면, 그러다 만약 아빠의 부재가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하면, 내가 후회할까 봐 무서웠다. 나는 후회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아빠를 마주하고 싶었던 건데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끝은 정말로 쉬웠다. 어쩌면 여태까지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쉬웠는지 모르겠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잘 풀린 관계 같았으니 이대로 이어가면 될 것 같은 느낌이 왔었다.


 정말? 아빠한테 연락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에 왔던 아빠의 연락은 동생 생일에 대한 질문이었다. 오늘이 동생 생일이 맞니? 문자를 하고 얼마 안 가서 아빠한테 전화가 왔었다.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전화였다. 거기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빠는 내 생일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굳이 왜 연락하겠어요. 그러고 끝이 났다. 아빠와의 관계가 끝이 나버렸다. 절연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래된 친구와의 연락이 서서히 줄어들다 끝내 끊겨버리는 것처럼 아빠와의 관계가 끝나버렸다.


 무엇을 바라왔던가. 나는 이제 모르겠다. 아빠한테 뭘 바랐는지 모르겠다. 사과를 바랐나? 아빠는 이미 한 번 내게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비록 억울함과 자기연민이 듬뿍 담긴 눈물이었으나 어쨌든 아빠는 내게 사과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더 이상의 폭력도 없었다. 정말 나만 가만히 있으면 화목해질 수 있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굳이 그래야 할까.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나 홀로 애쓰며 아빠와의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냥 후회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뭘 하던 마지막엔 후회만이 가득할 텐데. 만약 때가 오면 그냥 장례식에 가서 울자. 후회를 하게 되면 후회하자. 용서를 못 하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다면 나는 평생 용서받지 못한 채로 살자. 차라리 그게 나았다. 더 이상 내가 불쌍해지길 원치 않았다.


 악당이 사라진 후의 이야기를 가끔 생각해본다. 전투도 복수도 없이 사라진 악당의 흔적을 찾는 주인공이 되어 홀로 남겨진 순간을 곱씹어본다. 허망한 감정에 숨조차 의미 없이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 무슨 의미로 있을까. 의미가 남겨지지 않은 세상에서 숨을 쉬려면 의미를 만들어내야 했다. 곧이어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악당이 없으면 악당을 만들어내면 된다. 적은 늘 많았고, 그중 하나를 데려와 악당의 자리에 앉히면 되잖아. 그 후의 이야기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엔딩은 영원히 안 나올지도 모르지. 그럼 나는 아마 슬퍼할 거야. 새로운 아빠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새로운 악당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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