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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24. 2022

EP02 혼자가 되어 가는 중이야

 흔히들 있는 안전망이 내겐 없었다. 실패했을 때 되돌아갈 수 있는 곳, 떨어졌을 때 지지해줄 수 있는 곳이 내겐 없었다. 사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도 믿지도 못한다면 그건 없으나 마나 한 것이 아닐까. 엄마가 내 안전망이 되어주길 바랐다. 엄마만은 힘들 때 내 편이길 바랐다. 안타깝게도 사는 건 너무 힘들었고, 안 그래도 여유가 없는 마음속에 나까지 넣어달라고 하긴 무리였다. 알고 있다. 내 말이 얼마나 철없고 엄마를 아프게 하는지. 내 의무는 그거뿐이었다. 입 다물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게 엄마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참지를 못했을까.


 낯선 지방에서의 2년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많은 것을 착각했다.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 여겼다. 애인을 데리고 종종 본가로 놀러 갔다. 소파에 누운 애인의 몸에 기대며 동생과 실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과거를 기억한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그간 있었던 일에 토로하고는 쉽게 웃음을 흘려보냈다. 엄마는 그럼 뭐라고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거나 시간이 늦어지면 우리는 다 같이 술을 마셨다. 동생과 나는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엄마는 맥주를, 애인은 집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마시며 서로 웃음을 나누었다. 어때, 행복해 보이지 않아? 그럼 그대로 거기에 있지 그랬어. 우울증도 조증도 다 잊어버리고 그대로 거기에 있지 그랬어. 가끔 엄마의 앞에서 약을 먹었다. 늘어난 약을 보이면 엄마는 아직도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그러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했다. 여전히 아팠으나 왜 집안에서 가장 아프고 눈치를 보게 하는 건 동생일까.


 나는 아팠으나 아픈 애는 되지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 강한 아이였으니까.


 그러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조용히 있자. 그럼 행복해질 거야.


 행복? 있었던가.


 본가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몸이 아팠다. 왜 몸이 아픈지도 모른 채 계속 아파서 하루를 내리 앓아누웠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보면 차마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모른 척 웃었다. 왜 아팠냐고요? 긴장돼서요. 자꾸 의식이 돼서 내가 나로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짐작하고 있었다. 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책임감과 사랑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일까. 오랫동안 그 경계선을 찾지 못했다. 엄마. 엄마는 내 유일한 가족이었고, 절대 끊지 못할 관계였다. 엄마는 어린 나를 돌봐준 사람이었고, 내게 애정을 보인 사람이었다. 나를 마주 보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엄마만은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맞았다. 엄마마저 없으면 난 정말로 가족이 없으니까. 엄마는 내 목표였다. 돈을 벌어 영원할 것 같은 가난에서 다 같이 탈출하는 것. 그게 내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공부를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고, 열심히 살아야 했고, 책임감 속에 영원히 있어야 했다. 머리가 나를 채찍질하고 있음에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에는 분한 마음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니 내게 더한 상실을 주어선 안 됐다. 이 이상의 거절을 받아들이기는 싫으니까.


 동생과 절연했다. 절연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상황과 관계없이 기분 나쁜 티를 막 내는 동생한테 짜증이 났고, 안 그래도 잦은 어리광에 지쳐있던 탓에 더는 받아주기 힘들었다. 동생은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했으나 그 사과는 굉장히 피상적이었고, 내가 말을 끄집어내야지만 하는 사과에 가까웠다. 그렇게 내가 터져버렸다. 여기까지가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 수 있는 납득이 갈만한 이유다. 사실 전부 다 핑계다. 우리 가족이 무너지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순리에 가까운 일이었고, 근시일 내에 이리될 것임을 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의 잘못과 상관없이 내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자체가 싫었고, 족쇄 같은 이 관계가 끝나야 내가 편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잘잘못과 별개로 내가 가족이 싫었다.


 나는 동생 앞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동생은 가끔 나를 잊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내가 사람인 것을 잊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있어 어린 시절 자길 괴롭힌 가해자였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언제든 나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내가 개새끼인 건 사실이었다. 아빠의 폭력을 답습한 나는 그만 내 동생한테까지 그 폭력을 내려주었다. 아빠의 말대로, 모든 건 서열대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매로. 그렇게 배웠고, 그게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아버렸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나는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부르면 가고, 고민이 있으면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쓸모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미안해. 하지만 내가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해?


 하지만 내가 잘못했어. 그렇지만 언제까지 난 이래야 해?


 너는 왜 사과하지 않아?


 너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 둘의 관계는 그랬다. 좋은 자매 관계처럼 보이지만 수틀리면 남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족이었다. 동생이 나처럼 안 살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었다. 동생은 맞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생은 자기 마음대로 학교를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동생은 스무 살 때부터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마음이 아닌 날도 있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일해야 했는데 동생은 아르바이트 월급과 별개로 용돈을 받았다. 나는 용돈도 못 받고 제대로 된 스킨로션도 못 사는데 동생은 항상 백화점 브랜드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나한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동생은 약하고 아직 사회생활이 힘드니까. 집안에서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그럼 나는 뭘까. 역시 사람 새끼가 아닌 거겠지.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기대를 얻은 대신 부모님에게 폭력과 부담도 받은 나와 약하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으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자란 동생. 정말로 동생의 탓이라면 아니었다. 나를 때린 것도 아빠였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무시해버린 건 엄마였고,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가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생이 싫었다. 자신은 피해자란 듯이, 자신은 항상 상처받는 입장이란 듯이 사과를 피하는 동생이 싫었다.


 결국 동생과 나는 친해질 수 없다. 내가 속으로 이런 악의를 계속 갖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친해질까. 나 역시 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한참 약한 존재, 돌봐야 할 존재, 내 생각을 숨긴 채 대화해야 하는 존재, 그 이상이 아니었다. 나는 네게 말하지 못한다. 굳이 말해서 뭐 할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테고, 좋아할 이유도 없고, 친해지고는 싶었지만, 어차피 우리 사이에 불가능한 거 아닐까. 너는 우울증 완치 진단을 받고 약을 그만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본 너는 화가 난다는 이유로 집안 물건을 부수고 만만하다고 생각한 엄마한테 괜한 화풀이를 하는 존재였다. 완치? 진짜 개소리다.


 나는 약을 계속 먹고 먹고 먹고 먹고 그러다 몇 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고 먹고 먹고 몇 번 안 먹다가 먹고 먹고 먹고 완치는 무슨 계속 중증인데 아무도 나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또 여전히 스킵이지. 알아서 건강해야지.


 괜찮아 스킵은 일상이니까. 대신 나는 좀 탈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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