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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pr 25. 2021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구별하는 법

다묘 집사의 고양이 구별법

4냥꾼 캣브로, 열네 번째 이야기




나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다


자려고 한참을 뒤척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시각을 제외하고 다른 하나의 감각만으로 어둠 속에서도 고양이들을 구별할 수 있을까? 냥이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빛이 적어도 물체를 인지할 수 있는 밝은 눈과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밤만 되면 내 겨드랑이만 집중 공격하는 루비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내에게 부탁하여, 블라인드 실험을 해 보았다. 먼저 냄새만으로 각 냥이들을 구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무리였다. 나는 데어데블 같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다. 혹시 훈련을 반복하면 냄새로 냥이들을 알아챌 수 있을까? 아내는 그러지 말자고 했다. 우리에겐 진보된 문명이 있다. 현명한 아내의 말을 따라 정 궁금하면 그냥 스마트폰을 비춰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맛을 통해 구별하는 것은 어떨까?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헤어볼을 토하고 있는 집사를 보는 것은 고양이의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사료의 종류를 구별하는 건 가능할지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맛은 보지 못했다. 혹시 시도한 사람이 있다면 결과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울음 소리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것 같다. 나의 귀는 고양이에 비할 바 못 되나,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의외의 사실인데 청력은 고양이가 개보다 더 뛰어나다고 한다.) 집사를 부르거나 불만을 표출할 때의 냥이들 울음 소리야 자주 놀러 온 손님들도 구별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츠동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 같은 미성이다. 반면에 루비는 아주 우렁차다. 호흡도 길어서 5초 정도 음을 뽑아낸다. 문제는 이렇게 하루에 백 번 정도 운다는 것.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어둠 속에서 냥이들을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십중팔구 냥이들도 자고 있을 것이란 말이다. 잠꼬대면 몰라도 자는 중에 갑자기 우는 고양이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골골이 소리라도 들으려면 결국 만져 줘야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통 촉각을 통해 구별하는 편이 많지 않을까 싶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예민한 손가락도 가지고 있다.


캣브로의 4냥이 구별법


다묘 집사라면 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크기가 비슷해도 냥이들마다 특징이 있다. 오감 그리고 아주 약간의 관찰력과 상상력을 활용하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냥이들을 구별할 수 있다. 나중에는 발가락만으로도 알 수 있게 된다!


집사들마다 냥이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다양할 것 같다. 집사인 한 친구는 뱃살을 만져 본다고 한다. 베개처럼 얇고 말랑말랑한가? 아니면 운동 직후 알이 배긴 종아리처럼 단단하고 묵직한가? 아내는 발톱만 만져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생선 가시처럼 날카로운 발톱도 있는 반면, 입 물고 있던 녹말 이쑤시개마냥 뭉툭한 발톱도 있다. 발톱 깎는 주기에 따라 날카로움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독 발톱을 깎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의외로 목욕도 제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순둥이 마끼가 그렇다. 발톱 깎기 싫다고 이빨로 살짝 물 때도 많다.


나는 털을 통해 구별하는 쪽이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쓰다듬어 보면, 털의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중장모인 마끼의 털은 풍성하고 북슬북슬거린다. 단모인 나머지 녀석들은 길이는 비슷하나 느낌이 다르다. 츠동이의 털은 푸석푸석하고 뻣뻣하다. 뚱냥이 구로의 털은 좋게 말하면 린스를 바른 머리카락 같다. 잉여 지방이 몸에 쌓이다 못해 털에도 저장되는 것 같다. 루비의 털은 민들레 씨앗처럼 부드럽고 가볍다.


구로의 흉을 봐야겠다. 좋게 말해 린스를 바른 것 같고, 실은 아주 기름지다.


만물의 영장답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만지지 않고도 옆에서 얼쩡대는 녀석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보통 아내 옆에서만 자는 츠동이는 내 옆에서 자는 일이 드물다. 가끔 아내가 없는 밤이면 오기도 하는데, 이때는 꼭 다리 사이에 들어와 눕는다. 마끼는 허벅지나 허리께에, 겁쟁이 구로는 발치에 눕는다. 여전히 나의 겨드랑이를 노리는 변태냥 루비는 얼굴이나 팔 옆에서 잠을 청한다.


고정 위치를 벗어난 냥이들의 정체가 궁금할 때는 다리를 떨어 본다. 짜증을 내며 위치를 옮긴다면 츠동이요, 지진이 일어나도 미동이 없다면 마끼이다. 단 여기에는 상반되는 단점 두 가지가 있다. 구로라면 영영 도망가 버리고, 루비라면 골골이를 시작하며 축축한 코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전자는 속상한 것이, 후자는 매우 귀찮아지는 것이 단점이다. 인생에서 가장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이다.


고수는 하수가 볼 수 없는 디테일을 본다고들 한다. 이제 나도 우리 똥냥이들 골골이 소리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나름 성량과 음의 미묘한 높낮이 차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연차로나 육묘 지식으로나 아직 베테랑 집사라고는 할 수 없다. 고양이를 위한 좋은 환경이나 음식 등 상당 부분을 아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한다. 도와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미안하고 고맙다. 고수가 되기 위해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사랑하는 우리 똥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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