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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pr 20. 2021

나는 괴식 고양이

고양이, 괴식과 이식증 사이

4냥꾼 캣브로, 열세 번째 이야기




나를 괴롭게 하는 괴식냥이들


괴식. 사전에 있는 말은 아니다. 설명보다는 사례를 드는 편이 빠를 것 같다. 보통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콜라를 정말 사랑하는 나머지 밥도 말아먹거나, 캅사이신 원액을 들고 다니며 모든 음식에 뿌려 먹는 등 다양한 예가 있다. 개인적으로 주위에서는 그다지 괴식이라 할 만한 사례는 못 본 것 같다. 아, 소곱창에 공깃밥 두 그릇을 먹는 친구는 있다. 아내는, 식초를 좋아해서 만두를 식초에 찍어 먹는 나를 괴식가 취급하기는 한다. 본인은 과식이나 좀 하지 않았으면.


캣닢인 줄 알고 고양이에게 깻잎을 주었는데 싫어하더란 얘기가 생각보다 많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재미있는 얘기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이슈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이슈가 된다. 설마 하고 검색해 보니, 캣닢인 줄 알고 주었던 깻잎을 맛있게 먹는 고양이가 더러 있다. 우리 집 냥이들도 괴식을 한다. 맏이부터 막내까지 괴식의 유형도 다양하다. 우리 집에 사는 나쁜 놈, 얄미운 놈, 귀여운 놈, 이상한 놈을 소개한다.


청경채를 먹고 있는 츠동이. 육식 동물이지만 무해한 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헤어볼을 토하는 데 도움을 준다.


4냥이들의 괴식 행태


츠동이는 초록색 야채라면 다 좋아한다. 공기 정화를 위해 기르던 알로카시아라는 식물도 츠동이가 잎을 계속 물어 뜯는 바람에 결국 뿌리까지 통째로 썩어서 버리고 말았다. (뿌리식물인 알로카시아는 독성이 있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려 와사비라는 귀여운 이름도 붙인 ‘반려식물’이었다. 와사비의 사망과 함께 베란다에서 미니 텃밭을 가꾸고 싶어 하던 아내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 츠동이는 아주 나쁜 놈이다.


와사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츠동이. 츠동이는 파도 좋아한다. 다행히 냄새만 맡지만, 파를 포함한 모든 부추류는 고양이에게 적혈구 파괴를 유발한다. 개도 마찬가지이다.


마끼는 괴식보다는 과식 유형에 가깝다. 토할 때까지 먹는다는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니었다. 사료는 적당히 먹는 편인데 생식이나 간식 욕심을 그렇게 낸다. 한때 낚시를 즐기던 아내가 보리숭어를 8마리나 잡아온 적이 있었다. 마끼는 앉은자리에서 손질한 보리 숭어 반 팩을 해치워 버렸다. 다른 녀석들도 마끼처럼 생식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은 건강 문제로 간식을 오랫동안 주지 않았을 때 다리를 저는 척을 한 적도 있다. 캔 따는 소리만 들리면 누구보다 빠르게 바른 자세로 달려왔기에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혹시 모를 관절염을 의심하여 병원에 갔으나 수의사 선생님은 너무 건강하다고 했다. 참고로 실제 질환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꾀병으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병원에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참 얄미운 놈이다.


사람이 먹기에도 귀한 보리숭어를 배 터지게 취식 중인 마끼


사람도 그렇다. 다이어트를 하든 반대로 몸을 키우든 운동만큼이나 식습관이 중요하다. 단백질은 늘리고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구로는 탄수화물과 지방 중독이다. 튀김을, 그중에서도 감자튀김을 좋아한다. 아내에게 경쟁자가 생겼다. 역시 귀여운 뚱냥이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구로의 튀김 사랑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햄버거를 먹다가 바닥에 떨어진 감자튀김을 입에 물고 멀리 가서는 허겁지겁 먹고 있는 구로를 보게 된 것이었다. 가끔 집에서 분식을 주문해서 먹을 때면, 구로는 공포감도 극복하고 발치에서 튀김을 줄 때까지 빤히 쳐다보며 기다린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될 것 같아 냄새만 맡게 한다. 참을 수 없이 귀여운 놈이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지


주인공은 원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루비의 변태스러움은 이전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변태냥 루비는 먹는 것도 변태스럽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루비는 우리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몰래 들어간다. 세면대나 변기에 고인 물을 마시기 위해서다.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 말하자면, 우리는 물그릇을 항상 충분히 채워 놓는다. 고양이가 물을 많이 마시는 건 아주 좋은 습관이다. 문제는 왜 멀쩡한 물을 두고 화장실에 고인 물을 마시냐는 것이다. 그렇게 마시고 나오면, 거실 바닥은 온통 루비 발자국 천지가 된다. 아직 약하다. 이 정도로는 변태라고 할 수가 없다. 마끼가 아주 예쁘게 토해 놓은 것을 치우기 위해 물티슈를 들고 왔을 때의 경악스러운 상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티슈는 필요 없었다. 그렇다. 루비는 형제 냥이들이 ‘토해 놓은 사료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이유는 알고 싶지 않다. 자다가 루비에게 겨드랑이 그루밍을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세한 묘사도 하고 싶지 않다. 그야말로 치울 것도 없었다! 이놈, 우리 집에서 제일 이상한 놈이다.


세면대 물을 무단 취식하고 있는 루비를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학대하는 줄 알까 봐 걱정이다. 눈 앞에 놓인 진수성찬을 보고 눈빛이 변했다.


이식증은 조심하자


이 정도 괴식이라면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이식증(異食症)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식증이란 먹을 수 없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또는 먹어도 아무 영양분이 없는 종이나 비닐 따위를 먹는 행동을 말한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행동 증상이다. 보통 이식증은 영양 결핍이나 심리 불안 등으로 나타난다.


고양이가 이식 증세를 보인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고양이가 자꾸 먹으려 하는 물건을 치우는 것이다. 우리 집 냥이들의 경우, 고무줄을 자꾸 입에 넣으려 해서 배달 음식을 시키면 고무줄부터 빼서 버리는 편이다. 고양이 이식증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는 비닐을 섭취한다는 것이다. 비닐을 의도적으로 먹으려 하지는 않더라도 물고 뜯으며 노는 과정에서 삼키게 되는 경우도 많다. 기도를 막으면 큰일이고, 위로 들어가면 대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고뭉치 마끼도 비닐을 삼키고 다행히 헤어볼과 함께 토해 낸 적이 있다. 고양이가 비닐이나 실뭉치 등을 가지고 놀 때는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면, 고양이가 이식증을 보이는 원인도 해결해야 한다. 이식증의 원인만큼이나 그에 따른 해결 방법도 다양하지만, 이는 전문가의 영역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만약 이식증이 심하지 않다면 일단 냥이들과 열심히 놀아 주자. 비닐을 좋아하는 것도 사냥 본능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냥 놀이를 통해 안전한 장난감을 물고 뜯으며 본능이 충족되면 이식증은 해결될 수 있다. 충분히 놀고 난 후, 캣닢이나 간식으로 보상해 주면 더 좋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손톱을 물어뜯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손을 바라보니, 손톱 주위 살이 아주 엉망으로 뜯겨 있다. 나에게 보상을 주어야겠다. 맥주 한 잔 하겠다는 얘기다.


와사비의 최후. 잎만 남아 친구의 소중한 모자가 되었다. 루비를 우리 집에 데려온 그 친구이자 나중에 소개할 조카 냥이들의 집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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