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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Apr 14. 2021

마끼가 떠났다

펫로스

4냥꾼 캣브로, 열두 번째 이야기




I’ll be missing you   


마끼가 세상을 떠났다.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게 하늘로 날아갔다. 날린 사람은 없고, 세월의 바람에 실려 날아갔을 뿐이다. 잘됐다. 끝까지 착한 우리 마끼는 오빠 편하라고 그렇게 사뿐하게 세상을 떠났나 보다. 화장실도 이제 한 삽이면 다 치우고, 사료도 덜 채워도 된다. 요리할 때 괴롭히는 고양이도 없고, 족발을 먹고 뼈를 주방에 그대로 놔 두어도 헤집는 고양이가 없다. 제일 좋은 건 아침에 일어날 때이다. 알람 소리가 울려도 이제 꾹꾹이를 하지 않으니 잠도 더 잘 수 있다. 싸가지 없는 기집애. 나쁜 년. 간식도 많이 사 놨는데 다 먹고나 가지. 정말 더럽게 운수 좋은 날.


“아니야. 마끼야. 미안해. 잘되긴 뭐가 잘된 일이겠어. 늘 하던 것처럼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워 주었으면 좋겠고, 출근을 방해하던 모습도 너무 그립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현관문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노래를 부르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귀찮게 다리에 몸을 비비다 가끔 꼬리도 밟혀 주라. 마끼야,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탐해도 괜찮아. 앞으로는 그냥 못 이긴 척 하나 떨어뜨려 주면 되니까. 그루밍 잘 안 해서 매일 침대에 똥 좀 묻히면 어때. 물도 더 자주 갈아 주고, 빗질도 더 자주 해 주고, 더 많이 만져주고, 게임할 때 올라와도 귀찮아하지 않고, 술도 줄이고 맨정신에 더 많이 안아 줄게. 우리 마끼 너무 보고싶다.”


Every step I take, every move I make, every single day, every time I pray I’ll be missing you


C U when U get there


앞으로도 계속 쓸 고양이 이야기에 마끼가 등장할지 모르겠다. 마끼가 등장한다면, 무의식적으로 과거형으로 표현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과거형으로 먹고, 과거형으로 뛰고, 과거형으로 자고, 과거형으로 골골대고. 그게 싫어서 마끼가 급격히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더 열심히 많은 이야기들을 써 두려 했는데 잘 안 됐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했을 때 먹고, 뛰고, 자는 마끼의 모든 모습들이 과거형보다는 현재형으로 표현되는 글들이 더 많았으면 했는데 말이다. 이제는 변을 가리는 것도 힘겨워하는 마끼를 보며, 애써 밝고 재미난 일들을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 볼 우리 마끼. 그때는 내가 하는 말도 전부 알아듣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노래들을 들었는지도 이해할까. 다른 형제들과 같이 노래 부르며 어설프게 화음도 넣어 줄까. 간식과 캣닢이 가득한 곳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을까. 먼저 간 나리를 만나 같이 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참, 사샤도 소개해 주어야겠다. 그 사이 새로 생긴 동생들도.


끝까지 우리 고생하지 말라고 좋은 골라서 갔구나. 엄마 혼자 아픈 마끼 밥도 다 먹여 주고, 엉덩이도 닦아 주고. 오빠는 우리 마끼 이쁜 모습을 글이랑 사진으로 남기는 것 말고는 해 줄 게 없네. 잘 가, 마끼야. 나리 만나서 같이 놀고 있어.”


I'll see you when you get there. When you ever get there, See you when you get there

    

Life goes on


이제 마끼는 없지만, 여전히 4냥꾼이다. 길다면 긴 집사 인생에서 마끼를 뺀 에피소드는 아직 생각할 수가 없다. 결정했다. 앞으로도 마끼는 계속 등장할 예정이다. 가족이 떠난 걸 실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라, 깔깔 웃으며 ‘그런 사고도 쳤었지.’라고 담담하게 얘기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문장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눈물이 이렇게 짰던가. 컴퓨터였기에 망정이지 원고지였으면 악필(초등학생 글씨이다.)에 눈물 자국까지 겹쳐 영 못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애잔함이나 그리움과 같은 어떠한 슬픈 감정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마끼가 들으면 앞에서 청승 다 떨어놓고 이게 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마끼는 언제나 한없이 다정하고, 주체할 수 없는 식탐에 까불거리는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르면 또 다른 식구도 생길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여전히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누구에게나 따뜻했던 우리 마끼를 봐서라도 더 슬퍼하지 않을 작정이다.


“마끼야.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모습으로 만나도 한눈에 알아보고 뛰어와 줄 거지?”     


Rest in peace young kitty, there’s a heaven for a C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집사가 주는 간식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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