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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Oct 28. 2021

스키왕 구로 - 잔변 제로 운동

똥스키 타는 고양이

4냥꾼 캣브로, 마흔두 번째 이야기




미리 경고한다. 오늘은 좀 더러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찾아와 주신 분들께 죄송하지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다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주시길 조심스레 추천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영원한 뚱보 아가, 구로이다. 우리 구로는 뚱냥이 주제에 누구보다 날렵하게 스키를 탄다.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험난한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활주하며 멋지게 내려오는 진짜 스키가 아니라 똥스키이기 때문이다.


집사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똥스키가 무엇인지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는 변을 본 고양이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스키를 타듯이 몸을 앞으로 미는 행동을 말한다. 변비 또는 설사로 잔변이 엉덩이에 그대로 묻어 있거나 항문낭이 가득 차 불편할 때 간혹 보이는 행동이다. 보통 냥이들은 깔끔쟁이답게 혹시 변이 묻어도 그루밍을 통해 항상 엉덩이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편이다. 똥스키는 그루밍을 힘들어하는 뚱냥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뚱냥이 중에서는 제일 날씬한 우리 구로는 저 귀여운 뱃살을 가득 접고도 그루밍을 곧잘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구로는 전생에 스키 선수였는지 조금만 까슬까슬한 이불이 보이면 그렇게 똥스키를 탄다. 하필이면 왜 고양이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변비기가 있는 것은 알지만 한편으로는 괘씸하다. 그루밍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아껴 두었다가 이불에서 스키를 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타기는 또 얼마나 오지게 잘 타는지... 한번 타기 시작하면 멈추는 법이 없다. 감히 똥스키계의 폭주기관차라 할 법하다. 식당가에서는 잔반 제로 운동을 하는데, 우리 집은 잔변 제로 운동을 해야 될 판이다. 똥스키 국가대표 구로 때문에 같은 이불을 닷새 동안 매일 빨래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불 정도야 다음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구로의 만행 1. 평소에는 타지 않다가 유독 까슬까슬한 이불만 꺼내면 그렇게 스키를 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자빠져서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릴 요량으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소파에 눕기 전, 내 눈에 보인 그것, 그것은 마치 츠동이가 토해 놓은 헤어볼 같았다. 그래. 항상 사고 치는 건 츠동이지. 난 집안 곳곳에 구비된 물티슈 한 장을 무심하게 뽑아 들고 그것을 닦아냈다.


아니었다. 그것은 헤어볼의 촉감이 아니었고, 토사물의 냄새도 아니었다. 물티슈를 사이에 두고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 그것은 생찰흙처럼 부드러웠고, 토사물이라기에는 코를 찌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매일 저녁 녀석들의 화장실을 치우면서 맡는 냄새와 같았다. 츠동이의 헤어볼인 줄 알았던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고양이 똥이었다.


난 소녀처럼 비명을 질렀다. 아내가 달려왔다.


난 그것을 열심히 닦아냈지만 이미 싸구려 가죽에 스며든 깊고 진한 냄새는 빠질 줄을 몰랐다. 클라이밍으로 단련된 팔도 소용이 없었다. 팔이 빠지도록 수십 번을 닦고 홍수 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탈취제를 뿌렸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구린내는 이틀이 지나자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난 소파에 누울 수 없었다. 사람이 그렇다. 냄새는 사라졌지만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똥까지 좋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용의선상에 오른 구로와 루비


그리고 이주에 걸쳐 세 번의 똥 테러가 더 발생했다. 그렇게 평화롭던 우리 집은 범죄 현장이 되었다.


아내는 구로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다수의 똥스키 범죄 기록이 있는 점, 소파에 똥이 묻은 날에는 구로의 엉덩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구로가 확실하다고 했다. 나는 구로를 변호했다. 소파는 구로가 제일 좋아하는 빗질을 하는 장소라는 점, 변비가 심한 구로가 이렇게 설사를 했을 리 없다는 점이 근거였다.


나는 루비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테러 기간 동안 공교롭게도 루비가 간식을 많이 먹은 점, 평소에도 묽은 변을 간혹 본다는 점이 이유였다. 아내가 반박했다. 루비가 원래 먹던 간식이기 때문에 탈이 날 리 없으며,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의심일 뿐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잔뜩 겁을 먹었는지 피해자인 소파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남은 것은 현장 검거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소파에 묻었던 그것은 베란다 바닥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죽과 달리 타일은 잘 닦으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에 찬 아내의 범인 색출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베란다에서 조금의 기척만 느껴져도 아내는 바로 달려갔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온다. 아내의 끈질긴 잠복 수사 끝에 우리는 드디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역시 아내의 직감이 맞았다. 범인은 구로였다.


구로의 만행 2. 진정한 고수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 법이라 했던가? 스키왕에 이어 실금왕까지 구로는 2관왕을 얻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배가 아프니 두 번도 그럴 수 있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니까 세 번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래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집에 사는 식구면 고양이고 사람이고 간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네 번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었던 것이냐!


그렇게 우리는 소파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소파에게 너무 미안했다. 우리 집에서 소파는 언제나 가구가 아닌 소모품이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똥냥이’로 의심한 루비에게도 미안했다. 아무 죄도 없는데 괜히 간식만 금지당했다. 나는 어쩌면 구로가 아니라 루비가 범인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정말 아파서 그런 것이라면 심약한 구로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루비라면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소파를 버리기 위해 거실에 내두었다. 이 와중에 츠동이만 신났다. 아무 도움도 없이 소파 옆면을 발로 찍고 훌쩍 날아올랐다. 고양이가 나무를 잘 탄다는 건 진짜였다


소파를 바꾸고도 구로는 베란다 바닥에 몇 번 더 실수를 했다. 평소처럼 너무 잘 먹고 여전히 뚱뚱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혹시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구로의 똥 테러는 의외의 지점에서 해결되었다. 헤어볼 문제를 겪는 츠동이를 위해 사료를 바꾼 것이 원인이었다. 기존 사료의 비율을 더 높였더니 구로는 더이상 실금을 하지 않게 되었다. 역시 하이브리드의 시대이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 구로는 또 내 침대에서 스키를 탔다. 환장할 것 같다. 다음 편은 소심왕 구로이다. 이번에는 더럽지 않으니 걱정 놓으셔도 좋을 것 같다.


"안 된다. 이놈아! 침대는 몰라도 옷만큼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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