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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Nov 02. 2021

소심왕 구로 - 집에서 키우는 길냥이

소심한 고양이, 겁 많은 고양이

4냥꾼 캣브로, 마흔세 번째 이야기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고양이들과는 잘 지내지만 유독 집사만은 무서워하는 고양이들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 냥이들은 집사의 발소리만 듣고도 도망가기에 바빴으나, 집을 비우자 어슬렁거리며 나와 식사도 하고 형제 냥이들과 장난도 쳤다. 짠하기도 했지만, 녀석들이 내내 숨어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우리 구로가 떠올랐다. 밥을 먹다가도 내가 조금만 다가가면 호다닥 도망가 버리는 우리 소심왕 구로가 말이다. 그래서 구로가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아내는 나에게 숨도 쉬지 못하게 한다. 조심성 없는 성격 탓에 기어이 구로를 놀래기 때문이다. 고양이, 특히 수컷 냥이에게 충분한 수분 섭취는 보약과도 같다. 보약을 주지는 못할망정 걷어차 버려서야 되겠는가.


뚱냥이 구로는 밥 좀 적게 먹어도 될 것 같긴 한데...


형제 냥이들과 함께 구덩이에 빠졌다가 사람의 손길에 의해 구조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일까? 구로는 정말 겁이 많다. 소리에도 민감하고 조금만 동작을 크게 해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 그래도 차라리 다행이다. 집사와는 좋지만 형제 냥이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피를 볼 정도로 싸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뭐... 사실은 냥이들에게도 아주 상냥한 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른 형제들도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 같다.


이제 생각해 보니 요 소심쟁이 덕분에 벌어지는 웃픈 일들이 많다. 그나마 누워 있을 때는 배 위로 올라와 골골거리기도 하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나면 놀라서 배를 발톱으로 찍고 도망가기도 한다. 구로가 배 위에서 골골이를 하면 아내와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이좋은 부부이기 때문이다.


과격하게 똥스키를 탈 때와는 다르게 평소에는 쭈구리(?)처럼 있는 경우도 많다. 짠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구로의 매력이다.


구로의 소심함이 한창 극에 달했을 때는 속상한 일도 더러 있었다. 예민한 구로를 위해 냄새를 먼저 맡게 해 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혼을 실은 냥펀치를 맞은 것이다. 자신을 해코지하려는 줄 알고 발톱까지 세우는 탓에 손은 항상 너덜너덜했다. 상처 입은 손이야 밥 먹으면 낫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속상함에 울컥해서 “형아가 맨날 구로 예뻐해 주는데, 너는 왜 형아 마음을 몰라 줘!”라며 소리친 적도 있다. 씨알도 안 먹혔지만...


구로를 입양했을 당시, 아내는 구로가 죽을 때까지 숨어만 지내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했다. 밥도 제때 먹을 수 있고 괴롭히는 고양이도 없는 우리 집이 길거리보다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관점일 뿐이고, 구로에게는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며 지내야 하는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구로가 이제는 마음을 많이 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6년, 얼마나 감동인지 모른다.


이제 배 위에 올라와 실컷 자다가 가는 일도 많다. 가슴 위로 느껴지는 묵직함이 싫지만은 않다. 혹시라도 움직이면 도망갈까 봐 유리구슬 같은 구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다.


한편 재미있게도 이 왕소심쟁이 녀석은 다른 냥이들한테는 아주 세게 나간다. 아주 웃기는 놈이다. 강약약강의 표본을 제대로 보여 준다. 「4냥이가 펼치는 암투의 현장」 편에서 소개했듯이, 구로는 우리 집의 군기 반장이다. 말이 좋아 군기 반장이고 폭군에 가깝다. 사람만 보면 도망가던 귀여운 뚱냥이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루비가 처음 왔을 때도 기합을 엄청 잡았고, 임시 보호 차 머문 다른 냥이들에게도 하악질을 심하게 했다. 우리 집의 폭군을 제어할 수는 있는 자는 츠동이가 유일하다. 서열도 높고 힘도 센 츠동이에게는 꼼짝 못한다.


"너, 눈 왜 그렇게 떠?" 같이 놀자고 다가오는 루비에게 가끔 자비 없는 냥냥펀치를 날린다. 평소에는 순한 루비도 억울한지 물러서는 법이 없다.


구로를 보고 아내는 집에서 키우는 길냥이라고 한다. 사는 곳만 집이지 하는 짓이 길냥이와 다를 바 없다. 마끼까지 네 마리가 있던 시절, 우리 집 고양이가 세 마리밖에 없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거대한 몸으로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장인, 장모도 아직 구로를 못 봤으니 말 다 했다. 그래도 이제 잠도 가끔 내 옆에서 잔다.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아직도 내가 서서 움직이면 도망가지만, 이게 어디인가. 많이 좋아졌다.


혹시라도 우리 구로 같은 소심냥이가 있다면 절대로 강제 스킨십 같은 충격요법은 금물이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공포감을 극복한답시고 수천 명 앞에서 자기소개를 시키는 꼴이다. 그런 방식으로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졸도라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쩌면 이런 경우, 우리처럼 집에서 키우는 길고양이라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편할지도 모르겠다. 집사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말이다.


아무래도 키가 더 큰 나보다는 아내를 더 편해한다. "구로야~ 언제가 되어야 형아가 번쩍 들어서 한번 안아 볼 수 있을까?"


소심냥이는 저평가된 주식과 비슷한 것 같다. 일단 들어왔으면 ‘존버’가 답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요 녀석들이 내 품에 안기는 ‘떡상’의 그날까지, 버텨 보자. 일확천금과 같은 기쁨을 얻을 것이니.


"이제 좀 안 무섭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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