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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Oct 20. 2021

가을 타는 고양이

가을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 애교

4냥꾼 캣브로, 마흔한 번째 이야기




날씨가 쌀쌀하다. 여자는 봄, 남자는 가을이라던데 괜히 센티해져서는 책 한 권 들고 카페로 향해 본다. 샷을 추가한 진한 커피 한 잔에 아직 첫 장도 넘기지 않은 책, 그리고 재생 목록에 가득 담긴 나의 노래들. 이 계절에 일상의 작은 행복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이상하게 가을은 외롭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 싫지 않다... 뭔가 즐기게 된달까...? 훗, 나란 남자.


우리가 캠퍼스 커플이 되기 전, 아내는 존재란 필연적으로 외롭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워 술을 마시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고 한다. 아내는 이를 우주적 외로움이라고 명명했다.


고양이도 추위를 탄다. 이제는 꽤 스산한 밤, 침대에 누우면 이 작은 털복숭이 녀석들이 모두 내 곁으로 오기 시작한다. 늘 아내와 함께 자는 츠동이와 시원한 베란다를 제일 좋아하는 구로까지 말이다. 여름에도 항상 품을 파고들던 루비는 이제 두더지처럼 거칠게 이불을 파고 들어와 안아 달라고 칭얼댄다.


항상 내 종아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골골거리며 잠에 들던 마끼가 유독 보고 싶은 밤이다. 그러고 보니 한두 달 전 술에 취해 혼자 마끼의 사진과 영상을 보다가 목 놓아 울어 버린 게 기억난다. 아내가 봤다면 마끼가 꼬마 유령이 되어 밤마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꿈을 꾸었다며 울지 말라고 했을 게 뻔하다. 퉁퉁 부은 눈 덕분에 다음날 직장 동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었다. 가끔 대성통곡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꼭 닫아 놓은 창으로도 바람은 들어온다. 발이 시려 조그만 난로를 켜면, 어느새 녀석들이 훈기를 찾아 몰려든다. 덕분에 내 발은 여전히 시리다. 너네는 털옷도 입었잖아...

   

가을이 오면, 어딘가를 걷고 싶다. 아끼던 옷을 멋지게 차려 입고,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 아니면 고뇌하는 예술가들이나 걸을 만한 그런 장소들을 걷고 싶다. 초점조차 제대로 못 맞추는 똥손으로 한껏 멋을 부리며 셀카를 찍고 싶다.


가을이 오면,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떠오른다. 이른 저녁 대학로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아무 연극이나 한 편 보고 싶다. 연극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세상이라는 무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을이 오면,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하고 싶다.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 안 중심이 맞지 않아 덜그럭거리는 원탁에 둘러앉아, 이제는 모두 사회인이 되어 버린 철학과 학우들과 허접한 계란말이 안주에 소주를 들이키며 우주를 논하고 싶다.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 야속한 고양이들. 엉덩이로 밀어 내야 그제야 불만 가득한 ‘야옹’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가을은 고양이도 타는가 보다. 요새 부쩍 애교가 많아졌다. 루비는 말할 것도 없고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츠동이마저 집으로 돌아오면 날 보고는 발라당 누워 몸을 뒤집는다. 겁쟁이 구로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누워 있던 나의 옷 안으로 큰 머리를 집어넣고 자기 냄새를 마구 묻혔다. 카페에서의 독서만큼이나 행복한 순간이다. 요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들.


추운 건 질색인데 올해는 너무 빨리 겨울이 오는 것 같다. 이렇게 소중한 내 가을 다 어디 갔나. 빼앗아 가는 사람이라도 알면 덜 억울하겠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 할 때 내 가을을 어서 돌려주시길. 그나마 하나는 다행이다. 침대에 누워 손만 뻗으면 살이 두둑하게 오른 녀석들의 엉덩이를 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녀석들 덕분에 올해는 겨울을 따뜻하게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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