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화 방지 매트를 깐 베란다. 우리 집 단골 진상 루비가 또 나를 괴롭힐 궁리를 하고 있다.
고양이는 원래 사막에서 살다가 세계 곳곳으로 퍼진 것이라던데, 틀림없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짝반짝 깨끗이 청소를 했음에도 뒤돌아보면 발견되는 모래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모래를 뿌려 놓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녀석들은 그저 DNA에 각인된 먼 옛날 야생의 기억이 그리워 저도 모르게 모래를 흩뿌리고 있을 뿐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러고도 남는 녀석들이다. 그래. 덤벼라. 해 보자.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 나는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는 남자이니까.
매트를 깔기 전 화장실 앞 떨어진 수많은 모래들. 조금 더 쌓이면 모래를 밟고 미끄러지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털뿜뿜을 시각적 테러라고 한다면, 사막화는 발을 사정없이 공격하는 촉각적 테러에 가깝다. 발에 까슬한 모래들이 달라붙으면 떼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나마 뗄 수 있으면 다행이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내 발 덕분에 수분을 가득 머금은 모이스처 탱탱 모래알들이 바닥에 짓이겨지기라도 하면 아내는 깔깔 웃으며 잔소리를 시작한다. 그때는 발도 닦고, 바닥도 닦아야 한다. 이제는 그저 도를 닦는 거라 여기며 묵묵히 아내의 지시를 수행한다.
“인간적으로 모래 묻히고 책상 위로는 올라오지 말자, 루비야.”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만 놀고 오면, 왜 아빠가 현관에서 나를 번쩍 들어 바로 화장실로 옮겨 주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바닥에 이 불경한 것들이 보이면 손수 주워서 버려야만 한다. 털과 달리 모래알은 무거워서 미니 청소기로 빨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허리가 낫지 않는 까닭은 고작 이 작은 모래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깔았다! 사막화 방지 매트! 역시 이번에도 아내의 아이디어이다. 실제로 깔아 보니 아주 기특한 녀석이다. 건방진 냥이 녀석들이 혹시라도 발에 모래를 묻히고 나와도, 매트 위를 걷는 과정에서 모래가 떨어지게 된다. 떨어진 모래는 매트에 숭숭 뚫린 구멍들 사이로 빠지게 되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매트를 들어내고 청소기만 돌려주면 될 일이다. 매트 위에 토를 하면 어떻게 치울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자.
작업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설치할 공간에 맞추어 길이를 재고 그대로 잘라 바닥에 살포시 깔아 주기만 하면 된다.
사막화 방지 매트를 깔고 보니, 본래 목적은 아니지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요즘 같이 추운 날, 베란다를 맨발로 나가도 발이 덜 시리다는 점이다. 아내는 내가 남자치고 굉장히 손과 발이 차다고 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온 내 발이 몸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럽다. 매트 덕분에 그나마 ‘따뜻한’ 남편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족냉증에는 역시 사막화 방지 매트! 바닥에 깔고 남은 매트는 화장실 옥상에 올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