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한 풀 꺾여 간다. 여름에 태어나서일까. 난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추위에도 약하다. 그런 내가 느끼기에도 유독 이번 겨울은 따뜻했다. '얼죽코'라는 같잖은 신념을 유지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몇 주 전인가 서울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을 때이다. 하던 업무를 얼추 끝내고 담배나 한 대 피우러 옥상 흡연실로 향했다.
평소와 같이 담배를 꺼내던 손이 멈칫했다. 도화지처럼 하얀 바닥, 갈팡질팡 어지러운 발자국들 가운데 누군가 크게 새겨 놓은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집. 갈. 래.
세상에나. '집 가고 싶다.'도 아니고 '집에 갈 거야.'도 아닌 '집 갈래.'라니. 이는 단순한 희망 또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다. 차라리 곧 마주할 미래인 동시에 아득한 어제에 대한 회상에 가까웠다.
가슴이 아려왔다. 숨이 턱 막혔다. 순간 목숨 같은 담배 한 개비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야말로 대한민국 직장인의 하이쿠(haiku). 수많은 계획안과 지출 결의로는 담을 수 없었던 우리의 진짜 계획이자결의 그 자체. 을지로 높은 건물 옥상, 한 무명의 시인이 새겼다가 이내 눈이 덮어 버린 이 단 세 글자는 이천만 직장인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나 또한 직장인.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을 그 또는 그녀에게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용기를 내어 감히 댓글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