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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Feb 01. 2022

아내의 충수염

헛개잡상인, #4

아내가 충수염으로 입원했을 때이다. 흔히 맹장염으로 알고 있는 병이다. 급히 연차를 내고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도 염증이 터지지 않았고, 수술도 무리 없을 거란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예정에 없던 조기 퇴근 때문이었을까. 발걸음이 가벼웠다. 난 아주 나쁜 새끼다.


입원 2일 차인 것으로 기억한다.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가 되어서야 눈을 붙인 것 같다. 2시간이나 잤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혈압 체크 식사 배급으로 병동이 시끌벅적했다. 강제 기상을 했다. 뜬금없이 훈련병 시절이 떠올랐다.


한 차례 소동이 지나가고 아내는 누워 있는 나에게 환자복이 너무 크 좀 더 작은 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링거와 진통제, 피통과 연결된 복잡한 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환복 여간 쉽지 않았다. 옷은 입었으나 소매 바깥으로 나가야 할 줄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려 결국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해결해야 했다.


환복을 겨우 마쳤다. 아내는 토라진 목소리로 '이제 오지 마.'라고 했다. 난 왜인지 묻지 않았다.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으니까. 잠을 못 자 예민해진 탓일까 나도 모르게 미간을 가득 구기고 있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줄을 그렇게 달고 굳이 옷을 갈아입었어야 했냐는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는지도 모른다.


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아내를 보며 씩 웃었다. 허리 디스크가 터져 2개월 병신으로 지내는 동안 날 씻겨 주고 먹여 주던 아내, 우리 엄마의 간병을 혼자 했던 아내의 노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옷 하나 갈아입는 거에 인상을 구겼다. 나쁜 놈의 새끼.


가뜩이나 도끼 데다가, 마스크 탓에 그 눈이 찌푸려지는 것만 보였으니 서운했을 것이다. 서른이 넘으니 오른쪽만 있던 보조개가 왼쪽에도 생겼다.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겸연쩍게 씩 웃은 이유다. 아내는 내가 웃는 모습을 좋아다. 눈만 보면 사이코패스 살인마인데 어울리지 않게 보조개가 파여 그나마 봐 줄만 하다고 했다.


아내는 며칠 후 건강하게 퇴원했다. 자기 손톱 밑에 들어온 작은 가시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사람이라던데, 난 얼마나 같이 아파했을까.


다음에 또 아프게 되면 그때는 더 상냥하게 돌봐 줄게. 그래도 웬만하면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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