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신병인가 했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볼때면가끔 위화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거울 속의 이놈이 진짜 내가 맞나. 내가 손을 올리면 이놈도 올리고, 얼굴을 찡그리면 똑같이 찡그리긴 하는데, 이게 진짜 내가 맞나.진짜로 맞나.
위화감으로 시작된 이 느낌은 이내 의심으로커진다. 이 사람들 틈에 내가 섞여 같이 살아가고 있는게현실일까. 사실은 가족과 친구, 내가 속한 사회의 시스템마저도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세계 아닐까. 이렇게 형편없는 나와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눌 리가 없는데.그렇다면 지금 의심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데카르트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세계는 그대로이고 어쩌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야 이 위화감과 이질감이 설명된다. 혹시 나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일부는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몇 개의 코드로 이루어져 있을까.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현실감이 점점 사라져 간다.
의심은 이제 공포감이 된다. 잠시 고개를 숙이면 거울 속의 놈이 그대로 나를 응시한 채 비웃고 있을 것 같다. 재빨리 고개를 처올려 놈이 방심한 틈을 잡으려 해 보지만 놈은 여전히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 이 장난질을 하는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디테일까지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거울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들이밀고 이놈의 면상을 찬찬히 뜯어본다.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갈색에 가까운 눈동자와 어느새 미간 사이에 자리 잡은 주름이 보인다.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이 맞다.
잠깐, 생각해 보니 나는 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나 자신을 봤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놈이 나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지?위화감은 좀체 사그라들질 않는다.
여전히 모르겠다. 답도 없지만 현재로서는 심각하지도 않은 문제다. 보통 이럴 땐 고양이 배나 만지면서 자빠져 있다 보면 다시 현실 감각이 돌아오곤 하던데.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