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썩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니다.
얼마 전, 덕수궁 앞에서 아침부터 시위가 있었다. 3호선 종로3가역에서 의문의 연기가 났던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심지어 비가 오는 출근길이었다.
아침에 광화문 근처에서 시위가 있는지 몰랐던 터라 당연히 평소처럼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한참을 헤드뱅잉 하며 꿀잠을 자다 눈을 딱 떴는데, 밖에 독립문이 보였다. 이 시간에 서대문이라면 벌써 지각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팀장님께 연락을 드려야 하나? 빨리 가면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결국 팀장님께 카톡을 했다. 버스 안에서는 회사에 연락하는 전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같은 회사는 아니어도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에 괜히 안심되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각을 해 본 건 처음이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는데 마음이 답답해지고, 귀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데도 들리지가 않았다. 불안감 때문인가? 이런 기분이 싫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뛰는 것도 싫어해서 늘 일찍 다니는 편인데… 시위 일정을 미리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내 불찰이다. 광화문 근처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제 경찰청 오늘의 시위에서 전 날 밤에 다음 날 시위가 있는지 찾아보고 자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다행히 팀장님도 천천히 오라고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고 회사에 도착해서도 정말 평온한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나만 괜히 눈치 보일 뿐. 상습적 지각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지각하는 경우는 다들 아무 생각 안 하시는 모양이다.
옛날 같았으면 하루종일 내가 지각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안 좋았을 것 같은데 나도 성격이 많이 무뎌졌다. 지각이 확정된 그 순간에만 마음이 불편했지, 뭐 그다음부턴 그러려니 해졌다. 그래도 지각은 싫다. 부탁이나 아쉬운 말(?)을 하는 게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이제는 시위 소식도 철저히 확인하고 남은 기간 동안은 지각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내 직장 생활 첫 지각의 소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