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 복지다
나는 28살에 아들을 출산했다. 요즘 시대치고는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은셈이다. 그리고 회사를 일본에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막연히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했는데, 이런저런 사연이 있어 조금은 늦게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버렸다. 아들은 7살이 되었고, 나는 7년을 쉬어버린 경단녀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내 판단으로 아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고, 워킹맘들이 두 번째로 많이 관두게 된다는 초등학교 1학년이 코 앞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있고, 더 이상 취업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구인 어플을 샅샅이 뒤져 워킹맘이 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대의 일자리를 찾아냈다. 몇 군데에 지원을 했지만, 지금 일 하고 있는 이곳이 시간대는 가장 베스트였기 때문에 떨어진 직장들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면접을 보러 간 날은 날이 참 좋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여름이라 조금 덥긴 했지만 청량하고 맑은 하늘과 파릇파릇한 나무들, 그리고 그런 자연들 사이에 멋진 건물들과 사원증을 목에 걸고 위풍당당 걸어 다니는 직장인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 나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고, 비록 계약직이지만 7년이란 시간 동안 일을 하지 않았기에 책임감이 막중한 일보다는 이 정도의 업무 강도가 딱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2022.07.19 (화) 나는 첫 출근을 했다.
여름이 지나가고 출근길에 살랑 사랑 가을바람이 불던 무렵, 나는 꼭 출근을 이 청계천 산책로로 했다. 원래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꼭 걸어서 출근을 한다. 그건 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청계천이 최고의 복지다. 다들 처음에만 그런 거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청계천이 좋다. 걷고 있노라면 백로도 만나고 물고기도 만나고 오리도 만나고 수많은 벌레들도 만난다... 아들과 함께 손잡고 와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겨울에 한번 오긴 했지만 추워서 제대로 구경도 못해서 아쉬웠다. 남은 1년 동안 더 많이 눈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동안 내 삶은 꽤 많이 바뀐 것도 같다. 가장 먼저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일 때에는 오히려 더 아무거나 먹고, 영양제도 잘 안 챙겨 먹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면 일도 육아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홍삼에 비타민에 밥도 잘 챙겨 먹는다.
그리고 처음엔 엄마 일하지 말라고 바짓가랑이 붙잡으며 울던 우리 아들이 잘 적응해 양가 할머니들 하고도 잘 있고, 학원들도 잘 적응해 재밌게 다녀주고 있다. 그리고 인복 좋기로 유명한 나는, 감사하게도 좋은 이웃 언니들을 만나 품앗이로 아이를 키워 나가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또 시댁은 가까워서 자주 봤는데, 조금은 거리가 있는 우리 엄마는 오히려 매주 두 번씩 만나니 건강도 더 들여다보게 되고, 잘 챙겨 드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다들 친정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하시지만, 엄마는 손자와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더 크기 전에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그게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아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았다.
이제 계약만료까지 딱 1년이 남았다. 1년 뒤라면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큰 걱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된 직장을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 이직을 위해 화상영어도 시작했고, 또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마치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다.
앞으로 남은 1년, 더욱더 갓생을 살아 볼 예정이다. 오늘은 필라테스도 등록하고 왔다. 사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도 다리가 너무 아프다. 내일 걸어서 출근이 가능할지 의문스럽지만 K-직장인이니 어떻게든 또 출근을 하겠지.
1년 동안 재밌는 일도, 좋은 동료들도 많이 만났다. 이곳에서의 남은 직장 생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지내고 싶다! K-직장인 그리고 워킹맘 모두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