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

냉장고에게 느끼는 전우애

by 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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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냉장고에 볼을 대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덜덜. 그 옛날의 냉장고는 미세한 진동이 있었다.

시원한 냉장고에 '촌병'이라 불리던 빨간 볼, 볼을 한 번씩 가져다 대고 있으면 금방 볼이 차가워졌다.


냉장고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소리 내는 가전이 아니라 소리가 들리면 고장을 의심하게 되는 당연한 수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웃기지만, 나는 뜬 눈으로 냉장고와 밤을 보낼 때가 잦다. 내 방의 입구에는 냉장고가 있고, 내 방은 고양이들을 위해 방문을 닫지 않고 잔다. 고양이도 오고가고, 잠들지 않는 가전 - 냉장고도 나와 밤을 자주 보낸다.


어제 밤은 오랜만에 책상 정리를 하는 바람에, 자기 전에 먹는 약을 잃어버렸다. 생경한 밤이 찾아왔다. 약 없이 잠을 청할 땐, 정말로 겸손한 자세로 청하고 있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금방 달아나는 그 잠은, 소리와는 척을 졌을 것이다.


청해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다보면 나는 수동적인 자세가 되어서는, 들어오는 것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소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조그마한 빛' 그 정도다. 조금이라도 뒤척여서 그 세계가 자칫 넓어지면 그날은 잠과의 대면이 불가해지므로, 나는 반드시 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숨쉬기. 두 개인 것이 민망한 코의 구멍에서는 늘상 그랬듯이 숨이 오고 가는데, 생명이 오가는 길이 두 개. 두 개다. 가녀리게 내어놓는 숨은 두 갈래로 쉬어 내어놓아야 한다. 코로 바람을 불면, 배로 풀피리를 불면. 잠이 멀어지고 밤은 선명해져서 비슷한 처지의 냉장고에게 마음이 간다.


하루종일 냉대하기 위해 얼마나 오래도록 참고 있었을까.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차가움을 유지하는 게, 하루종일 있어도 있는 취급을 받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고역 중에 고역이다. 덜덜거리는 표면에 가져다 대보면 알았다. 가만 있다못해 경직되면, 미세하게 몸이 떨리는 것이다.


체온은 조금 낮게 유지해야 잠이 잘 든다. 잠을 청하기 위한 나의 자세는 베개에 체온이 묻지 않은 곳을 찾아 볼을 가져다 대어보며...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고역을 참고 고작 숨을 쉬는 정도의 덜덜거림. 깊은 밤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청하는 자세가 아무리 낮아도 낯뜨겁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런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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