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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Mar 20. 2024

불면증에는 고양이가 좋다.

사람에겐 고양이가 좋아요.

간밤에는 지구에 혼자 남은 또 다른 집사님의 글을 봤다. 그분의 고양이는 고양이별로 떠나갔고, 이미 듣지 못하게 된 고양이에게 해주고픈 말이 많으신 것 같았다.


해주고픈 말은 장황하게 써 내려갔을지언정 뜻은 분명했다.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제는 약을 먹고도 한참 잠들지 못했다. 발치에 누워있는 유자를 보며, 내가 어느 순간부터 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는지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작고 맹하지만 용기 있는 아기 유자가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였다.


케이지에서 처음 내 방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새로운 세상에 용감하게 나아가는 어린 생명을 보았었다. 솜이의 하악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을 구경할 때,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보기도 했었다. 그리곤 보호자를 자처하는 내가 밤마다 약한 모습을 보일 때면 피곤해죽겠다는 얼굴로 잠 못 이루는 나를 쳐다보았다.


성인이 되고서부턴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점점 지연되었었다. 재촉하듯 잠에 들어야 했고, 누운 채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잠들지 못하고 있는 무섭고. 다가오고 있는 내일의 압박은 커져만 갔었다. 그런데 유자가 내 삶에 함께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어차피 잠이 들지 않을 거라면 야밤이라도 공을 가지고 노는 유자처럼 즐겁게 있고 싶었다.


밤이 깊어가도 마음 편히 있으면 내일의 피로를 떠나 지금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이 들지 않을 때면 유자를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걸 아는 것처럼, 고롱거리는 숨소리와 자그마한 소리에도 파닥거리는 날개 같은 귀. 이따금씩 유자가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걸쭉한 코골이까지 더해져 종합예술이 펼쳐진다.


눈을 뜨고 자고 있다. 종합예술의 현장.


어젯밤도 평소와 비슷했는데, 어제는 그런 글을 봐서인지 나도 유자한테 사랑한다고 말을 해줘야겠다 싶었다. 평소에도 종종 말을 하긴 하는데 잠든 유자를 보니 하고픈 말이 많아졌다.

'유자야, 유자가 있어서 누나는 정말 많이 행복해. 유자를 많이 사랑해. 누나랑 10년만 더 같이 살자.'


말이 끝나자, 유자는 소곤거리는 소리에 깬 건지는 몰라도 눈을 떠서는 끔뻑, 끔뻑... 눈인사를 해줬다. 끔뻑이는 유자 눈을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나는 한참을 울다 아주 늦은 시간에야 잠이 들었다. 내가 유자의 보호자라고 생각했는데, 유자처럼 나에게 무결한 사랑을 준 존재가 있을까 싶었다.


사랑을 말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은 샘솟지만, 고이지 않는다면 순간의 희열일 뿐이다. 고이고 그 자리에서 일렁이다 한 방울의 감정이 더 부어지는 순간, 마중물에 더해져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태 말하지 못했던 사랑 한단 말, 유자가 있어서 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는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속사정에는 깊은 밤을 허우적거리다 잠들지 못한 시간 역시 무언갈 할 수 있다고 알려준 유자가 있다. 깨어있는 사람이 없는 적막한 시간은 사랑을 말할 수 있고 사랑이 직선으로 전해지는 시간이라고 알려준 유자가 있다.


그래서 이젠 잠이 들길 기다리는 시간이 편안하다. 노란 불빛의 전구와, 나의 누런 고양이. 창 밖의 검은 하늘, 불이 꺼진 맞은편 집들. 아늑한 밤에 젖어 잠들기 싫은 밤이 종종 생겨난다.



보통은 엄마랑 같이 자는 귀여운 솜이. 가끔 내 방에 와서 잘 때도 있다. 언제나 귀여워.


그럼 고양이들의 근황을 독자님들께 전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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