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방향
좋아하는 것을 잊으면 방황, 기억하면 방향.
작가교육원을 등록했다. 상담 교수님께서는 어떤 결심 없이 '그냥' 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앉아있는 것 만으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해야 하는 것 말고, 정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석했다. 매주 돌아오는 수업 시간이 즐거웠다. 예전처럼 내 삶을 전부 걸었다는 부담감도 없었고, 이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거면 어쩌나 하는 소모 감도 없었다. 시험을 준비하면 내가 들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 제일 무서워진다. 불합격이란 1년을 날렸다는 의미와 1년을 또 이렇게 저당 잡을 것인가의 고민으로 수험생을 내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글과 관련된 공부를 했다. 혼자 쓰는 일기 같은 글 말고 어떤 이야기를 쓰는 수업이란 것이, 내가 그 속에 일원이 된 것만으로도 즐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업 구성원으로는 보조작가, 제작사 직원, 뮤지컬 작가, 변호사 등 작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여러 직군들이 모여 있었다. 첫 수업에서 나를 소개하는데, 나만 무직이었다. 무직, 백수, 취업준비,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사회적 위치. 하고 싶은 일에 발을 담근 직후라 그런지 부끄럽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내서 경험해보려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은 커리큘럼의 반절 정도는 이론을, 나머지 반은 대본을 써보고 서로 피드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순번 중 적당히 중간쯤에 발표를 하게 된 나는 이렇다 할 창작된 이야기를 완성해본 경험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잘 풀어낼 수 있는지 몰랐다. 내가 써둔 이야기들은 구절이 이어진 누군가의 시절, 끝이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내 이야길 하지 못해 고통에 끝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는 법도, 끝내는 법도 몰랐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수강 중인 과정 이름이 기초반인 것처럼. 내가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딱 두 개였다. 슬픔과 불안이 그것들이다. 길가다 앉은뱅이 나무를 보면 나무에게도 자리가 있는데, 내게만 자리가 없는 것 같아 슬펐다. 둘러볼수록 힘든 삶이 보였다. 생이란 것은 왜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지나가는 노인의 수레는 왜 무거워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해바라기는 왜 목이 꺾여서야 사람과 눈을 맞출 수 있는지 슬픈 일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취업을 향해 노력하는 나의 처지는 더 슬펐다. 내가 보는 책과 힘들게 푼 문제의 지문은 와닿는 것이 없어 껍데기뿐이었다. 다소 쳐져있는 감정 두 가지로 가득한 나에게 논리와 이성은 위로가 될 수 없었던 걸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같은 길을 계속 가야만 했다. 그렇게 악순환은 끊어지는 법을 모른 채 내게 길을 제시했다. 안정적인 월급과 정년까지 9시에서 6시까지 일을 하는 경직된 곳으로 가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교수님은 조금 다른 이야길 해주셨다. 나의 세상에는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성과 감동이 필요한 곳이라고 하셨다. 나무를 보며 슬퍼하는 것도, 파란 하늘을 보면 눈물이 차오르는 것도 슬픔으로만 쓰인 감정은 아닐 거라고. 그간 쫓아온 명예와 부유함 같은 세속적인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에 취업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려보니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거라는 것 외에는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내 행복은 없어 보였다.
나는 조금 더 솔직해져야 했다. 어떤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더라도 그 골목 구석에 핀 민들레 하나를 본다면 길 잃은 허탈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 본심이었다.
"남들이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라해도 누군가의 삶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내 방황이 더 이상의 헛수고가 아니고, 방향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길 찾은 나는 거침없이 내 이야기를 뱉었다. 이름 모를 작은 꽃에게서 받는 위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을 보며 시간이 지나간다는 안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수업에 참석만 했는데도 느껴지는 충실감, 그 충실감에서 오는 무한의 시간 속 짧은 행복. 말해보고 싶은 감정이 많아졌다. 깊은 우울 속에 잠식된 내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었다. 슬픔과 불안 외의 감정을 하나씩 경험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작은 사람이라 나를 채우는 것이 쉬웠다. 더 이상 무언갈 해내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됐고, 걷다가 멈춰 선 채 햇살에 몸을 말리는 새의 사진을 찍는 내가 좋았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까지 딱 30년이 걸렸다. 남들이 좋아하는 걸 내 것인 양 너무 오래 살았다. 행복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 도처에서 그 슬픈 눈을 거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고서. 울면서 길을 헤맨 줄로만 알았는데 그 속에서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을 것들을 부지런히도 남겨뒀다. 좋아하는 것을 잊고 그대로 살기 바쁘다면 그건 방황,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서 갈 수 있다면 그건 방향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몇 없지만 아파트 화단에 꽃을 보기 위해 들어가 있던 시간은 남아있다. 파랗고 작은 꽃을 유독 좋아했다. 고사리 같은 내 손 보다도 더 작은 그 꽃을 너무나 아꼈다. 30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그 꽃의 이름은 '꽃마리'란다. "나의 행복, 나를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