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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Sep 21. 2022

무엇이 되지 않을 나에게

저의 꿈은 쓰이는 사람, 쓰는 사람, 짓는 사람, 뭐가 좋을까요?

가장 오래된 직업은 작가일 것이다. 틀림없다. 말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도, 말이 없는 시대에도 작가는 있었다. 그리고 여기, 무엇을 짓는지 모르는 작가가 있었다. 그게 바로 나다.

언제부터 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묻는다면, 추측하기로는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던 계단 위에서 부터였다. 환상이었을까. 밤하늘 별이 하나 보였고, 그걸 보면서 쓰는 삶은 커녕 책을 쓴 사람이라곤 꿈도 꿔보지 않은 어린 내가 말했다.

"언젠가 인세를 받아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때만 해도 나는 제법 국어와 영어에 자신 있는 학생이었다. 단어와 낱말이 생소할 때마다 신선함을 느꼈다. 퍼즐을 맞추듯 알아내 온 단어를 문장에 넣어 완성하면, 어떤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줄지어 나열하면 어떤 사람의 주장과 멋진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어, 영어, 제2외국어, 한자 같은 과목을 좋아했다. 이와 무관하게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왜 그때의 나는 전에 없던 그런 말을 뱉었을까.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길을 잃지 말라는 계시였을 지도 모른다. 18살의 내가 공부하다 지친 내게 10년 후의 내가 되어 쓴 편지에도 그런 구절이 있다. 돌아와도 되니까 포기하지 말아 달란 인사를 했다. 그건 내가 겪게 될 모든 시간이 쓰이기 위해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니, 소중하게 여겨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사는 영화 속 대사 같았다. '여기서부턴 혼자 가야 해.'라고 말하는 조력자와 혼자 남겨진 주인공이 나오는 씬처럼. 지독하리 만큼 혼자 어둠 속에서 앓아가며, 울지 못할 만큼 맹렬하고 잔인하기까지 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믿던 20대를 맞으리란 예고편. 마땅히 그래야 할 나이에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어디에서도 나를 소개할 수 없었다.

무직, 취업이 꿈이고요. 지금은 그래서 취업을 준비 중이에요. 너무 많은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상해 보일 것이 없어 안도했다. 하지만 취업을 하여 그것이 곧 나를 나타내는 것이 싫었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꿈을 인정하지 못했다. 꿈이 잘못되었다. 외교관도 아니었고, 직장인도 아니었다. 질문을 바꿔야 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말고, 무얼 하고 싶은지.

그러자 답이 나왔다.

"저는 쓰는 사람이싶어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외교관이 되었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을 갔다가, 사람들을 도와주고 내가 나이 들고난 저 먼 미래에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 말하기 부끄러워 먼저 내놓을 수도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 쓰는 것이란 내게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쓰는 사람으로 있고 싶었지만, 쓴 것을 펼쳐 보일 수 없어 그렇게나 공모전에 기대었다. 나름, 이 사회에서 쓰일 만한, 그리고 변변찮은 나의 이런 마음도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걸 짓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수험생활을 하며 김밥 한 줄도 다 못 먹던 그때는 정말로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몸이 밥을 거부했다. 그래서 잊지 말고 밥을 지으면 조금이라도 더 나를 챙기는 것이 되니까, 밥 짓듯 글을 짓고 싶었다. 따뜻한 밥과 내 바닥을 훑어주는 글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쌀알이 물에 퍼지듯 하루가 다 지나고 내가 지치면, 따뜻한 밥을 입에 밀어 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뱉듯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런데 부산으로 내려오니 잘 챙겨 먹게 된 것이다. 따뜻한 밥은 엄마가 챙겨주었다. 그건 뜨겁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추웠던 기억만 더 역류해서 올라왔다. 몸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 대인기피증 같은 것들이 토사물처럼 흥건했다.

"제가 작가교육원에서 수강하는 것이 맞을까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대면 수업이 되면 서울에 가야 한다는 것... 정도요."
"잘 됐네요. 그 부분만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코로나가 심하니까 계속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정윤 씨는 어떤 작가가 되려 하는 것인지 정체성을 찾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럼 좀 더 자신이 생기고, 길도 보이겠죠."

"맞아요, 교수님. 광고사에 있을 땐, 영상 작가로 실무를 겪어봤는데 저는 정작 종이책만 주야장천 읽었어요. 뭘 더 잘할 수 있는지, 뭘 더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기간만큼만 일했으니까."

그래서 광고사에서 일하며 모아놓은 돈으로 한국드라마작가교육원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쓰는 사람이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들뜬 발걸음으로 첫발을 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은 나는 모든 걸 잃은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던 때, 신께서 코스모스를 제일 먼저 만드시고는 마지막으로 하얀 국화를 만들었다는 일화 사이엔 아무래도 무언가 많이 빠졌다. 세상에 많은 꽃이 피어나겠지만 피어난 시간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란 말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신께선 분명 그다음의 이야길 하셨을 것이다.

코스모스에게 세찬 바람이 불어와 꽃잎이 나부껴 모조리 떨어지고 여린 본연만이 남았을 때, 비로소 밤하늘이 부럽지 않은 이 땅 위의 별이 될 거라고. 그래서 너를 두고 수많은 사연의 별을 품은 우주(cosmos)라고 부르게 될 거라고. 꽃잎이 다 떨어진 이후 찾아올 밤은 다시금 네가 꿈꿀 수 있는 시간이니,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가 곧 온전히 너의 것이며 그 위를 밝힐 꿈을 그려보라는 말이 빠졌다.

환상 같던 그 기억, 어두운 밤에도 빛을 잃지 않을 때 꿈이 된다. 환상은 부서져도 흩뿌려진 파편처럼 남아 빛이 난다. 환상은 황홀한 법이니까. 그래서 기억에 남아있는 강렬한 환상은 이정표가 된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내게 다시 묻는다면, 질문을 바꾸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나는 깊은 밤에도 잊지 않을 꿈을 좇겠다고. 그럼 나는 무엇이 되지 않고도,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럼에도 '무엇'이 되고 싶은 나를 위해 흘러가는 세월 위로 끊어지지 않는 그림을 수놓는다. 지난번 그날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그 꿈을 향해 닿아갈 나를 오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먼 훗날 돌아보면 은하수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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