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윤슬
토요일과 일요일, 우리는 무려 32번의 로스팅을 했습니다.
새벽까지 쪼그려 앉아 불을 조절하며 콩을 볶던 리보는 거의 탈진한 모습이었어요.
소상공인의 삶이란 자본이 적으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제 마음도 참 따뜻해졌습니다.
이토록 힘을 다한 로스팅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30주년) 게스트 케이터링에 차리보 커피가 함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이 잠시 쉬는 곳에 우리의 커피가 놓인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리보는 특별한 행사가 있어도 평소처럼 마음과 정성을 다합니다.
더 긴장하지도, 더 요란하지도 않지요.
그저 한 잔 한 잔을 늘 그렇듯 묵묵히 내릴 뿐입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 커피를 드립으로 내려 보온병에 담겨 남포동 비프광장으로 향합니다.
글을 쓰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넘게 드립을 내리고 보온병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윤슬, 가득한집에서 출발해 영화제가 열리는 거리로 향했습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달리다 보니 브런치 연재일을 잊을 뻔했네요.
하지만 나와 공간과의 약속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케이터링 장소에서 반가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커피가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맛있다고 몇 번을 리필해 드셨어요.”
순간, 제 마음이 환히 밝아졌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들은 리보는
“오… 다행이네요.” 하고는 다시 묵묵히 다음 손님을 맞았습니다.
요동치지 않는 그의 마음이 신기하고도 고마웠습니다.
이른 아침의 골목은 생각보다 일터로 향하는 인파가 꽤 있었습니다.
리보와 저는 따뜻한 커피를 내리며 새로운 기획을 함께 꿈꾸었습니다.
매월 첫날, 골목을 지나는 이들에게 응원의 커피를 선물하자! (아직은 비밀이지만,
우리의 작은 상상이 곧 한 잔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이틀의 일정이 더 남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바랄 뿐입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우리의 정성과 기도가 마시는 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향기가 오래 남아, “부산국제영화제 30주년에 마셨던 그 커피”를 오래 기억해 주시기를.☕️
오늘도 윤슬, 가득한집은
한 잔의 커피로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