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으로 기록될 수 없는 유명 피아니스트의 진가眞價

요헨 쾰러,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완전함을 찾아서”

by yoonshun

원작

Jochen Köhler,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Auf der Suche nach dem Vollkommenen”, Duits, 2020.


1950년 이전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기에 전성기를 보냈던 피아니스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관점이 필요하다. 이전 시대까지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주 초기 단계였던 ‘녹음 기술’의 영향력이 연주 활동의 한복판에 자리잡기 시작한 첫 세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같은 수식어로 설명되는 연주자라면 ‘초창기의 음반 업계에 긴밀히 관여헸을 것이라 추측해도 대체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1920-1995)는 바로 이 세대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음반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연주자의 전성기에는 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해당 연주의 생생함을 후세에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음반’이 특정 ‘기업’에서 ‘기획’된 ‘상품’으로 ‘마케팅’ 과정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품목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당 음반에 수록된 ‘연주자’가 어떤 경로로, 또는 어떤 이유로 해당 작품들을 선택하고 녹음하게 됐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일반 ‘소비자’들이 구체적으로 알 길은 거의 없는 편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유럽 여러 지역에서 연주자 겸 연구자로 활동의 폭을 넓혀 온 요한 쾰러(Jochen Köhler, 1959-)는 미켈란젤리 생전의 행적들을 추적하기 위해 관련 인물들과 기관들을 상대로 한 취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권의 책을 구성했다. 이 책에서는 미켈란젤리의 오랜 학생이었던 베른트 괴츠케(Bernd Goetzke, 1951-)가 증언하는 선생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비롯해, 레코딩 현장에서 그와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 함부르크의 스타인웨이 공장 대표를 지낸 인물 등 ‘무대 밖’의 현장에서 미켈란젤리와 긴밀하게 관여했던 인물들의 증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 줄리어드 교수이자 영국 출신의 투어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1961-)는 연주자 지망의 학생들에게 ‘음반을 듣지 말 것Don’t listen to recordings’이라 경고한다. 허프의 의견에는 음반으로 발매된 몇몇 유명 연주자들의 기록에 갇혀버릴 경우, 자신만의 연주로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사실 이러한 충고는 단지 연주자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명연주’나 ‘명반’같은 위압적인 가치판단 아래, 클래식 음악의 연주나 연주자에 관해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초조함 으로 공허한 ‘소비’만을 이어가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음악작품과 연주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만 인식하더라도, ‘외우거나 소비하는’ 대상으로서의 음악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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