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과 그의 작품을 대하는 여러 관점들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 1969-)는 열 세살이 되던 1980년대 초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며 부모님을 떠나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남부 출신답게? 대도시 파리에 대한 거리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편으로, 어린시절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지중해 연안 카마르그(Camargue)의 풍경 속에서 접한 대자연이 자신의 첫 음악학교(ma première école de musique)였다고 강조할만큼, 그리모는 생태계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동식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이후 뉴욕주에서 비영리 단체인 Wolf Conservation Center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프랑스인 작가 스테판 바르사크(Stéphane Barsacq, 1972-)와의 의 대화를 기록한 인터뷰집 “Renaître”(2023)에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리모의 면모 뿐 아니라, 프랑스의 (파리가 아닌) 남부 출신 여성이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 배경이나 맥락이 꽤 상세하게 실려 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주로 부모님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는 폭 넓고도 깊이있는 문학과 예술의 단편들은 그의 답변 곳곳에서 인용되며 의미를 더한다. 주로 프랑스어권 작품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언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다른 언어권의 문화나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접근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엘렌 그리모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된 건 미국의 음악학자 제프리 캘버그의 저작(“Chopin at the Boundaries”, 1998)을 통해서였다. 프랑스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를 향한 세간의 흔한 기대감에 거리를 두며 ‘여성스러운’ 쇼팽 연주를 마다했다는 20대 시절의 엘렌 그리모에 대한 문장들은 문득 쇼팽을 대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남성과 여성’,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전형적인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마침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쇼팽 발라드 1번’에 도전하던 저널리스트 앨런 러스브리저가, (그의 저서 “다시, 피아노”에서) 소셜 미디어 활동 중 ‘발라드 1번’을 계기로 교류하게 된 ‘Suzie K’라는 일본인에게서, 쇼팽을 소재로 삼은 (무려 1980년 작) 쿠라모치 후사코(1955-)의 “언제나 주머니 속에 쇼팽”을 소개받고, 런던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여성 피아니스트 오가와 노리코(小川典子, 1962-)에게 이 만화의 내용 해석을 부탁하며 일본에서의 쇼팽 인기에 놀라워하며 묻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I ask her why – to judge from Twitter – Chopin is so amazingly popular in Japan.”)
“클래식 음악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악이었던 일본에서는, (유럽에서와 달리) 쇼팽을 아주 쉽게 대할 수 있었다”는 오가와의 답변은 러스브리저를 꽤 당황하게 한 듯하다. 특히 러스브리저는 열 세 살에 처음으로 ‘그저 단순히’ ‘너무 유명한 작품이어서’ 발라드 1번을 연주하게 되었다는 ‘일본인’ 오가와의 회상을, 비슷한 시기 이 곡을 ‘내면의 본질적 가치visceral quiality’에 이끌려 선택했다는 영국인 남성 피아니스트 로난 오호라(Ronan O‘hora, 1964-)의 사례와 대조하는데, 한국에서도 피아노 전공생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도? 고퀄?로 연주할 수 있는 발라드 1번의 수많은 무대들이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