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러스브리저, “다시 피아노: 아마추어 쇼팽에 도전하다”
Jeffrey Kallberg, ”Chopin at the Boundaries: Sex, History, and Musical Genr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青柳 いづみこ、『ショパン・コンクール - 最高峰の舞台を読み解く』 、中公新書 、2016。
“다시 피아노: 아마추어 쇼팽에 도전하다”(포노, 2016/ Play It Again: An Amateur Against the Impossible, 2013)의 저자 앨런 러스브리저Alan Rusbridger는 케임브리지 졸업 후 <가디언>에 기자로 입사했고, 1995년부터는 무려 20년 간 편집장editor을 지냈다. 퇴직 후 2021년까지 옥스퍼드 레이디마가렛홀LMH 학장직을 거쳐, 현재는 월간지 <프로스펙트> 편집장을 맡고 있는, 영국의 언론계를 포함한 엘리트 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1953년생의 그는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라며 학생 시절부터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기자로 재직 중에도 틈틈이 피아노 연주를 ‘하다 말다’해 오다, 오십대 후반에 접어든 2010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16개월 간의 “쇼팽 발라드 1번” 연주 도전 기록(인 것처럼 보이는 업무일지)을 책으로 엮었다. 유력 일간지 편집장으로 근무하며 ‘하루 20분’이라도 연습해보자는 원대한 계획을 차근히 실천해 가는 과정에는 ‘평범한 중년 직장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호화로운 배경과 인맥들이 줄곧 ‘카메오’를 이룬다.
‘아마추어’인 저자가 결국 발라드 1번 연주를 완성해 가는 과정과 별개로 관심이 갔던 부분은, 그가 결정한 과제곡이 ‘쇼팽’의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청소년 시절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서 쇼팽에 대한 견해를 질문 받았던 순간을 회상하며 언급한 “쇼팽을 센티멘털리스트로 바라보던 당시의(1970년대 초) 지배적 시각”은, 20세기 후반 쇼팽 해석의 면면을 재조명 하는 “경계의 쇼팽”의 서문에 수록된 내용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대학 음악학과 교수인 제프리 캘버그는 1954년생으로 러스브리저와 거의 동년배이며, 19-20세기 음악사를 젠더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고, “경계의 쇼팽” 역시 그 중 하나에 속한다. 캘버그는 1990년대 공개적으로 쇼팽 작품 연주를 자제한다는 의견을 밝혔던 뉴욕 출신의 페라이어(Murray Perahia, 1947-)와 프랑스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 그리모(Helene Grimaud, 1969-)의 사례를 제시하며, (주로 서구에서 공유되어 온) 소규모miniature인데다 서정적lyrical이며 여성스럽다feminine는 쇼팽 인식을 지적한다.
폴란드 출신이면서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냈고, 유약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소규모 공간을 위한 피아노 음악만을 남긴 쇼팽은 줄곧 음악사의 주요 흐름에서 조금 벗어난 ‘주변부’의 인물로 다루어져 온 경향이 강하다. 독일-오스트리아 전통의 굳건한 클래식 음악 전통에서도 비껴나 있으며 엄격한 형식이나 권위와도 거리가 먼 듯한 쇼팽의 음악이, 러스브리저처럼 전문 연주자를 지향하지 않는 서구의 아마추어들에게 최적의 레퍼토리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전공자들의 필수 과제곡으로 빠짐없이 이어져 온 배경도 궁금해진다. 주류 언론의 수장 러스브리저는 “다시 피아노”를 집필하던 2010-11년, 한때 ‘희망 가득한 대안매체’로 떠오르던 “트위터”를 통해 ‘쇼팽 발라드’에 연관된 계정들과 소통하곤 하는데, 이 때 쇼팽을 화제로 삼던 이들은 주로 ‘한중일’의 사용자들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오가와 노리코(小川 典子, 1962-)를 통해 일본에는 쇼팽이 주인공?인 만화가 있는가 하면, 아예 클래식 음악 만화,라는 장르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히 ‘충격’을 받은 듯하다.
파리 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을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 온 아오야나기 이즈미코(青柳いづみこ,1950-)는 ‘일본쇼팽협회(日本ショパン協会, 1960년 설립)’의 이사 자격으로 직접 현장에서 ‘관전’한 2015년 쇼팽 콩쿠르 과정을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파리 음악원 재학 중 참가했던 조성진이 우승했던 해이다.) 콩쿠르 초기부터 “정통적 쇼팽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한편 폴란드-러시아(소련) 간 정치적 긴장 관계와 같은 외부적 요인들과 맞물려, 주로 동유럽과 동아시아 출신의 참가자들이 다수를 차지해 왔고, 역대 입상자들 내역을 보더라도 서유럽이나 미국 출신의 비중이 뚜렷하게 적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실제로 쇼팽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들어봤을리 없는 후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견해를 내세워 ‘해석’의 논쟁을 벌이는 것도 놀라운 한편, 문화권에 따라 쇼팽이라는 인물과 그의 피아노 음악을 수용하는 방식도 꽤 다른 양상을 띤다는 점도 신중히 살펴볼 부분이다. 또한 러스브리저와 같은 서구의 백인 중년들에게 ‘클래식 음악’이 자신들의 근본이나 원점으로 향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면, 특정 시점부터 외래문화의 교양으로 클래식 음악을 ‘학습’하기 시작한 동아시아에서는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담아 왔음을 기억해 둘 필요도 있겠다.